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이라기 보다는 '현실'로 돌아왔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지만. 현실이라고는 하나, 넋 놓고 늘어져 있을 시간은 없다. 그녀에게 남겨줄 두 번째 기억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제주도 출발 전, 혼자 카페를 찾았었다. 내 인생에서 그녀를 처음 마주했던 카페,
그린비.
"사장님,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오늘은 혼자 오셨네요?"
동네에서 작은 규모로 운영 중인 카페였기 때문에, 다행히 사장님과 안면이 있는 상태였다.
"네. 사장님께 드릴 부탁이 있어서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여자친구하고 처음 만난 장소가 이자리였는데, 그 친구가 이제 일본으로 가거든요. 그래서 송별회를... 대절... 제발... 부탁 드림..."
구구절절 30분이 넘게 현재까지의 상황과 계획을 설명드렸다.
작은 체구에 인상 좋고 배가 조금 나온, 속 좋은 아저씨 같은 사장님이 웃으며 대답했다.
"평일 저녁시간이라 안될 건 없는데, 그럼 여덟 시부터 마감까지 세 시간 내어 드릴게요."
"앗!!! 감사합니다 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녀가 제주도 여행 코스를 계획하던 날엔 내내 그녀의 핸드폰을 들여다 볼 기회를 엿봤다. 그리고 잠시 그녀가 자리를 비웠을 때, 그녀의 핸드폰에서 전에 봤던 친구들의 연락처를 빼냈었다.
"뭐해? 핸드폰 왜 뒤져!"
"응? 숨겨둔 남자 있나 볼려고 그런다! 왜!"
핸드폰을 만지다가 그녀에게 적발되기도 했지만, 걸릴 때를 대비해 준비했던 변명을 대자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었다.
계획은 여행 간에도 멈추지 않았다.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왜 이렇게 화장실 자주 가?"
"음. 그러게. 뭘 잘못 먹었나. 이상하네."
이 핑계, 저 핑계를 둘러대며 자리를 빠져나와 여기 저기로 전화를 걸었다.
"현진씨, 저 저번에 뵀던 사월이 남자친구 찰스에요. 혹시 기억하시겠어요?"
"아, 그럼요! 어쩐 일이세요! 제주도 가셨다면서요?"
"다름이 아니라 저희 서울 올라가면 사월이 송별회를 좀 해주고 싶어서요."
한 명.
"도윤씨, 저 찰스에요... 송별회 장소가..."
두 명.
이렇게 섭외를 마치고 나니 총 인원 7명. 그녀의 송별회 소식에 선뜻 참석해준다는 친구들이 참 고마웠다.
그리고 다시 서울.
갑작스럽게 그녀에게 연락이 와, 함께 점심을 먹고 있다.
'짜식... 이따가 엄청 좋아하겠지..? 아무것도 모르고 말이야.. 맛있지~? 짜식...'
혼자 입이 근지러워 죽을 것 같았지만, 더한 감동을 위해 참기로 한다.
"저녁에 만나는거 안 잊어버렸지? 예쁘게 하고 그린비에서 봐."
"응? 좀 늦네? 배고픈데..."
"미안, 일이 좀 늦게 끝날거 같아서. 먼저 밥 먹구와. 배고프면 안되니까!"
그녀에게 늦게 끝난다고 말했지만, 사실 칼퇴근 후 부리나케 그린비 앞으로 가 그녀의 친구들을 만났다.
"어 도윤씨! 일찍 오셨네요. 늦어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애들도 거의 다 왔대요. 사월이 고등학교 친구들도 온다고 했는데, 전화해봐야겠어요."
다행히 그녀가 오기 전 친구들이 도착했고, 각각 케이크나 와인을 챙겼으며, 어떤 친구는 노래를 불러줄 거라면서 기타까지 들고왔다.
그 친구들을 보며 생각했다.
'사월이는 좋은 친구가 많구나.'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진심을 다하는 그녀에게 어울릴 만한, 좋은 마음을 가진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주인공의 도착이 임박했다.
"온데요, 다 왔대, 들어가, 들어가!"
"최대한 자연스럽게 앉아 있고! 들어오는 방향으로는 뒷통수만!! 이따가 사인 줄게요!"
"찰스! 추운데 밖에서 뭐해? 안 들어가있고?"
"자기랑 같이 들어가려고 기다렸지. 들어가자."
"맨날 마시던거? 주문하고 갈게. 앉아 있어."
주문을 마치고 돌아온 그녀가 자리에 앉자, 그녀의 뒤편으로 앉은 친구들이 일제히 날 쳐다본다.
이제 더이상은 못참겠다는 심정으로 모두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기타를 가져온 친구가 연주를 시작했고, 모두는 노래를 부르며 다가왔다.
입을 쩍 벌리고 놀라는 그녀.
"뭐야! 너네 뭐야! 어!? 김찰스! 뭐야!"
이미 입이 찢어질듯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본 그녀가 놀람과 웃음이 절반씩 섞인 표정을 짓는다. 그 사이 노래가 끝나고, 친구들이 내 대신 상황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그녀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터진다.
"어이구, 우리 울보. 또 울어요! 왜 울어 우리 울보! 누가 울렸어! 이렇게 좋은날. 누가 울렸어!!"
울고 있는 그녀를 둘러싸고 우리는 행복한 웃음을 지었었다. 모두가 우리에게 덕담을 건넸고, 우리는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들 중 누군가 가져온 와인을 마셨고, 기타 연주가 계속 됐으며, 맛있는 음식이나 따뜻한 마음들이 행복한 시간을 그려냈다.
무척이나 행복한 시간이 구르고 카페에 훈훈한 온기가 가득 찼을 무렵 쯤에 그녀에게 잔을 권하며 말했다.
"고마워, 좋아해줘서.
여기도, 친구들도, 나도,
이 시간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