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덟번째이야기_남자편

by 김찰스

두둥.


그녀를 기억하기 위해, 또 내 기억을 남겨주기 위해 생각했던 제주도 여행날이 밝았다. 그녀는 엊그제 회사 직원들과 작별인사를 마쳤다고 했다. 그리고 아직은 아니지만, 그 시간은 분명히 내게도 다가 올테지.


이 여행은 잠시 후 맞이할 그 힘든 시기에 작은 반창고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뭐, 이정도 우울감이야 예상하지 못했던 바는 아니었으니, 크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우울함의 반대편에는 '그녀와 함께'라던지, '섬'이라던지, '비행기' 같은 설렘들이 날 향해 웃고있었으니까.


날씨가 쾌청하지는 않았어도 추운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었다. 문 앞을 나서던 내 기분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 있는 그녀를 보니 잠시 울컥하기도 했지만, 가까워진 그녀 앞에선 어금니가 보일 정도로 크게 미소지었다.


"저, 아가씨, 혹시 시간있으시면 제주도 가실래요?"


이제는 내 장난에 능숙하게 받아치는 그녀.
"죄송해요, 기다리는 사람있어서. 딴데가서 알아보세요."


가벼운 장난으로 반가움을 표시하던 중에 그녀가 물었다.


"여권 챙겼어?"

"흠... 너 비행기 많이 타봤다고 자랑하냐. 제주도는 여권 필요없거든!?"

'아차!'싶은 표정의 그녀는 본인이 생각해도 민망했던지 빠르게 여권을 가방으로 집어 넣었다. 공항으로 가는 택시에서 그녀는 여러가지를 물었다.


차는 어떻게 준비했는지, 잘 곳은 다 정해져 있는지, 가면 뭐부터 먹을건지, 같은. 깊은 눈을 반짝이며 쉴 새도 없이 물어오는 통에 정신이 없어, 딱 잘라 말했다.


"사월이, 옵빠 믿지? 내가 다 해놨어. 넌 그냥 따라만와."

"올..... 옵빠.... 멋진데..?"
"훗. 뭐 이정도라고 내가. 아주 철저하다고 내가."


턱-
택시의 문을 닫고 마주한 공항은 위압적일 정도로 큰 모양이었다. 비행기를 타본 경험이 얼마 없으니 이정도 촌스러움 쯤은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공항이 익숙한 그녀는 뚜벅뚜벅 잘도 걸어갔다. 그리고는 여기저기를 두리번 대던 나에게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뭐해 찰스? 뭐 찾어?"
"응?? 아냐, 아냐. 가자 얼른."
(신기한건 어쩔수 없었으니까.)


대체로 이런 류의 신기함들을 기분 좋게 감상하다 보니 비행기가 하늘로 올랐다가 땅으로 내려왔다.


쾌청하지 않던 하늘이 어느새 파랗게 바뀌어 있었고, 온통 회색빛이었던 풍경이 초록이 잔뜩 그려진 모습으로 변했다. 더 할 수 없이 신난 그녀와 함께 공항 입구에서 사진도 찍었다. 진짜 여행이 시작되는 시간.


"뭐 먼저 할래요, 사월씨? 맛있는 식사도 있고, 멋드러진 풍경도 있고, 스위트한 침대도 있습니다만?"

"으이구! 침대는 좀 빼지? 음... 풍경부터 보러가자!"

"넵! 그렇다면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우도'로 가는 길은 아주 예쁜 풍경길이었다. 푸른빛 바다가 다정한 소리를 내는 것도 같았던, 우직한 나무가 우리를 반기는 것도 같았던, 꽃 길을 달렸다.


보드라운 바람이 우리의 손을 잡고 더 예쁜 곳으로, 더 달콤한 곳으로 이끄는 듯, 우리는 잠깐도 빼놓지 않고 행복했다.


"진짜 좋아, 찰스."
"나도, 자기랑 이런 것들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아. 고마워."

"뭐가, 찰스가 다 준비하고 계획한건데, 난 그냥 몸만 온거고."

"그러니까, 사월이가 있어줘서 고맙다는거야.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그녀는 눈으로 보는 모든 것들을 담아가려는 듯 셔터를 눌러댔다. 그 모습은 아닌게 아니라 '필사적'이기 까지 했는데, 어떤 마음으로 셔터를 누르는 것인지 대충 알 것도 같았지만, 그녀가 내색하지 않았으므로 나 역시 모른척 하기로 했다.


여전히 신난 그녀가 펜션 근처로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말했다.


"오늘 밤은 잊지 못할 밤이 될거야!"


그리고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내가 답했다.
"음... 어떻게~? 어떻게 하면 못 잊을 수 있을까~?"

"아 정말! 운전이나 해! 변태야!"
"뭘! 자기도 좋으면서!"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행복은 꽤 바쁘게 지나갔다. 그들도 우리에게 "시간이 없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여전히 바쁜 행복 사이에 우리가 서 있고, 이 행복은 두 밤 동안 계속 될 것이다.


그 첫번째 밤,

진짜 못 잊는 밤이 뭔지 보여주마.

(여러가지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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