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아버지의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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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리담

신장 조직검사는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엎드려 누운 상태에서 초음파로 신장을 확인하고, 바늘이 들어갈 위치를 잡습니다.


그다음 부분 마취가 끝나면, ‘으드득’ 긴 주삿바늘이 등을 뚫고 들어오는 묘한 감각이 느껴집니다.


잠시 후 뻐근한 통증이 허리 전체로 번져나갔고, 경험해 본 적 없는 낯선 감각에 눈을 꼭 감고 버텨내다 보니 어느새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어 있었습니다.


신장 조직검사는 의외로 금방 끝났지만, 정작 그 이후가 더 힘겨운 시간의 시작이었습니다.


지혈을 위해 묵직한 모래주머니를 배 위에 얹은 채, 꼼짝없이 8시간을 반듯이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허리와 어깨에 서서히 쌓여가는 결림과 답답함은, 바늘이 찔릴 때보다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검사가 끝나자마자, 머릿속엔 온통 ‘퇴원’ 생각뿐이었습니다.


병상에 누워 있는 사이, 전화기엔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가 쌓이고, 현장엔 치우지 못한 고철과 폐기물들이 그대로 방치돼 있었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일부 거래처는 더 이상 제 연락을 기다리지 않고, 이미 다른 곳에 일을 맡겼다는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며칠만 더 누워 있다간, 어렵게 따낸 거래처들이 모두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몸은 여전히 부어 있었고, 컨디션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지만, 그때의 저는 회복보다 일 생각이 먼저였습니다.


퇴원은 아직 이르다는 교수님을 겨우 설득한 끝에, ‘집에서 절대 안정을 취하겠다’는 거짓말을 내세워 퇴원 수속을 밟았습니다.


차를 몰고 병원 앞으로 마중 나온 아버지는, 말없이 짐을 차에 실으며 물으셨습니다.


“몸은 좀 괜찮냐?”


아버지의 걱정스러운 물음에는 답하지 않은 채, 일 이야기를 꺼내기에 바빴습니다.


“지금 A현장 갔다가 B현장도 치워야 돼. 집에 들러서 옷만 갈아입고 바로 나가면 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어!”


아버지는 운전석에 앉으며 문을 세게 닫더니, 제 말을 뚝 끊으셨습니다.


“병원에서 막 나온 놈이 퇴원하자마자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그거냐? 니 몸 상태가 어떤지도 모르고 지금 일 타령이야?”


화를 내시는 모습을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아니, 이렇게까지 화를 내시는 건 처음인 것 같았습니다.


“너 계속 그러다가 투석해, 인마. 투석. 그거 시작하면 어디 가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사람 사는 거 같냐? 숨만 쉬고 사는 거야, 숨만! 이 자식아 “


답답한 제 모습에 끝내 화가 터진 아버지는, 운전대를 거칠게 꺾으며 감정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하고 살아야지, 이 멍청한 놈아. 그렇게 다 참고 일만 하면… 어느 부모가 그걸 좋아하냐?”


아버지의 말은 모두 옳았습니다.


한 마디, 한 마디 틀린 게 없었고, 그 속에 담긴 걱정과 사랑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가슴 한편이 씁쓸하고 서운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은 그냥 그런 옳은 말보다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가 더 듣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 걱정 말어. 일이고 나발이고, 아무 생각 말고 몸부터 고쳐. 나머진 아빠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투석받으면서 사는 건… 나 하나로 족하다.”


차 안에는 어색한 침묵 만이 내려앉았고,

저는 창밖만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러다 문득 룸미러 너머로,

운전대를 잡은 아버지의 눈빛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언젠가, 아버지가 아직 투석을 받기 전 세상에 지지 않으려 매일을 뜨겁게 살아내시던 그 눈빛이 떠올랐습니다.


투석을 시작하신 뒤로는 늘 지쳐만 보였던 그 눈빛이,

그날따라 이상하리만큼 맑고 또렷했습니다.


룸미러 너머로 보인 아버지의 눈엔

무너져가는 아들의 병을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절박하면서도 뜨거운 의지가 불꽃처럼 살아 있었습니다.


자기 몸 하나 추스르기도 버거운 사람이

자식을 위해 다시 불타오르려는 그 눈빛.


그 눈빛 하나로, 아버지는 모든 걸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제가 작업복만 꺼내려 해도 인상을 찌푸리고, 차 열쇠를 들기라도 하면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시던 아버지의 거센 만류에, 결국 저는 일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빈자리는 부모님이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고, 두 분은 몸에 부담이 큰 현장부터 차례로 줄여가며, 그나마 덜 힘든 일들로 생계를 이어가셨습니다.


그렇게 골라진 일이라 해도, 결국은 몸을 써야 하는 고된 일이었습니다.


그런 부모님과 달리, 저는 침대에 몸을 뉘인 채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흘려보내고 만 있었습니다.


재미있다는 영화나 드라마를 틀어놔도,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김없이 새벽이 찾아옵니다.


도어록이 ‘삑’ 하고 열리고, 부모님이 일을 나가시는 소리가 들려오면, 저는 늘 그렇듯 눈을 감고 조용히 숨을 죽였습니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집안이 고요해지면, 가슴 한편이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이렇게 하루 종일 누워만 있는 제 자신이 미웠고, 그런 저를 위해 오늘도 몸을 혹사하러 나가신 부모님 생각에 죄송한 마음이 밀려왔습니다.


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하루를 흘려보낼 것 같다는 무력감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습니다.


쉬고 있는 몸은 잠시 편했을지 몰라도, 그 순간의 마음은 그 어떤 때보다 지옥 같았습니다.


그렇게 무의미한 하루들이 겹겹이 쌓여가던 어느 날


조직검사를 받은 지 닷새쯤 지난날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고, 수화기 너머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결과가… 예상보다 빠르게 나왔습니다. 가능하면 내일, 아니 오늘이라도 병원에 오실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