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흐릿해지는 의식 사이로, 다급한 의료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혈압 이 너무 높습니다! 190/130입니다.”
“산소포화도 계속 떨어집니다!.”
뭔가가 입 주변에 씌워지고,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어왔습니다. 꽉 막힌 듯 답답한 가슴 위로 차가운 금속이 닿는 느낌이 스쳤습니다.
“수포음이 심하게 들립니다! “
누군가 다급하게 저를 부르지만, 말을 할 힘은커녕 눈을 뜨는 것조차 버거웠습니다.
“환자분, 들리시면 눈 떠보세요! 지금 응급실입니다!”
점점 희미해지는 목소리와 기계음 사이로, 무언가 제정신을 깊고 깊은 심해 속으로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천천히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지만, 그 흐름을 거스를 힘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중환자실 베드 확인해 주세요! 바로 올려야 돼요.”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이 마지막으로 들려왔습니다.
그 말이 허공에 흩어지는 순간, 마치 스위치를 내리듯 세상이 하나씩 꺼져갔습니다. 소리도, 빛도, 감각도 서서히 멀어졌고, 저는 그 안에서 조용히 가라앉았습니다.
차갑지도, 아프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아주 조용한 곳으로, 아무것도 닿지 않는 어둠 속으로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 얼마나 지났을까.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리자, 천장에 매달린 낯선 형광등 불빛이 시야를 파고들었습니다.
어지러운 기계음과 간호사들의 분주한 발소리가 뒤섞였고, 제 몸은 링거 줄과 심전도 패치, 산소 튜브를 비롯해 수많은 선과 관에 휘감겨 있었습니다.
목 안에 무언가 걸린 듯한 이물감이 깊게 박혀 있었습니다. 목은 바싹 마르고, 입 안은 텁텁하게 마비된 것처럼 감각이 둔했습니다. 코끝으로는 진한 소독약 냄새가 스며들며, 속이 울렁일 만큼 매캐하게 맴돌았습니다.
언제, 누가 갈아입혔는지도 모를 환자복이 몸에 걸쳐져 있었고, 살갗에 닿는 천의 감촉이 이상할 만큼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의식이 돌아온 걸 눈치챈 간호사가 조심히 다가왔습니다.
손으로 이마를 가리듯 덮고는, 눈을 들여다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습니다.
“의식은 좀 드세요? 숨 쉬는 건 편안하신가요?”
입을 열 힘조차 없어, 고개만 살짝 끄덕였습니다.
그 작은 반응에도 간호사는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습니다.
“다행히 금방 의식이 돌아오셨어요. 지금 중환자실에 계세요. 보호자분께 연락드렸고, 지금 오시는 중이세요.”
… 가족들이 온다고 합니다.
제가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을 마주하게 되시겠죠.
온몸에 줄이 꽂힌 채 누워 있는 모습을 아무런 준비도 없이 보시게 될 겁니다.
그 생각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습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죄스러움이 서서히 밀려왔습니다.
아버지는 또 얼마나 절망하실까요.
어머니는 제 이름을 부르면서 우시진 않을까요.
형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겠지만, 분명 손끝이 떨릴 겁니다.
차라리, 이 자리를 벗어나 어디든 숨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나도 나를 모른 척하고 싶었습니다.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채 가시기도 전에, 문이 열리고 익숙한 사람들이 보입니다.
파란 비닐가운에 하얀 마스크를 쓴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저를 바라보는 순간, 어머니의 눈에서 말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말 한마디 없이, 어머니는 제 손을 조심스럽게 잡으셨습니다.
그 손이 너무 따뜻해서, 이 병실이 얼마나 차가운 곳인지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어머니의 온기는 이내 뺨까지 번져왔고, 제 눈도 함께 붉어졌습니다.
그렇게 오래도록 아무 말 없이 제 손만 꼭 붙잡은 채, 어머니는 눈물만 조용히, 하염없이 흘리고 계셨습니다.
괜찮다고. 아무 일 아니라고. 곧 일어날 수 있다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으면서 말해드리고 싶었는데 입을 떼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못난 저는 그저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말없이 함께 울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지방에서 근무하던 형도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꾹 다문 입술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담담한 척하는 눈빛 속엔 금세라도 터질 듯한 걱정이 가득 배어 있었습니다.
“괜찮아. 금방 나을 거야.”
형은 그 말을 열 번도 넘게 되뇌다가, 저를 등진 채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떨리는 어깨가 뒷모습에 묻어 나올 무렵, 그는 끝내 눈물을 감추지 못한 채 병실을 나섰습니다.
아버지.
의식이 흐려지던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고 그토록 간절했던 아버지 얼굴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짧은 면회 시간 내내, 아버지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든 아버지께 만큼은, 이런 초라하고 망가진 모습을 끝내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만큼은… 제 이런 모습을 보지 않으셨으면 했습니다. 누구보다 아프신 분께, 이런 아픔까지 짐처럼 안기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그런 마음과는 달리…
간호사들이 오가는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분주한 복도 한편에 홀로 서 계신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만 보입니다.
며칠째 같은 복장, 같은 표정.
문이 열릴 때마다,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움직이지 못한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며칠째 차마 면회는 하지 못하고, 중환자실 앞을 그저 서성이기만 하시는 모습이 자꾸만 보입니다.
대체 왜, 거기서 며칠째 그렇게 서성이고 계신 겁니까.
그러다 몸이라도 상하시면, 어쩌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부모 마음 다 똑같다지만, 자식 마음이라고 뭐 그리 다르겠습니까. 그러니 제발…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세요.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지기까지,
우리 부자는 단 한 겹의 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걱정하며, 바라보지도 부르지도 못한 채
그저 마음으로 조용히 안부를 전했습니다.
들어오지 못하는 아버지의 발걸음과
나가지 못하는 아들의 시선이
그 문턱에서 매일 마주쳤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나눈 가장 긴 대화였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