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번째이야기_남자편

by 김찰스

'음.. 일단 점심은.. 짜장면!!'


뭐랄까.

혼자 사는 남자의 일요일 오후는 역시 배달음식이랄까.


짜장면에 탕수육을 집어 먹으면서 스파이더맨이 악당을 처치하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내 안의 영웅심이 꿈틀거렸다. (상상해보라. 머리는 부스스한 남자가 짜장면을 흡입하며, 스파이더맨 흉내를 내고 있는 모습을. 멋지지 않은가.)


흥미진진했던 두 시간 정도가 지나고, 이어진 순서는 낮잠! 그리고 또 한 시간 즈음이 흘렀다. 그렇게 휴일의 절반 정도를 보내고 나니 그녀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 클럽 가도 돼?]


'어...?'

클럽이라니? 어제 우리 그렇게 행복했는데? 클럽이라니?


클럽은 어두침침하고 또 번쩍거리고, 시끄러우며 젊은 남녀들이 좁은 공간에서 부비적 대는.. 그런 곳이지 않나.


[친구 생일인데 꼭 가자고 해서.. 진짜 춤만 추다 올 거야!]

'그렇지.. 넌 춤만 추겠지.. 남자애들이 춤만 안 춰서 문제지..'


[친구도 남자친구 있어. 남자들 근처에도 안 갈 거야!]

'걔들이 다가올 거라고 걔들이..'


가지 말라고 설득할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해심 없는 남자로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며, 친구의 생일파티를 방해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가는 건 좋은데, 야한 옷 입지 말고, 화장 심하게 하지 말고, 술 취해서 가지 말고, 춤 열심히 추지도 말고, 남자들 가까이 오면 자리 옮기고! 연락 끊어지면 혼난다! 이게 젤 중요하다고 이게!!]


내키지 않지만 결국 다녀오라며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돌아온 그녀의 회신.


[응응!! 역시 우리 찰스! 연락도 꼬박꼬박 잘 할게~♡]

'역시는 무슨, 내 속도 모르고. 그 어지러운데서 잘도 연락하겠네!'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고 달이 환해지면서 내 걱정 또한 자라고 있었다.


'이미 허락한 거 좋게 생각하자, 걱정하지 말자.'

해도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더란 말이지.


시간은 어느덧 열한 시를 가리키고, 난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재밌게 놀고 있어?ㅋㅋ]


메시지 옆으로 보이는 숫자가 없어지질 않는다. 얼마 간의 시간이 더 지나고,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신나셨네 아주??ㅋㅋ 들어갈 때 연락해!ㅋㅋ]

웃고는 있지만 진심은 아니다. 여전히 메시지 옆으로 숫자가 보이고. 이제 열두 시. 내일 출근하는 사람이 더 놀기에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시간.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선명하게 들리는 소리.


"전원이 꺼져있어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하... 이럴 줄 알았어...'


그리고 다시 메시지.
[메시지 보는 대로 연락해.]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르겠는 다음날 아침, 굉장히 예민한 상태로 자판을 두드리는 지금까지, 그녀에게선 아무런 연락이 없다.


'이쯤 되면 아주 좋지 않은 상상을 할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나서야 그녀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찰스.. 미안... 배터리가 중간에 꺼져서.. 연락 못했어.. 피곤해서 집에 오자마자 잠들었구.. 화났어..?]

부글대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감정적으로 말해봐야 의미 없는 싸움으로 끝날 거고, 게다가 그녀는 남자친구의 '화(火)'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끝나고 갈게. 만나서 얘기하자.]

혹시 흥분한 상태로 성질을 부리게 될까 봐 그녀의 집 근처 커피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그녀가 조금 지친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어떻게 된 건지 다시 한번 설명해줄래?"

주문한 커피를 받아 들고 앉자마자 그녀에게 물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역시 특별할게 없었다.


'연락을 하려고 했으나 핸드폰이 꺼져있었고 마땅히 충전할 곳도 없었으며, 집에 돌아와선 그대로 잠이 들었다.'라는 식의 누구나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


내가 말할 차례였다.

"우리 부부도 아니고 서로 뭐 할 때마다 허락을 받아야 하는 그런 관계는 아니지만, 적어도 연인이면 상대가 싫어하는 것쯤은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해. 그게 상대에 대한 매너고."


한번 터지기 시작한 말은 계속 이어졌다.


"난 네가 노는걸 막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내심 불편하면서도 너한테 싫은 티 안 냈다? 그럼 너도 날 배려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솔직히 어떤 남자가, 자기 여자가 그런데 가서 하루가 넘도록 연락이 안되는데 기분이 좋겠어."


"그렇게 밤새 연락 안되면 내가 입에 담기도 싫은 그런 상상할 거라는 생각 못해? 그냥 넌 떳떳하니까? 피곤했더라도 집에 가서 연락할 수 있었고, 그게 싫었으면 친구 걸로 문자 한 통만 해줬어도 됐잖아.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거야?"


내 나름대로 화가 나는 부분을 명확히 설명하려 했고, 그러면서도 그녀가 겁먹지 않도록 차분한 말투를 유지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커피잔만을 쳐다보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무슨 할 말 없어? 내 말 틀린거나 반박할 말 있으면 해봐."


"미안... 잘못했어.."

힘없는 목소리로 한마디를 내뱉던 그녀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떨어졌다.


'하... 이건 반칙이잖아.'

연인 사이에서 여자의 눈물은 언제나 가장 강력하다.


조용히 눈물을 떨어뜨리던 그녀를 잠시 지켜보고 있자니 더 이상 싸움을 계속할 수 없었다.


"뭘 잘했다고 울어! 고개 들어봐."

약간은 벌겋고 눈물에 젖은 그녀의 눈은, 뜬금없는 타이밍에 쓸데없이 예뻤다. 별 수 없이 자리를 옮겨

그녀의 머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또 그럴래 안 그럴래!?"

그리고 그녀가 내 품에서 고개를 저었다.


만난 지 한 달 하고 보름.

우리의 첫 싸움(?)은, 결국 내 패배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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