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저희 아버지는 한때, 소위 ‘잘 나가던’ 분이었습니다.
단정한 정장에 깔끔한 셔츠, 반짝이는 세단을 몰던 아버지는 누구보다 당당해 보이셨죠.
작은 회사를 운영하시며 바쁜 나날 속에서도 가족과 친척들을 늘 살뜰히 챙기셨고, 스쳐 지나간 인연의 경조사까지도 잊지 않을 만큼 정 많고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아버지는 누구나 한 번쯤 기대고 싶어 하는 든든한 존재였습니다. 동네 어디를 가든 반가운 인사를 받았고, 지인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가장 먼저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 제 마음속에 마치 영웅 같았죠.
하지만 사업이 무너지자, 상황은 너무도 냉혹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버지 곁을 맴돌며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줄 듯하던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차갑게 등을 돌렸고, 한때 분주하던 전화기에 더 이상 어떤 안부도, 위로도 걸려오지 않았습니다.
믿었던 친구들은 물론, 피를 나눈 형제자매들 까지도 하나둘 발길을 끊었습니다.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던 거실은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운 적막에 잠겼고, 빨간 압류 딱지가 붙은 가구들 틈새로, 덩그러니 놓인 소주잔 하나와 담배꽁초로 가득 찬 재떨이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평생을 바쳐 쌓아 온 재산도, 믿어왔던 인연들도 하루아침에 무너진 뒤, 깊은 상실감에 잠긴 부모님은 저희 형제를 데리고 결국 상처뿐인 고향을 등지셨습니다. 숨 막히는 현실 속에서 숨구멍 하나라도 찾으려는 듯, 새벽 기차에 몸을 싣고 도망치듯 낯선 타지로 향하셨습니다.
‘땡전 한 푼’ 없이 시작한 타향살이의 설움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가혹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새벽마다 인력사무소로 나가 돈이 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경기가 좋지 않은 날엔 며칠씩 일거리를 잡지 못한 채, 허탕을 치고 돌아오시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나날 속에서, 내일은커녕 오늘조차 감당하기 벅찼던 우리 가족에게 작은 희망의 불씨가 되어준 건, 시동조차 제대로 걸리지 않던 낡은 1톤 트럭 한 대를 아버지께서 불쑥 몰고 오신 그때부터였습니다.
찌그러진 문짝, 삐걱거리는 운전석, 반쯤 내려가다 멈춰버리는 창문.
오늘 당장 도로 한복판에서 퍼져도 이상할 것 없는 트럭이었지만, 아버지께는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낡은 트럭에 시동을 걸어 묵묵히 골목을 누비며, 폐지, 고철, 망가진 가전제품, 남들이 쓸모없다 버린 것들을 하나하나 수거하며 하루를 채워나가셨습니다.
고되고 남루한 일이었지만, 일자리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몇 안 되는 일이었기에 아버지는 자존심 따윈 기꺼이 내려놓고, 그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눈발이 흩날려도 그 낡은 고물 트럭은 도무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히, 또 묵묵히
가족을 지키겠단 마음 하나로 매일 새벽을 깨우셨습니다.
삐걱대는 고물트럭 한 대에
아버지는 남은 삶을 실어 달리셨습니다.
그 트럭이 멈추지 않았기에, 우리 가족은 어떤 시련 앞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죠.
아버지의 모든 노력과 희생 끝에 꽃이 피었고, 마침내 열매를 맺었습니다.
형은 직업군인의 길을 걷다 전역 후 중견기업에 입사했고,
저는 작지만 제 이름을 내건 가게의 문을 열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부모님께도 조금쯤 편한 삶을 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을 무렵.
아버지께서 쓰러지셨습니다.
신장이 좋지 않으시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병의 그림자가 그렇게나 깊고, 아득하게 삶을 뒤덮고 있을 줄은…단 한순간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이야기 지만,
매일 힘들어하시는 아버지를 보다 못한 어머니의 성화에 마지못해 병원을 찾았고, 그곳에서 들은 말은 아버지의 신장이 이미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손상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사는 더 늦기 전에 투석을 시작하자고 권했지만,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셨습니다.
“아직 일을 해야 합니다.”
투석을 시작하면 트럭 운전도, 고물 수거도 더는 할 수 없다는 걸 아버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습니다. 몸은 무너져가고 있었지만, 일터를 떠난다는 건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내려놓는 일이었기에 끝내 거부하셨습니다. 처자식에게 짐이 되는 삶만은, 끝끝내 외면하고 싶으셨던 거겠지요.
퉁퉁 부어 고물보다 무거워진 두 다리를 질질 끌며, 하루하루를 오직 악으로 버텨내시던 아버지는 결국 어느 날… 트럭에 물건을 싣던 중, 힘없이 그대로 쓰러지셨습니다.
아무런 손쓸 방법도 없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아버지에게 남은 선택지는 투석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마저도 끝내 거부하셨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자식들 앞날에 짐이 될까 봐.
“뭐가 걱정이야! 자식들이 다 컸는데!”
바보처럼 아픈 걸 참고 또 참았던 아버지에게, 꾹 눌러 담아두었던 답답함이 결국 터져 나오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고집 피워? 우리 이제 다 컸고, 각자 살 길도 잘 찾아가고 있는데… 의사 말 좀 들으라고, 쫌.”
말 끝에 떨린 목소리가 들키지 않으려 입술을 앙다물었지만, 이미 눈가가 화끈해져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보며 앉아 계셨습니다.
그렇게 길고 긴 실랑이 끝에, 아버지는 마침내 투석을 위한 혈관 확장 수술, 동정맥루 시술을 받으셨습니다. 퇴원하던 그날, 저는 생전 처음으로 말없이 오래도록 아버지를 꼭 안아드렸습니다.
한 달쯤 뒤, 아버지의 투석이 시작되었고, 늘 아버지와 함께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달리던 고물 트럭은 이제 집 앞에 멈춰 선 채, 아버지와 함께 시간도 걸음을 멈춘 듯 조용히 서 있습니다.
투석으로 지쳐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며, 아들로서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다는 사실은 마음 깊은 곳을 사무치게 후벼 팠습니다.
그래서 제 신장을 아버지께 드리기로 결심했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버지의 고통이 조금은 덜해질 거라 믿었습니다. 투석 없이도 다시 예전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공여자 신청조차 할 수 없는 몸이 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든 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던 제 건강이, 이렇게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습니다. 누군가의 희망이 되기는커녕, 어쩌면 저 역시 병든 몸으로 살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날 이후, 제 마음속은 한없이 뒤엉킨 채였습니다.
죄책감과 절망, 그리고 부끄러움.
하지만 하나는 분명합니다.
세상에 지쳐버린 아버지께서 이제는 조금이라도 편히 쉴 수 있도록, 더 이상 돈 걱정에 잠 못 이루지 않도록, 제가 한번 노력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