한 낮은 아직 더운데도 이놈의 에어컨은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이고, 덕분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머리는 앞으로 숙여졌다.
'아차!' 싶어 눈을 뜸과 동시에 더 할 수 없이 좋았던 주말은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흐리멍텅한 채로 모니터를 응시하던 내 상태는 마치, 방전 직전의 배터리 같았다.
그 와중에 이제는 '지나간 사랑'으로 규정된 그 친구의 블로그를 방문했다. 그 친구와 만나고 있을 때에도 썩 자주 들여다보지는 않았었는데 어쩐 일인지 몰려오는 졸음은 날 그곳으로 끌고 갔다.
그 곳엔, 마지막 게시물과는 1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최신 글이 올라와 있었다. 그 1년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며 근황을 전하던 그 친구의 새 글에는 나와의 이별 소식도 들어있었다.
대낮부터 가슴 한 귀퉁이가 시큰거렸지만, 반대로 완전히 슬프지만도 않았다. 그 친구가 웃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내심 다행이기도 했으니까.
뭐 이런 종류의 생각들은 대체로 허망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덕분에 '이제는 대답 없는 그에게로부터 걸어나와도 괜찮다-.'던 책 속의 답을 다시 한 번 외며 그 공간에서 걸어나왔다.
그리고는 며칠 전 우연 가득한 만남을 기억해냈다. '그'에게로부터 걸어나왔다면, '이'에게로 걸어 들어가고 싶던 그런 만남. 역시 이 정도 생각에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로 봐선, 좋아졌다, 그 여자. 확실히.
아무래도 보고 싶기까지 한 것 같은데, 사실 감정적인 움직임에 굉장히 충실한 성격이라(이를테면, 보고 싶을 땐 꼭 봐야 하는,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해야 하는 등의.) 보고 싶어 진 김에 문자를 보냈다.
"사월씨 오늘 저녁에 동네에서 치맥 어떠세요?"
조심스럽게 다가갔어야 했나,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편한 게 제일이지-'라며 내 좋은 방향으로 생각을 바꿨다.
퇴근 후 어스름해진 시간, 내 앞에는 그녀가 있다. 그리고 이제 겨우 세 번째 만남임에도 나는 그녀가, 그녀는 내가 꽤 편해진 모양이었다.
'역시 이 여자, 좋다.'라고 생각하던 그때.
아주 약간, 그 '좋음'들이 어그러졌다.
"일본으로 가야 해요." 라니.
이럴 수도 있는 거냐며 그 '운명, 인연, 우연'들에게 따지고 싶었다. 말도 안돼. 이래서야 고작 세 번의 만남으로 당신을 좋아하게 된 내가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물론 이 여자의 앞 날을 내가 컨트롤할 수 없음은 인정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식으로 관계를 마치고 싶지 않았다.
다소 느닷없는 타이밍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 말을 꼭 지금 해야 했다.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