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검사를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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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리담

“폐부종까지 진행됐다는 건,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을 텐데요. 왜 지금까지 병원에 오지 않으셨습니까?”


일반병실로 옮긴 뒤 맞이한 첫 회진, 그때 담당 교수님이 처음으로 저를 보고 건네신 말씀이었습니다.


뭐라고 말해야 했을까요.


저만 바라보며 살아오신 부모님께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다고 말해야 했을까요.


자신처럼 투석을 받게 될까 봐, 두려움에 휩싸인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고 말해야 했을까요.


아니면, 이제야 조금 숨 돌릴 수 있을 만큼 삶이 나아지려던 참에, 그 평온함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고 말해야 했을까요.


뭐가 됐든, 이제 와서 그런 말을 꺼낸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제 사정을 구구절절 늘어놓는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변명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냥… 제가 둔한가 봐요. 살이 쪄서 힘든 줄만 알았죠.”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교수님은 한숨을 내쉬셨습니다.


“응급실로 오셨을 당시, 크레아틴 수치가 2.7까지 상승한 상태였고, 단백뇨도 20그램 이상 검출됐습니다. 폐부종까지 동반되어 전반적인 상태가 매우 위중했습니다.”


몇 달 동안 제대로 된 밥 한 끼, 편안한 잠 한 번 자지 못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물 한 모금 삼키는 것조차 힘겨운 일이 되었죠. 그런 몸을 억지로 이끌고 버텨온 힘든 노동의 끝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참혹했습니다.


교수님의 말 한마디, 수치 하나하나가 무모했던 지난날의 저를 꾸짖는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현재는 폐부종도 많이 완화됐고, 크레아틴 수치도 1.6까지 내려온 상태입니다. 다만, 단백뇨가 줄지 않고 여전히 심하게 나오고 있어요.”


아버지를 투석하러 보내고, 밤새 제 곁을 지켜주시던 어머니는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교수님께 물으셨습니다.


“천만다행이네요, 혹시 애아빠랑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명확히 단정할 수는 없지만, 유전적 요인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습니다. “


그 말을 들은 어머니의 표정이 차갑게 굳더니, 이내 간절한 물음이 뒤따랐습니다.


“치료는 가능한 거죠. 선생님?”


“아직 안심할 순 없지만 급성으로 악화됐던 신기능이 어느 정도 회복된 상태입니다. 지금은 정확한 진단이 먼저고, 그러기 위해선 신장 조직검사가 필요합니다. 검사 결과가 나와야 이후 치료 방향을 결정할 수 있어요 “


조직검사라는 단어에 저보다 더 겁을 먹은 어머니를 위해 교수님은 달래듯 설명을 이어가셨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신장에서 아주 작은 조직을 바늘로 살짝 떼어내 현미경으로 확인하는 간단한 검사입니다. 국소마취로 진행되기 때문에 통증은 거의 없고, 검사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다만, 드물게 출혈이 생길 수 있어서 하루 정도는 병원에 계시며 안정을 취하시는 게 좋습니다.”


설명을 마치신 교수님은 제 정강이뼈 쪽을 조심스럽게 눌러보셨고, 움푹 꺼진 자리가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셨습니다.


“하루 이틀 정도 더 이뇨제를 쓰면서 부종을 조금만 더 줄인 뒤에, 조직검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회진이 끝나고 의료진이 병실을 나서자,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교수님이 치료할 수 있다고 하시잖아… 괜찮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


그 말은 저를 향한 위로처럼 들렸지만, 어쩌면 어머니 스스로에게 되뇌는 말 같기도 했습니다.

무료할 것만 같던 병실에서의 하루는, 생각보다 훨씬 분주했습니다.


침대에 실려 초음파실, 심전도실, CT실 등 검사라는 이름의 목적지를 따라 이곳저곳으로 끊임없이 옮겨졌습니다.


침대에 누운 채 인적이 많은 병원 로비를 지나면, 사람들의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그 눈빛엔 연민도 있었고, 호기심도 있었고, 어쩌면 불편함도 섞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시선들 사이에 자리한 저는, 어느새 정말 ‘환자’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그날 저녁, 간호사가 신장 조직검사 동의서를 들고 병실로 찾아왔습니다.


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앞으로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할지… 아무것도 확실한 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했습니다.


이제는 그 어떤 이유로도 피할 수 없는, 있는 그대로의 나와 마주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