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기운없는 아침이 시작됐다. 엊그제만 하더라도 그녀의 푹신거리는 엉덩이를 베고 누워 신선 부럽지않은 휴일을 보냈는데, 고작 며칠만에 현실로 돌아와 컴퓨터를 붙잡고 씨름하는 현실이라니.
'직장인의 삶이라는 것이 동기부여라던지 무언가 확실한 활력이 없다면 굉장히 지루한 삶이구나.'하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가진 최고의 활력으로부터 메세지가 도착했다.
[사진]
그녀가 말했던 커플티가 각각의 번호를 달고 있었다.
의외로 괜찮은 모습을 하고 있는 커플티. 생각했던 것처럼 어깨동무 하면 빨간 끈으로 된 하트모양이 완성되는 식의 유치한 디자인이 아니라, 한숨 돌렸다.
니트류를 즐겨입는 편인 나는, 3번.
밝은 초록빛 니트와 강렬한 빨간빛 니트가 마음에 들었다.(음, 신호등 같겠구만.)
[오, 괜찮은데? 2번, 3번이 괜찮은데, 그중에 난 3번!]
[오늘 콜??]
[ㅋㅋㅋㅋ 콜!!! 명동에 저거 매장 있어! 명동으로 가자ㅋㅋ]
[오키. 역 앞에서 봐요♡]
하여튼 그녀의 추진력은 놀라울 정도로 대단했다. 말 나오자 마자 지체 없이 준비라니. 그러고 보니 어느새 제주도 여행이 이번주로 다가왔다. 여행의 타이틀은 썩 반갑지 않았어도, 그녀와 함께 섬에 간다는 것은 무척이나 설레는 일이었다.
제주도에가면 바다와 가까운, 테라스가 있는, 창으로는 아침 해가 비치는, 그런 곳에서 잘테다. 아침 햇살과 바람에 커튼이 휘날리는 모습을 보며 그녀와 가운만 입은 채로 바다를 바라볼테다. 그리고 신선한 우유와 잘 구운 빵에 잼을 발라 먹을테다.
TV에서 봤던 꼭 해보고 싶은 10선을 생각하며 오후 일과를 설레는 마음으로 마칠 수 있었다.
명동역에 도착하니 일곱시 반. 평일 저녁임에도 역시 명동은 사람들이 바글바글, 득실득실. 그녀와 난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오로지 제주도에서 입을 의상을 위해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거리만큼이나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매장 안에 발을 들여놓고 우리의 목표인 초록과 빨강 니트를 찾았다. 마침 사이즈가 있어 둘다 입어보기로 하고 옷을 갈아입었더니, '오. 괘..괜찮은데??'
"어때 찰스? 맘에 들어?"
"응응, 좋아. 신호등 같애. 귀엽다 우리 사월이! 사이즈도 딱이네!"
옷을 다시 갈아입고 나와, 들어온 김에 매장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었는데, 이번에 눈에 들어온건 남녀 마네킹이 신고 있던 운동화였다.
'니트 대신 신발을 사자고 할까...?'
'저 새하얀 운동화를 신고 제주도 잔디밭을 걷는다면.. 분명히 기분 좋겠지...?'
'커플티도 안한다 그랬던 놈이 커플 신발 하자 그러면... 좀 그런가...?'
"뭐해 찰스, 가자!"
매장 문을 나서는데 자꾸 신호등색 니트에 하얀 운동화를 신고 있는 우리 모습이 아른거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사월아, 우리 신발도 할래?"
"응? 갑자기 뭔 신발?"
"아니, 저 마네킹이 신고 있던 신발 있잖아. 귀엽지 않아!? 우리 니트에 딱이라니까!?"
"아 무슨 신발이야, 똑같은거 싫다며!"
"아니... 그게 또 해보니까 예쁘잖아. 신발까지 하면 완벽해. 끝이야 이건, 게임 끝!"
내 얘기를 듣고 그녀가 크게 웃었다.
"아니 싫으시다면서요. 우리 커플인거 광고 안해도 된다면서요."
멋쩍게 웃은 내가 대답했다.
"아니, 뭐 그렇게 나쁠 것 같진 않다... 뭐 그런거지!"
결국 나의 바람대로 우리는 다시 매장으로 들어가 순백의 신발을 맞춰 신을 수 있었다.
"어때, 어때! 완전 잘어울리겠지? 제주도 가면 꼭 잔디밭에 갈꺼야! 완전 그림같겠지!!"
같이 입게 될 옷을 사고 준비를 하니, 어느덧 제주도가 가까워졌다고 생각해 설렘이 멈추지 않았다.
"내일은 제주도에 가서 해야할 계획들을 짜봐야겠다. 자기도 뭐 생각나는거 있으면 말해줘! 거기까지 가서 우왕좌왕 할 수 없으니까! 완벽하게 짤거라고 내가!"
"그래그래, 찰스만 믿겠어!"
캬- 기다려라 제주도. 금방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