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째이야기_남자편

by 김찰스

요즘 같아서는 아침 바람이 퍽 춥게도 느껴질 정도라, 온기를 건네는 햇빛과 영판 잘 어울렸다. 게다가 파랗고 청량한 하늘을 배경삼아 하얗고 몽글거리는 구름이 이쪽에도, 저쪽에도 붙어있는 바람에 꼭 사진을 찍고 싶었던, 그런 아침이었다.


뭐, 여러 수식어를 붙여가며 말한다고 해도 실상은 '흔한 가을의 맑은 날 아침.'이었을 거다.


그럼에도 더 예쁘고 좋은 형용사를 꺼내고 싶은 건 아마 오늘 당신을 만나기 때문이고, 그런 이유로 오늘 하루는 몽땅 다 예쁨으로 가득 찰 것 같기 때문이다.


남들은 고전적이고 진부한 코스라 할 수 있겠으나, 그래도 첫 데이트는 실패의 위험부담이 비교적 적은 '영화관 데이트'를 선택했다.


그것도 아주 달달한(우리 같은),

이제 막 시작하는(우리 같은),

대놓고 운명적인(우리 같은),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로맨틱 코미디.


그리하여 바로 오늘이다. 온통 그녀 생각에 일 따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고 갈까. 택시 타고 갈까. 영화 보고 나오면 뭐할까.' 같은 생각을 하며 실실거리다가 옆 자리 과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니 여자 생각했지."

내가 봤어도 그런 얼굴이었을 것 같아 거짓말은 포기했다.


"과장님, 제가 오늘 역사적인 첫 데이트거든요. 오늘 칼퇴해도 되겠..."

자신이 없어 말꼬리를 흐렸는데, 의외로 흔쾌히 승낙을 받았다. 시곗바늘이 숫자 '6'에 모여들자 잽싸게 약속 장소로 튀어갔고, 영화관 입구에 서있는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제가 조금 늦었나요?"

"아니에요, 저도 이제 막 도착했어요."


상영 시간이 넉넉하게 남아 그녀와 먹을 간식거리를 샀다. 본래 음식이 눈 앞에 있으면 손을 멈추지 못하는 버릇이 있어 영화 시작도 하기 전에 팝콘을 절반쯤 먹었는데, 그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배 많이 고프시죠."

'아. 그런 게 아닌데.. 버릇인데.. 하..'


영화는 대체로 유쾌하고 명랑하고 즐거웠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영화가 대개 그렇듯 두 주인공은 티격태격했고, 자전거를 같이 탔고, 손을 잡고 예쁜 길을 걸었다. 그리고는 결국 해피엔딩.


사실 영화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와 '같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즐거울 뿐이었다.


밖으로 나오니 바람은 조금 더 차가워졌고, 나도 그녀의 손이 잡고 싶어 졌다.

'영화를 핑계로 말해볼까..'


"아까 그 남자 주인공 부럽더라구요."

"왜요?"

"저도 여자친구 손잡고 예쁜 길 걷는 거 해보고 싶었거든요."


능청스럽게 말하고 나니 그녀가 한쪽 보조개를 내어 보이며 수줍게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녀의 고운 손은 처음 악수할 때 느꼈던 온기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참, 그리고 우리 나이도 같고, 이제 연애도 시작했는데 말을 좀 편하게 하는 게 어때?"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존칭을 쓰는 것이 불편하진 않았지만 반대로 거리감이 생길 것 같아서 먼저 제안을 했다. 그녀도 흔쾌히 동의했고, 이렇게 하나씩 우리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녀가 해보고 싶다던 일은 소주를 마시는 일이었는데, 술을 마시는 내내 잔뜩 웃으며 재잘거리는 그녀가 역시 예뻐서, 내 눈에는 자꾸만 사랑이 고였다.


이제 마지막 잔을 비워내야 하는데, 그녀가 말했다.


"이거 다 마시면 우리 진짜로 사귀는 거예요."


따라 해보고 싶다던 영화 속 장면이 어떤 의미인지, 그 배우가 얼만큼 사랑스러운지, 영화를 보지 못한 내가 확인할 길은 없었으나 한 가지 분명한 건, 내 앞에 있는 이 여자가 훨씬 더 예쁠 거라는 사실이다.


역시 제일은 사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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