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버지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07

by 서리담

“아이고, 젊은 사람이 뭐가 힘들다고 벌써 퍼졌어?”


고철을 트럭 위에 실어놓고 담배를 피우던 한 인부가 비웃듯 말을 건넸고, 저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고르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습니다.


“요즘 좀 피곤하네요 하하“


웃고는 있지만, 뻐근하게 조여 오는 가슴과 끊어질 듯한 허리 통증에, 몸을 제대로 펴는 것조차 힘에 부쳤습니다.


“살쪄서 그런 거야, 살쪄서! “


인부 아저씨의 놀림에 주변 사람들까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부종이 날이 갈수록 점점 심해졌습니다.


평소에는 80킬로 정도의 건장한 체격이었지만, 지금은 바지 사이즈가 32에서 40으로 늘어날 만큼 몸이 부어 있습니다.


발등도 터질 듯이 부어올라서 넉넉하게 맞던 270 사이즈의 안전화가 이제는 290도 겨우 맞을 지경입니다.


배는 물을 머금은 풍선처럼 부풀었고, 고환은 야구공만큼이나 부어올라 다리를 모으는 것조차 힘겨웠습니다. 이제는 평범한 일상조차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었습니다.


병원에 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두려움에 발목이 잡혀 망설이기만 했습니다.


이제야 집 안에 웃음이 스며들기 시작했고, 아버지께서 평생 짊어지고 살아오신 짐도 비로소 조금은 내려놓으신 듯했는데… 제가 아프기라도 하면, 그렇게 지켜낸 이 평온마저 한순간에 무너질까 봐, 두려웠습니다.


요즘은 가족들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자꾸 피하게 됩니다. 괜히 눈이라도 마주쳤다간, 제 상태를 들켜버릴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더 바쁜 척을 했습니다.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집을 나섰고, 가족들이 모이는 밥상 앞에서는 없는 약속을 꾸며대며 슬쩍 자리를 피했습니다. 늦은 밤, 모두 잠든 뒤에야 조용히 돌아와 이불속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어떻게든 들키지 말자. 지금은 아프면 안 돼.’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뇌며,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지속되는 피로와 답답함에 밥 생각도 사라졌고, 언젠가부터는 하루 한 끼조차 제대로 챙겨 먹지 않았습니다.


먹은 것도 없는데 배가 부르고 더부룩해 식욕이 사라진 것도 있지만, 하루 이틀 정도 굶고 나면 그나마 몸이 조금은 편해졌습니다.


며칠을 굶어도 먹고 싶은 게 도통 생각이 나질 않고, 요즘은 그저 편히 누워 자고 싶은 생각뿐인데, 그 사소한 바람마저도 제 몸은 좀처럼 허락해주지 않았습니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제대로 누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두 시간쯤 눈을 붙였다가 이른 새벽에 깨어, 침대 머리에 기대앉은 채 뜬눈으로 시간을 보내다 일터로 향하곤 했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밤새 뒤척이다 새벽이 밝기도 전에 조용히 집을 나섰습니다.


몸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오늘도 그냥 지나가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현장에 도착해 고철 몇 덩이 날랐을 뿐인데, 숨이 목까지 차올랐습니다. 헉헉거리며 무릎을 짚고 겨우 버텼지만, 이내 몸이 휘청이며 중심을 잃었습니다.


머리는 멍했고,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습니다.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 보려 했지만, 다리는 말을 듣지 않았고 숨은 점점 더 거칠어졌습니다. 누군가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마저도 점점 멀어지고 희미해졌습니다.


결국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제야 주변에서 분주하던 발걸음들이 하나둘 멈추는 기척이 느껴졌습니다.


눈앞은 아득했고, 가슴 깊은 곳에서 둔한 고동 소리만 울려왔습니다.


“박사장 괜... 괜찮아?”


누군가의 익숙한 목소리가 가까이서 울리고 흐릿한 시야 속, 희미하게 사람들의 얼굴이 떠다닙니다.


꺼져가는 정신을 부여잡은 채, 어떻게든 트럭까지 걸어가려 애썼습니다.


잠시만이라도 트럭에 기대 숨을 돌리면, 다시 움직일 수 있을 거라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한 손을 바닥에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지만, 다리는 후들거리고 허벅지엔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이를 악물고 일어나, 억지로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바닥이 기울고 세상이 한쪽으로 쏠리는 듯했습니다.


시야는 점점 흐려졌고, 빛이 번져 눈앞이 뿌옇게 덮였습니다.


귀 안에서는 웅웅 거리는 소리만 맴돌았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들이마신 숨이 가슴에서 막혀 뱉어지지 않았습니다.


트럭 앞에 간신히 다다라 손잡이에 손을 뻗는 순간, 버티고 있던 힘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며 무릎이 꺾였고, 몸을 휘청이다 그대로 쓰러져 버렸습니다.


얼굴이 거친 아스팔트에 닿는 순간, 따가운 통증이 뺨을 타고 머릿속을 뒤흔들었습니다.


몸은 일말에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고, 팔도 다리도, 이제는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마음은 어서 일어나라고 소리치는데,

몸은 더 이상 제 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투석을 받으시기 전, 맥없이 쓰러지셨던 그날도

바로 이 트럭 옆이었습니다.


얼마나 무거운 몸을 이끌고, 말없이 하루를 버티셨는지.

그 침묵 속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삼키고 계셨는지.

이제야, 그 마음이 조금은 짐작됩니다.


몇 해가 흐른 지금, 이제는 제가 그 자리에 쓰러져, 점점 흐려지는 시야로 아득히 먼 하늘을 바라보며 서서히 의식의 끈을 놓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닮아 있습니다.

고통을 말하지 않는 방식도, 버티는 법도,

끝내 쓰러지기 전까지는 손 내밀지 않는 그 고집까지도.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가끔은 참 잔인한 운명처럼 느껴집니다.

벗어나려 할수록 더 깊숙이,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의식이 점점 흐려져 가는 이 순간에도,

이상하게 아버지의 얼굴만은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아버지,

그날…

당신이 쓰러지셨던 그날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이… 혹시 저였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