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종료, 그리고 시작

05

by 서리담

아침 일찍 눈을 떴습니다.


어쩐지 오늘은 평소보다 눈꺼풀이 덜 무거웠고,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햇살도 한결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무심코 거울을 들여다보니, 조금 가라앉은 얼굴의 붓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동안 심해지기만 하던 부종이 걱정스러워, 결국 인터넷을 뒤적이며 저염식 식단을 시작했습니다.

소금기는 최대한 줄이고, 자극적인 음식은 멀리했습니다.


처음엔 입맛도 없고, 매 끼니가 고역처럼 느껴졌지만, 그래도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몸이 반응해 주는 걸 보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랜만에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고, 평소보다 이른 시각에 카페 문을 열었습니다.


오늘은 왠지, 카페를 ‘광이 나도록’ 닦아주고 싶습니다. 오래된 친구의 등을 토닥이듯 말이죠.


유리창에 쌓인 먼지를 하나하나 닦아내자, 흐릿하던 창밖 풍경이 점차 선명해졌습니다. 세제를 푼 물을 스프레이에 담아 뿌리고, 마른 천으로 부드럽게 문질러 닦으니, 유리는 햇살을 받아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손걸레를 꺼낸 것도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쪼그려 앉아 바닥의 구석구석을 힘주어 닦았습니다. 커피 얼룩, 발자국, 먼지 자국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 눈을 낮추고, 손을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평소엔 밀대로 대충 훑고 지나가던 바닥이었지만, 오늘만큼은 꼭 손으로 닦고 싶었습니다.


손목에 힘이 들어가고, 무릎이 저려오는데도 이상하리만치 손이 계속 움직였습니다. 걸레가 지나간 자리는 점점 반들반들해졌고, 바닥은 마치 처음 그 모습을 되찾아가는 듯했습니다. 구석까지 닦인 바닥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고르자, 마음 한편에서 묘한 뿌듯함이 일었습니다.


마치 처음 이곳의 문을 열던 그날처럼요.


“커피 지금 돼요?”


가게 문을 활짝 열어놓고 청소에 한창 몰두하고 있던 중,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고개를 들자, 문 앞에는 어제처럼, 또 평소처럼 누군가가 서 있었습니다.


“오늘 커피는 그냥 드릴게요.”


“어? 왜요?”


“오늘이 마지막 영업일이라서요. 지금까지 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잠깐 말이 끊기더니, 손님의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진짜요…? 여기 커피, 제가 제일 좋아했는데… 이제 어디 가야 하나요…”


가슴 한편이 뻐근해졌습니다.


그저 스쳐가는 공간일 줄 알았던 이 가게가, 누군가에겐 참 소중했던 모양입니다.


어디서 소식을 전해 들었는지, 하나둘씩 단골손님들과 동네 사람들이 가게로 찾아오십니다.


과일이며, 김치, 떡, 빵까지… 평소보다 무거운 손, 평소보다 길어진 인사말.


“이거, 집에서 조금 남은 건데 가져왔어요.”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꼭 다시 만나요.”


괜히 울컥해서, 눈물이 고입니다.

말없이 웃고만 있었는데, 자꾸만 가슴이 저려옵니다.



벽을 한번 더듬어 봅니다.


오래된 시멘트 벽을 사포로 밀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 하루 종일 벽을 칠하던 기억이 선명히 떠오릅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봅니다.


그곳엔 플라스틱 접시를 잘라 만든, 어설프고 투박한 조명갓이 여전히 달려 있습니다. 손재주 하나 없던 제가 밤새 가위질을 해가며 만들었던 겁니다.


빛은 엉성하게 퍼지지만, 그 조명 아래서 참 많은 날들을 견뎌냈습니다. 지금도 그 조명은 말없이, 제가 만든 공간들을 가만히 비추고 있습니다.


평소엔 더디게만 느껴지던 시간이, 아쉬움을 붙잡고 있다 보니 이렇게 쏜살같이 흘러가버립니다.


벌써 마감 시간이 코앞이네요.


언제나 그랬듯 천천히 지나갈 줄 알았던 하루가, 오늘만은 유독 빠르게 저물어갑니다.


마지막으로 포스기에 마감 버튼을 누르는 순간


참아왔던 눈물이 쏟아져 내립니다.


3년 6개월이라는 시간,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얼굴과 순간들이 문득 스쳐갑니다. 이제 그 시간에 조용히 마침표를 찍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꼭 다시 돌아올 겁니다.


조금 멀어질 뿐, 이 꿈을 완전히 내려놓는 건 아닙니다.

다시 웃으며 돌아올 그날을, 저 자신에게 조용히 약속해 봅니다.



‘카페, 오늘부로 영업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

폐업 소식을 들은 뒤, 참 많은 분들께서 연락을 주셨습니다.


부족한 제가 뭐라고, 취업 제안이며, 함께 해보자는 사업 제안까지, 생각지도 못한 따뜻한 말들이 이어졌습니다.


주제넘게 과분한 연봉을 제안해 주신 회사도 있었고, 혹할 만큼 매력적인 아이템을 들고 찾아오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은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지금 제 마음이 머물러야 할 곳,

어떤 꿈보다, 어떤 기회보다 우선인 그곳에 가려고 합니다


그 이후의 길은… 그곳에서 다시 생각해보려 합니다.


가게 문을 닫고, 마무리까지 끝낸 다음날 새벽.


집 앞, 낡은 고물트럭 옆에 서서 아버지를 기다립니다.


매일같이 싸우며 말렸습니다.

몸이 상하신다고, 투석받는 몸으로는 무리라고.

하지만 점점 어려워지는 집안 사정 앞에서,

아버지는 결국 제 눈을 피해 몰래 일을 나가셨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늘 그랬던 것처럼 트럭 시동을 거셨습니다.


오늘도 몰래 일을 나가시려 조용히 신발을 꺼내 들고, 문을 삐걱이며 살짝 여시는 그 모습을 창문 너머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잔소리 대신, 조용히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탔습니다.


아버지께서 놀란 듯 고개를 돌리셨지만, 저는 짧게 웃으며 한마디 건넸습니다.


“출발!”


아버지가 쓰러지기까지,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 곁에 있어주지도, 변화의 징후조차 알아채지 못했던 무심함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그리고 결국,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었던 제 무능함이 아버지를 다시 일터로 내몰았다는 사실이 깊은 죄책감으로 가슴을 짓누릅니다.


언젠가 아버지가 제 곁을 떠나는 날이 온다면, 그 슬픔은 가슴속 깊은 곳에 응어리로 남아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런 결정을 내립니다.


지금 이 선택이, 아버지께 조금이라도 덜 죄송한 길이 되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제 몸이, 조금만 더 버텨주기를.


아버지 곁을 지키고 싶은 이 마음이, 너무 늦기 전에 닿아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