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에 출발하여 오늘까지,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휴양소 중 제주도의 한 호텔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온 예약 관련 문자 메시지를 보니, 작년 3월 7일경 방문한 기록이 남아있었다. 거의 딱 1년 만에 다시 방문하게 된 것이다. 작년에 제주도에 왔을 때는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웠다. 해변 바로 옆에 위치한 호텔에서 조금만 걸어 나오면 바닷바람에 날아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하지만 올해 방문한 제주도는 정말 따뜻하고, 바람도 세게 불지 않았다. 그야말로 봄 날씨였다. 봄 비 같은 비가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했다.
제주도에 처음 발을 딛고, 렌터카를 빌려 향한 곳은 제주도의 동쪽에 위치한 함덕 해수욕장이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해변가에 있는 한 식당에서 갈치조림을 먹었다. 식사 후에는 부슬비가 내리는 해수욕장을 우산을 쓰고 걸었다. 에메랄드 빛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그 끝처럼 보이는 곳은 흐린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잠시 걷다가, 검색해 보니 함덕에 마늘빵으로 유명한 '오드랑 베이커리'가 있다고 해서 방문했다. 마늘빵과, 쑥떡빵을 하나씩 샀다. 나중에 숙소에 가서 먹어보니, 마늘빵은 유명할만한 맛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마늘빵과는 이름은 같지만, 장르가 달랐다. 마늘 소스가 빵 가운데에 잔뜩 들어있었고, 바삭하기보다는 쫄깃해서 빠네 파스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이커리를 나선 뒤에는 '만춘 서점'이라는 서점에 방문했다. 서점 건물은 두 개였는데, 하나는 치즈 케이크 조각처럼 생긴 작은 건물이었고, 다른 하나는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는 빨간 벽돌식 건물이었다. 서점에는 음악과 관련한 책들이 많았고, 제네바 스피커로 틀어놓은 라디오에서는 이름 모를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서가를 둘러보다 "Music for inner peace"라는 책을 발견했다. 하루의 여러 시간대에 어울리는 음악을 소개해주는 책이었다. 나는 이런 종류의 책을 꽤 좋아한다. 잘 알지 못했던 좋은 음악을 발견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비 내리는 거리에서 들고 다니기 불편할 것 같아 사지는 않았다. 서점을 나와 카페에 잠깐 들렀다가 함덕 해변이 한눈에 보이는 서우봉을 향해 올라갔다. 적당히 걸어 올라가다가 풍경을 감상하고는 힘들어질 때쯤 내려왔다. 차를 타고 공항에서 멀지 않은 탑동에 위치한 숙소로 와서 체크인을 했다. 숙소 주변에는 빈티지 옷을 판매하는 가게가 많았다. 여러 빈티지샵과 서점, 소품샵 등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한 빈티지샵에는 내가 좋아하는 축구팀인 아스날의 유니폼들이 꽤 많이 있었다. 그중에서 약 20년 전 활약한 로시츠키라는 선수의 유니폼이 탐났다. 하지만 가격이 20만 원 정도라 고민하다가 결국 사지 않았다. 저녁으로는 "순풍해장국"이라는 가게에 가서 해장국을 먹었다. 나는 선지가 들어있는 소고기해장국을 먹었는데, 맛있게 먹긴 했지만 특별한 정도라고 여겨지진 않았다. 첫 째날 일정의 마지막으로는 "탑동골목"이라는 뮤직바에 갔다. 이곳은 예약제로 운영되는 공간인데, 특별한 점은 자신과 타인의 깊은 음악 감상을 위해 지인과 함께 와도 대화를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장님이 신청곡을 받아서 틀어주는데, 듣고 싶은 음악의 유튜브 링크를 사장님에게 카톡으로 보내면 된다. 익명 하에서 다른 사람들의 취향을 엿볼 수 있고, 나의 취향도 드러낼 수 있는 경험은 꽤나 특별했다. 내 음악이 언제 나올지 기다리고, 다른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꽤 두근두근한 일이었다. 주인장이 마련한 환경과 정책을 통해 한 평범한 공간이 얼마나 색다르게 변할 수 있는지 지켜보는 것이 즐거웠다.
둘째 날에는 비 내리는 서귀포로 향했다. 가장 먼저 방문한 서점에서, 사장님에게 비 오는 날 서귀포에서 가볼 만한 장소를 추천받았다. 그중 하나가 "베케"라는 정원이었다. 박물관과 건물들이 딸린 꽤 큰 규모의 개인 정원이었다. 예약하면 도슨트를 통해 정원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정원에 온 다른 사람들과 함께, 비 오는 정원을 거닐며 설명을 들었다.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만드려고 노력한, 도슨트가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분의 의도를 들었다. 그분을 직접 만난 건 아니지만, 조경과 식재에 얼마나 진심인지는 잘 전달되었다. 시기적으로 아직 봄이 오지는 않았으므로, 정원은 아직 잠재력을 온전히 드러내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일찍 핀 귀여운 꽃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통유리 창문이 나있는 건물 내부에서, 비 오는 정원을 바라볼 수도 있었다. 빗소리와 조용히 흐르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이끼가 형광색으로 생명력을 발하고 있는 것을 구경했다. 베케를 나온 뒤에는 "삼보식당"이라는 작은 가게에 가서 전복 뚝배기를 먹었다. 한 그릇에 만원 후반대의 가격이었는데, 전복이 세 개나 들어있고 딱새우 등 해산물이 많이 들어있어서 오히려 가성비가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숙소로 돌아올 때는 한라산의 중산간지역을 관통하는 도로를 따라 차를 타고 달렸다. 비가 많이 왔고, 안개가 많이 끼어서 시야가 10m 내외로 좁은 데다 도로가 정말 꼬불꼬불했다. 긴장하며 조심스럽게 달린 끝에, 다행히 안전하게 숙소에 도착했다. 야식을 먹으러 숙소 근처의 "미친 부엌"이라는 가게에 방문했다. 그 가게의 요리가 꽤 괜찮다는 리뷰를 봤고, 무엇보다도 고등어 회 초밥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 가게에서 고등어 회 초밥 외에도 염통꼬치와, 크림짬뽕, 그리고 표고버섯과 닭가슴살 튀김을 먹었다. 고등어 회 초밥은 전혀 비리지 않았고, 특유의 스모키 한 향이 좋았다. 염통꼬치를 구성하는 염통은 내가 본 염통 중에 가장 통통했다. 그리고 크림짬뽕도 칼칼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아서,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마지막 날에는 오전 10시 비행기라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바로 공항으로 이동해야 했다. 하루 정도 더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짧은 시간 동안 꽤 많은 것을 경험한 것 같아서 돌이켜보면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제주도 여행을 오기 전, 항공권과 렌터카 비용을 생각하면 다른 국내 여행지에 비해 제주도 여행이 가성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하지만 막 여행을 마친 지금, 제주도라는 장소는 다른 국내 여행지와는 분명히 차별화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확연히 다른 생김새의 식물들을 포함한 풍경을 보고, 기후를 느끼다 보면 여행을 떠나왔다는 것, 내가 익숙한 곳에서 꽤 멀리 걸어 나왔다는 것에서 오는 해방감을 보다 뚜렷하게 느끼게 된다. 또한 제주도에는 육지에 살다가 넘어와서 정착한 사람들도 많은데, 그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새로운 삶의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만약 내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 이후에 이곳에 와서 산다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삶은 어떤 느낌일까?'와 같은 질문들도 스스로에게 자주 던져보게 되었다. 제주도에서의 이 짧은 여행이 의식적 차원에서 좋은 여행이었던 것처럼, 무의식적 차원에서도 재충전의 계기가 되었기를 바라며 다시 시작될 일상을 마주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