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제 몸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꽤 오래전 일이었습니다.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어릴 적, 우연히 시작한 아르바이트를 계기로 바리스타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고, 그때부터 제 마음속엔 작은 꿈 하나가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는 꼭 내 이름을 건 카페를 열겠다고 다짐했죠.
십 대 시절부터 주말도, 휴일도 반납한 채 악착같이 일하며 돈을 모았고, 스물셋. 긴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그 해, 마침내 그 다짐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손에 쥔 돈이 많지 않다 보니, 권리금이 없고 월세가 가장 낮은 곳만 찾아다녔고, 그렇게 사람들의 발길조차 뜸한 골목 안쪽, 쓰레기 더미에 뒤덮인 채 방치되어 있던 공간을 계약하게 되었습니다.
골목 깊숙한 곳,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어두운 자리였습니다.
사람들의 의심과 조롱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낡고 버려졌던 공간에 다시 숨을 불어넣기 위해, 저는 피와 땀을 아낌없이 쏟아부었습니다.
망치질 하나, 페인트칠 하나에 온 마음을 담았고, 무릎이 까지고 손바닥이 터져도 공구를 놓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혼자 벽지를 뜯고, 바닥을 닦고, 조명을 달았습니다. 그 누구의 손길도 없이, 그 어떤 기술자도 없이, 두 손으로 공간을 하나씩 바꿔갔습니다.
두 달 이 걸렸습니다.
밤낮없이 이어진 셀프 인테리어 끝에, 마침내 그 폐허 같던 골목 한편에 제 꿈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작고 투박했지만, 제 온기가 담긴 첫 번째 카페였습니다.
가게를 연 뒤에도 힘든 날들은 계속됐지만, 한 걸음씩 차근차근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하루 매출에 마음 졸이고, 손님 한 명 한 명의 반응에 온종일 마음이 흔들리던 시절도 있었지만… 어느새 점심시간이면 문 앞에 줄이 생기고, 단골손님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던 공간이, 이제는 누군가의 하루를 채우는 작은 쉼터가 되어 있었죠.
그렇게 바쁜 하루하루 를 보내던 어느 날.
평소 사람들과 어울려 술 마시는 걸 즐기다 보니, 아침이면 종종 숙취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유독 심각했습니다.
속은 뒤집히고, 신물이 끊임없이 올라왔으며, 목은 타들어가듯 말라 있었습니다. 손발은 저릿저릿하게 붓고, 몸 전체가 무거운 돌덩이처럼 가라앉아 있었죠.
단순한 숙취라고 넘기기엔, 뭔가 이상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가게 문을 잠시 닫고, 근처 병원을 찾았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던 터라, 그냥 진료만 후딱 받고 약 처방이나 받아 나오면 되겠지 싶었죠.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부드러운 인상에 의사 선생님께서 저를 맞이해 주셨습니다.
“어제 과음을 좀 해서 그런지 속이 계속 쓰리고, 몸이 많이 붓네요 “
“몸이 자주 부어요?”
제 말을 들은 의사 선생님은 다리와 팔뚝을 시작으로 몸 여기저기를 눌러보시더니, 가볍게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무슨 술을 궤짝으로 드셨어요?”
“아니요? 그냥 머... 두세 병 정도요? “
“하하, 술 잘 드시나 봐요. 그런데 아무리 많이 마셔도 이 정도로 붓는 건 좀 이상한데요. 간단한 검사 몇 가지 해봅시다.”
“아… 제가 지금 좀 바빠... “
”이 간호사! “
검사는 괜찮다고 말하려던 찰나, 선생님은 벌써 간호사를 불러 혈액검사와 소변검사를 지시하고 계셨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간단한 거 몇 가지만 확인해 봅시다.”
가게를 비운 시간이 점점 길어지자 손님들의 전화가 연달아 걸려왔고, 마음은 한없이 조급해졌습니다. 거절하고 싶었지만, 선생님의 단호한 말투에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잠시라도 푹 쉬자 싶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제 이름이 불렸습니다.
“박 00 씨.”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의자에 채 앉기도 전에 선생님이 먼저 물으셨습니다.
“소변에 거품 많이 생기시죠?”
“거품이요..?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
“단백뇨가 많이 나오고 있어요. 혈뇨도 심하고요.”
“단백뇨요…? 혹시 당뇨랑 비슷한 건가요? “
제 말을 들은 의사 선생님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당은 없어요. 당뇨까지 있었으면 정말 골치 아플 뻔했죠. 자, 이리 와서 잠깐 이것 좀 보세요.”
의사 선생님은 제 의자를 바짝 끌어당기더니, A4 용지에 출력된 혈액검사 결과지를 가리켰습니다.
“이게 알부민이라는 건데요. 혈액 속 단백질의 일종이에요.
단백뇨가 나오면 혈액 속에 단백질이 소변으로 빠지겠죠?”
저는 별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정상 수치는 보통 3.5에서 5.0 사이인데, 환자분은 지금 2.9까지 떨어져 있어요. 이 수치가 낮으면 피 속의 수분이 혈관 밖으로 빠져나가서, 몸이 그렇게 퉁퉁 붓는 겁니다.”
“아...”
“여기 보시면, 콜레스테롤 수치도… 어휴, 300이 넘었죠? 알부민 수치가 이렇게까지 낮아지면, 간이 그걸 보상하려고 콜레스테롤을 과도하게 만들어내서 심한 고지혈증 이 생기는 거예요. “
“아하...”
의사 선생님은 차분히 설명을 이어가셨지만, 정작 제 머릿속엔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온통 마음은, 빨리 가게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죠.
“전형적인 신증후군 증상이에요.”
“그게 뭐죠?”
“신증후군이라는 건요, 쉽게 말해서 신장이 단백질을 제대로 걸러주지 못하는 상태예요. 원래는 단백질이 소변으로 빠져나가면 안 되는데, 지금은 그게 소변으로 빠져나가고 있어서 몸속 단백질이 계속 유실되고 있는 겁니다.”
“잠깐만요… 신장이라고요?”
‘신장’이라는 단어가 들리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습니다.
아무리 흘려듣고 싶어도, 그 단어만은 귓가를 끈질기게 맴돌았습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네. 하루라도 빨리 정밀검사를 받고 치료를 시작하셔야 합니다. 진료의뢰서를 한 장 써드릴 테니까 대학병원에 한번 가보세요 “
하늘도 참 무심하게, 세상에 많고 많은 병 중에, 왜 하필 신장에 병이 생긴 걸까요.
“저기… 혹시 신장이식은 가능한가요?”
제 질문에 의사 선생님은 잠시 당황한 듯 저를 빤히 바라보시더니, 이내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하하, 그 정도는 아니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조직검사 결과에 따라 병명이 달라질 수는 있지만, 약 잘 드시고 치료만 잘 받으시면 괜찮아질 수 있습니다.”
고개를 저었습니다.
“… 그게 아니고요. 제가 혹시… 다른 사람한테 신장을 이식해 줄 수 있나요?”
방금 전까지 웃고 있던 의사 선생님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웃음기가 사라졌습니다.
“혹시, 가족 중에 신장 질환 앓으신 분 있으세요? “
“네... 아버지 가요.”
잠깐의 정적이 흘렀습니다.
선생님은 더 이상 웃지 않으셨습니다. 방금 전까지 농담을 섞던 입가도 굳게 닫힌 채, 고개를 저었습니다.
“안될 겁니다 “
짧고, 단호한 대답이었습니다.
“정밀검사를 하지 않고, 지금 이 검사 결과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어요. 환자분은 이미 신장에 이상이 생긴 상태입니다 공여자 신청 자체가 불가능해요 “
의사 선생님은 어느새 웃음기 사라진 제 얼굴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아버님 상태가 어떤지는 제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젊은 나이에 신장에 문제가 생겼다면, 유전적인 요인도 충분히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진료의뢰서에 병원 직인을 꾹 눌러 찍고, 제게 건네며 걱정 어린 눈빛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일찍 발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H 대학병원에 한 번 가보세요 “
손에 쥐어준 의뢰서를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다, 조용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 가봐도 되죠? “
진료실을 나가려던 순간, 의사 선생님이 다시 저를 불러 세우셨습니다.
“환자분, 꼭 치료받으셔야 합니다. 방치하시면 정말 위험해집니다.”
그 목소리는 이상하리만큼 단호했고, 마치 제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이미 다 알고 있기라도 한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말 대신 옅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숙였고, 천천히 진료실 문을 닫았습니다.
몸에 병이 생긴 것보다 더 아팠던 건, 아버지께 새로운 삶을 드리고 싶었던 제 마음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져버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상실감은, 지금 이 순간 제게 어떤 통증보다도 깊게 다가옵니다.
아버지.
당신을 오랫동안 괴롭혀왔던 그 삶의 그림자가, 이제 제게 드리운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