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섯번째이야기_남자편

by 김찰스

이른 아침.

옆에 있는 그녀의 온기가 느껴져야 정상인데, 이불 사이로 찬바람이 들어와 눈을 절반쯤 떴다. 곧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려오자, 나머지 절반의 눈이 번쩍 떠졌다. (아니 뭐, 남자의 본능이랄까.)


나도 모르게 미소가 새어나왔지만 '아 웃지 말아야지, 짚을건 짚고 넘어가야지!'하는 마음에 입을 싹 닦고,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그녀가 나오길 기다렸다.


"이리와 앉아봐, 강사월."

"으..응..??"

"여기 딱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

나도 금방 씻고 나올테니까."


그리고 그녀의 샴푸향이 남아있던 욕실로 들어가려는데, 그순간 그녀의 긴장한 표정이 너무 예뻤다. 마음 같으면 당장에라도 껴안고 모닝 뽀뽀를 하고 싶었지만 그녀를 위해 참기로 했다.


"너, 내가 왜 이러는 줄 알아?"

"알아... 내가 술 너무 많이 마셨어... 미안해.."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셔, 바보야."

"몸도 못가눌 정도로."

"그것도 여자가!"

"요즘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어? 아냐고! 친구가 연락 안해줬으면

어떡할뻔 했냐고." 등등,


대한민국의 음주문화 전반에 대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사회적 악질범죄를 예방하자는 차원의, 대학 강의에나 나올법한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는 마치 아이를 혼내는 부모같은, 그녀는 부모에게 혼나는 아이같은 상황극이 끝나자, 그녀가 다시 활짝 웃으며 이야기했다.


"잘못했으니까 내가 아침 차려줄게요! TV보면서 쉬고 있어요!"


'허허.. 이렇게 쉽게 풀어주면 안되는데.' 하면서 이미 내 입은 어금니가 보일정도로찢어져 있었다.


곧 음식을 다 차렸는지 그녀의 말랑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식사하세요, 서방님~"

"이햐, 사월이가 요리를 잘하긴 잘하는구나? 아침부터 좀 센데?"

"에이 뭐 이정도야! 서방님을 위해서라면 뚝딱이죠."

"근데 왜 오늘은 '옵빠!?'가 아니라 서방님이야? 난 '옵빠!?'가 더 좋은데?"


어제 술취한 그녀가 하던 '옵빠!?'소리를 흉내내며 혼자 낄낄거렸는데,


"응? 무슨 말이야?"

그녀가 기억을 못한다. 그 상황이 하도 웃겨서 밥을 먹다 말고 한참을 더 낄낄거리며 얘기했다.


"어제 기억안나? '옵빠!?' 사월이가 나한테 '옵빠!? 지퍼내려줘 옵빠!' 라고 했던게 기억 안난단 말이야?"

부끄럽기도 할텐데 오히려 '사랑스러웠겠다.'라며 능청을 떠는 그녀가 또 예뻐서 식사를 얼른 마친 뒤 뽀뽀세례를 퍼부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우린 여느 커플보다 뽀뽀를 많이 하는 편이다.)


맛있는 아침을 마치고, 설거지를 끝낸 뒤 다시 나란히 침대에 엎드렸다. 난 여전히 그녀에게 입술을 들이밀고 있었지만, 그녀가 '이제 됐어, 그만.'이라는 듯 내 입술을 막으며 말했다.


"우리 이제 제주도 여행갈 거 계획 짜야지!"

"아 맞네, 제주도! 뭐 그냥 가면되지!! 자기는 제주도 가면 뭐가 제일 하고 싶어요?"

"음... 난 다 좋은데? 찰스랑 하면 다 좋아!"

"다 좋은거, 그런게 제일 안좋은 답변인거 알아?"


또 한 번 괜한 투닥거림으로 사랑을 나누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갈치 어때 갈치! 제주도 하면 갈치지!!"

내가 '찰떡!' 했더니,


"아 그럼! 제주도 갈치 먹으러 가는거 아니었어?"

그녀가 '쿵떡!' 으로 받는다.


"그리고 저녁은 흑돼지 먹는거야, 흑돼지! 제주도의 끝! 흑돼지!"

찰떡.


"오오, 천잰데? 흑돼지 안먹을거면 제주도 갈 이유가 없지! 안가,안가,"

쿵떡.


이런 쿵떡같은 녀석. '여행을 앞둔 소년의 호들갑을 이렇게 잘 받아쳐주는 사람이 또 있을까.'싶을 정도로 쿵떡같았다.


이번엔 그녀가 '찰떡!'을 할 차례였는데,

"우리 커플티도 하자! 제주도 가서 그거 입고 다니는거야!"

"으..응...?"

내가 '쿵떡'을 하지 못했다.


"커플티는 난 좀 그런데... 아니 뭐 똑같은 옷 입고 우리 커플인거 광고 안해도 다 아는데.. 그리고! 대체로 유치하다고, 그런 옷들이."


그러나 그녀의 찰떡은 꽤 끈기가 있는 편이어서 지속적으로 내게 커플티를 권유했다.


"아 입고 가자! 유치한거 말고 예쁜 것도 많단 말이야! 내가 안유치한걸로 찾으면 되잖아! 입자, 입자아~!"


난 아무래도, 그녀의 눈물, 단호함, 알랑방구 등에 너무 약해서 탈인 것같다.(결국 다 약하다는 소리지만.)

"그래, 그래. 예쁜거 있으면 보고 입자. 한 번 보고! 맘에 들면!"

"그래, 너 두고봐. 내가 안입고는 못배길 그런 티 골라온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검색을 시작하는 그녀. 그런 그녀의 엉덩이를 베고 누워 '뭐 커플티야 어찌됐든-' 하며 아침의 여유를 느꼈다.


'음... 푹신한데?'



매거진의 이전글서른다섯번째이야기_남자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