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번째이야기_남자편

by 김찰스


내게는 아주 아주, 길고도 긴 정적이었다. 떠난다는 말 한 마디에, 울컥한 모양으로 이제 막 만들어진 '좋음'들을 쏟아내고나니, 모든 것을 그녀에게 맡긴 채 숨죽여 기다릴 뿐이었다.


그녀의 눈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으며 입술을 살짝 깨물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당황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길고도 초조하며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이 물러가자, 마침내 그녀가 입을 떼어 말했다.


"미안해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느닷없는 고백에 적잖이 놀랐을 텐데도,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고 명료하게 정리한 뒤 내게 전달했다. 그녀를 둘러싼 감정과 상황들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어렴풋하게는 알 것도 같았다.


"꼭 오늘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조금 더 생각해보고 대답해 주세요."

망설이는 그녀에게 답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대신 오래는 못 기다려요.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마냥 기다릴 만큼 참을성이 좋지도 않았으므로.


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불 꺼진 침대에 누워 조금 전 벌어진 일들을 복기했다. 약간은 성급했던 걸까.


'아니야. 내 마음이 그랬던 거니까. 잘 얘기한 거야.'


대충 이런 류의 자기 위안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 마음을 내가 만지고 있던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그리고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내 마음도 함께 울렸다.



'저도 만나보고 싶어요.'


지난 몇 개월,


열려 있는 마음 창으로 겨울 찬바람이 불어닥친 시간이었다. 그리하여 마음 주변 언저리가 마르고 갈라졌던 시간이었다.


물론 내가 창을 열어뒀던 탓에 벌어진 일들이라 구태여 따뜻하고 촉촉한 무엇들을 찾지 않았었다. 분명히 그런 와중이었다.


그러던 중에 이 여자가 내 앞자리에 앉았고, 아마 그때부터 마음에 온풍이 불기 시작했으며, 얼었던 그것들을 놀라운 속도로 녹여냈던 것 같다.


시간은 많지 않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이 굉장히 즐거워질 것 같은 기분 좋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내 입가엔 미소가 만연했고,


그렇게, 끝이 정해진 연애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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