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왜 이렇게 살이 쪘어? “
요즘 제가 가장 많이 듣고 있는 말입니다.
가끔 가게에 들른 친구들이나 오랜만에 방문한 손님들이 통통 해진 저를 보고 처음 건네는 인사말이기도 하죠.
손님들에게 음식냄새를 풍길까, 눈치 보며 겨우 한 끼 챙겨 먹는데 살이 찔리가요, 요즘 들어 몸에 붓기가 점점 심해집니다.
몸이 서서히 망가져 가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치료 과정은 생각보다 고되고 길었습니다. 스테로이드와 면역억제제를 쓰면 쉽게 피로해지고, 일상적인 노동도 어려울 수 있다더군요.
글을 읽는 순간, 머릿속을 가장 먼저 스친 건 치료도, 회복도 아닌… ‘그럼 나는 어떻게 돈을 벌지?’라는 절박한 물음 하나뿐이었습니다.
허리 통증으로 더는 일하지 못하는 어머니, 매일 투석을 견디는 아버지. 그런 상황에서 저마저 일을 놓게 된다면…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형에게, 모든 짐이 고스란히 쏟아지게 될 겁니다.
그 생각에 병원 문턱을 넘는 일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가끔 투명한 컵에 소변을 받아 피가 섞이지 않은 걸 확인하고는, ‘아직은 괜찮겠지’ 하며 스스로를 애써 달래곤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투석을 시작하신 뒤, 미숙한 제가 흉내 내며 앉은 가장의 자리. 그 버거운 책임의 시간은 어느덧 1년을 훌쩍 넘기고 있었습니다.
“요즘 돈 좀 버나 보네?”
걱정 없이 살만하니까 살이 찌는 거라며 빈정대는 이들도 있었지만, 현실은 그 반대였습니다. 날이 갈수록 장사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장사가 잘된다는 소문이 퍼지자, 주변 곳곳에 하나둘 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했어요.
“사장님, 저기 골목에 엄청 큰 카페 생긴다던데요?”
걱정스레 말을 건넨 손님에게 저는 애써 웃으며 ‘괜찮아요’라고 쿨한 척 대답했지만, 그날 밤 신경이 쓰여 도저히 잠에 들 수 가없었습니다.
좁고 투박한 제 가게는 전문 인테리어 업자들이 공사한 넓고 세련된 카페들과의 경쟁에서 밀릴게 뻔했습니다. 올해만 해도 이 근처에만 카페가 세 군데나 문을 열었는데,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죠.
얼마 지나지 않아, 걱정은 현실이 되었고 매출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께 돈 걱정은 하지 말고 편히 쉬시라고 큰소리쳤지만, 사실 요즘은 매달 집에 보내는 생활비가 점점 버거워지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매출을 늘려보려 자전거를 타고 동네 곳곳을 누비며 배달도 해보고, 저녁엔 새벽 3시까지 영업시간을 늘려 맥주까지 팔아봤지만, 상황은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더 나빠지기만 합니다.
‘버티다 보면 잘되겠지’
라며 스스로를 달랬지만, 그 믿음도 점점 바닥이 드러나는 통장 잔고와 함께 조금씩 무너져 가고 있었습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가게를 지키며 하루하루 장사에 매달리는 일뿐인데 이제는 텅 빈 가게에 앉아 있는 게시 간 낭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께 편안한 삶을 드리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로, 아픈 몸을 숨기며 애써왔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 진심 따윈 모르는 듯,
끝내 차가운 현실만을 제 앞에 내밀었습니다.
가게 매출은 줄어들고,
집에 보내던 생활비도 점점 빠듯해지더니
이젠 월세까지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텅 빈 가게 안에서 하루를 버틸수록
등 뒤로는 밀린 고지서가 하나둘씩 쌓여갔고,
결국엔 주변 사람들에게 손을 벌리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그날도, 통장을 들여다보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버티는 것도 이제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걸요.
제 무능함을 탓하며 자책만 하던 어느 날,
집으로 향하던 골목 어귀에서 문득 시선을 돌렸을 때, 늘 그 자리에 있던 아버지의 고물 트럭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집 앞에 주차된 채,
다시는 시동이 걸리지 않길 바랐던 그 고물 트럭.
삶의 흔적처럼 녹슨 문짝을 달고, 조용히 멈춰 서 있던 아버지에 고물트럭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가게를 떠나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카페는 너무도 간절하고 벅찼던 꿈이었습니다.
이제는… 깨어나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