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번째이야기_남자편

by 김찰스

오후에 타는 버스에서는 왜 이렇게 잠이 쏟아지는지, 바깥 날씨가 차갑긴 해도 버스 안으로 들이치는 햇볕 덕에 고개가 절로 숙여지고 있던 중이었다. 막 깊은 잠에 들기 일보(一步) 직전에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기어이 날 깨우고야 만다.


[강사월♡]


외근 나왔다고 하자 칼 같이 전화를 걸어 주는 그녀. 목소리를 듣고 싶어 전화했다던 그녀는 내가 오늘 오후 아는 여자 동생과 약속이 있다고 하니 흥분을 하기 시작했다. 캬- 그녀의 질투. 얼마나 예쁘던지 버스 안에서 크게 웃어버렸다.


"여자 후배면, 오빠, 오빠 거리겠네?"

"아니, 워낙 격이 없는 친구라 꼭 그렇지도 않어."

"뭐?? 그럼 야-라고해? 헐? 아주 난리네? 더 해봐, 더 해봐!"

"아냐, 그 정도는 아닌데, 어허- 우리 사월이 왜 이래요."

"왜 이러긴, 개뿔!!! 재밌게 놀아! 빠이! 짜이찌엔!"


옆에 있었다면 꼭 안고 놔주지 않을 정도로 귀여웠던 그녀의 질투나 심술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업무를 마쳤다.


퇴근 후에는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동생을 만났다.


이제 겨우 22살인 친구가 속도 깊고, 대화가 잘 되는 편이라 즐거운 마음으로 종종 만나는 친구였는데, 언젠가 이 친구와 이야기를 하던 중에, TV에 나와 유명해진 그 길을 한 번 가보자고 약속했던 일이 있어서 만나게 됐다.('오'빠-'와 '야, 너-' 들을 섞어서 부르긴 해도 버르장머리 없는 친구가 아님을 미리 밝혀두겠다.)


"그래서, 연애한다며? 아주 살 맛 나냐?"

"그럼!! 아주 좋아 죽지, 오는데 너 만난다고 했더니 질투를 얼마나 하던지."

"질투? 왜?"

"니가 여자인 것도 그렇고, 니가 나 막 대한다니까."

"아 그딴 말을 왜 해, 멍청아! 내가 여친이라도 싫겠다."


대화 주제는 대체로 서로의 연애사와 회사 이야기였고, 짧지만 즐거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인사를 나눴다.


"조심히 가고, 또 전화해."

"그래, 여자친구한테 말 잘해! 버르장머리 없는 애 아니라고!"

"그래 그래, 얼른 가!"


집에 오는 길엔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 막 대문을 열려고 할 때 다시 요란한 벨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김찰스 씨?"

"어? 네, 맞아요."

(이때 직감적으로 그녀가 취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 저 사월이 친군데요, 지금 좀 오셔야 할 것 같은데..."

다행히 택시를 타고 멀지 않은 곳에 그녀가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김찰스입니다."

"네... 이렇게 인사드려서 되게 민망하네요... 애가 갑자기 취해버려서.."

"아, 그러게요, 좀 좋은 자리에서 정식으로 인사드렸어야 하는데, 오늘은 일단 사월이 좀 데리고 갈게요."


그녀는 위태 거리는 테이블에 뺨을 댄 채, 거친 숨을 쉬고 있었다.


'어휴...'

그녀를 들쳐 업고 나와 택시를 잡아 탔는데, 갑자기 그녀가 눈을 떴다.


"옵빠? 찰스 옵빠?! 야, 나도 동생이야! 너 06학번이잖아! 나 07학번이라고! 이 빠른 88 오빠야!!"


'와... 그 와중에.. 오빠란 말이 신경 쓰였구나... 허허...'


"술을 얼마나 마신 거야, 속은 괜찮아?"

"몰라도 돼! 옵빠!"

"어휴... 기사님, 죄송하지만 저 골목까지 좀 들어가 주시겠어요?"

"여자친구분이 많이 취하셨네. 껄껄"

"그러게요... 이 친구가 이런 적이 없는데 참..."


애교가 좀 격하게 쉬지 않고 나온다는 것 외에 다른 주사는 없는 편이라, 그녀를 무사히 집에 데려다 눕힐 수 있었다.


"헉.. 헉... 이리와, 옷은 갈아입고 자야지!"


그녀를 업은 채 올라오느라 숨을 헐떡거리던 내가 그녀를 흔들어 깨우자, 그녀의 애교가 계속됐다.


"내가 할 수 있어! 옵빠는 물이나 가져와!"

"옵빠! 뒤에 지퍼 좀 내려줘."


그날 밤, 그렇게 난 그녀의 오빠가 되었다.

(뭐... 나쁘진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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