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개장

by 차효권

육개장, 매운 고기 국물에 대파, 마늘, 그리고 잘게 찢은 소고기를 기본으로 때에 따라 고사리나 숙주, 어느 경우엔 곤드레나물도 들어가는 탕 요리다. 육은 ‘고기 육(肉)’자를 쓰고 개는 처음부터 소고기를 쓴 것이 아니라 개고기를 썼다해서 ‘개’ 자를 쓴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설로 ‘열 개(開)’자를 써서 고기를 끓인 열린 음식이라는 의미도 있다.


전자는 조선시대 관점으로, 소란 일꾼이요 사육 대상이 아니었으므로 고기로 쓸 수 있는 대안은 개가 가장 만만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철탕 혹은 보신탕’이라 부르는 이 전골 요리를 처음 보면 불그스름한 빛깔과 매콤함이 육개장과 흡사하다. ‘보신탕’이라는 이름 때문에 입에 대지 않았던 음식을 육개장으로 속아 먹은 적도 있었다. 지금은 그럴 일이 없지만 육개장 먹는다 생각하고 먹으라는 말을 간혹 듣는다.


후자가 뜻하는 열린 음식이라는 말도 일리 있다. 소고기 국물에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채소들이 다 들어가니 개방된 음식도 맞다. 소고기를 우려낸 국물에 고추기름을 넣어 색을 붉게 하고 잘게 찢거나 썰어낸 소고기를 기본으로 한다면 거기에 들어가는 채소가 어지간하면 다 허용되니 열린 음식이라는 표현도 가능하다. 음식값이 높아진 요즘에 적은 부담으로 맛과 영양 모두 맛볼 수 있으므로 건강식으로도 좋은 음식이다.


아버지는 미식가셨다. 그렇다고 방송에서처럼 미각이 뛰어나신 것은 아니었다. 드시는 음식마다 특유의 맛을 감지하고 음식에 대한 깊은 식견을 가진 전문적인 맛 칼럼니스트는 더더욱 아니었다. 한 수저 뜨면 그저 맛있다, 맛없다 정도만 언급하시는 분이었다.


그래도 아버지가 먹자고 해서 실패한 음식은 거의 없었다. 알고 계신 맛집 중엔 방송에 나오지 아니한 오랜 노포(老鋪)도 몇 군데 있었다. 을지로에 가면 설렁탕을 드시러 갔고 영등포에 가면 복매운탕을 드셨다. 그렇지 않으면 뭔가 허전해하셨다. 휴게소에서 호두과자를 안 먹고 떠나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맛집을 이어받았다. 저런 곳에서 무슨 맛을 기대할까 싶다가 나중엔 아버지보다 더 찾아간 맛집도 있었다. 소머리국밥 집이 그랬고, 생대구탕 집이 그랬다. 지금은 아버지보다 더 남들에게 자랑하는 맛집이 됐다.


맛집만 그러하지 않았다. 먹는 요령까지 익힌 음식도 있었다. 속초에서 올라오는 길에 들른 막국수 집에서 아버지는 막국수 말고도 수육 한 접시를 더 주문했다. 수육 따로 막국수 따로 드시지 아니하셨다. 면 위에다 수육 한 점을 얹어 드셨다. 그래야 더 맛있고 더 든든할 거라고 하셨다. 정말 그랬다. 그 뒤로 속초에서 올라오는 길에 막국수 집에 들르면 그렇게 먹었다. 남들에게도 그렇게 먹으라고 가르쳐 주기까지 했다. 수산 시장에서 붕장어(아나고) 회를 떠도 꼭 물기를 완전하게 빼달라고 요구하셨다. 이불솜만치 뽀송뽀송하게 빼달라고 하셨다. 그렇게 가져온 붕장어 회는 뽀송뽀송한 식감에 고소한 맛도 났지만, 밥과 함께 먹는 붕장어 살에는 씹는 맛이 묘하게 생겨났다. 횟집에서 곁들이찬(스끼다시) 정도로 여길 붕장어가 아버지 덕에 밥상에서 메인으로 승격됐다.

그런 아버지의 노하우를 조금 전수받았다. 간판이 좀 낡은 것 같은 집은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장사했다는 증거였다. 그것은 그 집을 지켜주는 단골들이 있다는 뜻이었고, 맛이 보장됐다는 뜻이었다. 유독 사람이 몰리고 줄까지 서가며 먹는 집은 잘 가질 않았다. 맛집은 맞지만 분주하고 정신없는 곳에서 얼마나 제대로 맛을 즐길까 싶었다. 빨리 먹고 자리를 내어 주는 것이 예의라 내 돈 내고 바쁘게 먹어야 하는 것이 불편해졌다. 한적하면서도 꾸준하게 손님이 들어오는 가게를 더 좋아하게 됐다. 여유를 누릴 수 있어야 더 맛있게 즐길 수 있어서다. 그것도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꾸준하게 오시는 곳이라면 보장된 맛이 있는 집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알려 주신 집에는 혹은 음식 중에 육개장은 없었다. 크게 까탈스러운 입맛은 아니었지만, 나이가 드시면서 조금 가리는 음식이 생기긴 하셨다. 돼지고기가 그랬다. 제대로 된 집이 아니면 아버지 입맛에 특유의 누린내가 어김없이 걸려들었다. 그래서 감자탕이나 삼겹살 같은 음식은 잘 드시지 않았다. 육개장은 그렇지 않았다. 가게에서 점심 식사로 자주 드시곤 하셨다. 그저 평범한 보통의 육개장이었다. 다른 더 맛있는 집이 있을 수 있는데 아버지 입맛에 그만한 집을 만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입맛에 거부감이 들지 않아서인지, 혹은 그저 한 끼 식사 그 이상의 의미가 없어서인지 그 이유는 몰랐다. 그저 막연하게 생각해 본다면 얼큰한 건 좋아하셔도 매콤한 건 그만큼 좋아하시지 않아서일까 싶었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 육개장은 어떤 가치를 둘만한 음식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랬다.


24년 3월 25일 오후 5시 반경에 아버지는 사망선고를 받으셨다. 선고를 받기 열흘 전 몸이 불편해 가게도 나오시지 않던 아버지는 그날 오후 병원에 가자고 전화하셨다. 전과 다르게 호흡이 고르지 않았다. 응급실에서 폐에 물이 찼다는 진단을 받고 바로 중환자실로 옮겼다. 나이가 있으시므로 시간이 좀 걸리더라고 호전될 거라 여겼다.


그동안 봄 장사 준비로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사이 병원에서 아버지의 호전된 모습도 보았다. 다행이다 싶었지만 의사 소견은 그렇지 않았다. 물이 빠진 폐에는 이미 폐렴이 심하게 왔고 산소 포화도도 낮다고 했다. 기계를 이용해 산소를 억지로 정상 수치까지 끌어올리고 있지만 그마저도 잘 안되고 있다고 했다.


“노인들의 경우 사망원인의 대부분이 폐렴입니다. 냉정한 얘기지만 오늘 폐렴 진단을 받고 내일 사망하셔도 이상할 게 전혀 없습니다.”


아직 중환자실에 계신 아버지를 두고 의사가 전해 준 소견이었다. 봄 장사 준비를 다 마치고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 아닌 유언을 끝으로 며칠 후에 의사의 소견대로 됐다. 극심한 고통 뒤에 숨을 거두시진 않으셨다. 수면 중에 돌아가셨으므로 그나마 호상이라면 호상일 수 있어 그것만 위안 삼았다.


남은 절차는 장례였다.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많은 문상객들에게 위로를 받았고, 다른 장례식장처럼 육개장을 식사로 대접했다. 시간대별로 나누어 문상객이 오는 것도 아니어서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다. 상주들에게 식사시간이 따로 마련된 것이 아니었다. 허기지고 졸음이 오면 그저 달달한 캔커피 하나로 식사를 대신했다. 고인을 보내는 일과 문상객을 맞는 일이 교차하면서 밥 생각도 거의 나지 않았다. 정신없다는 말이 전부였다.

그랬던 삼 일째가 되는 날, 정확히 마지막 발인 전 모든 문상객이 떠나고 나서 빈소를 정리했다. 아침 발인이 끝나면 대기 중인 다른 유가족에게 빈소를 내어 주어야 했기 때문에 늦은 시간까지 정리했다. 그때가 돼서야 식사를 했다. 남은 육개장으로 식사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먹은 그 육개장이 지난날 수도 없이 먹었던 육개장보다 맛있었다. 삼일 내내 제대로 된 식사도 못하고 그저 달달한 커피만 마셨으니 단맛과 반대되는 얼큰하고 매콤한 맛에 맛에 더 끌렸을지 모르겠다. 얼큰한 그 국물이 왜 그렇게나 개운하고 시원한 맛도 나며 입에 짝짝 감겼던 것인지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것도 왜 하필 그때였는지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고 왠지 모를 짜증도 났다. 왜 지금 같은 때에 이 육개장이 그렇게 맛있을 수 있을까? 순간적으로 고인은 잊은 채 그 육개장 맛을 즐기고 있었다. 내가 싫어졌다는 표현 외에 할 말이 없었다. ‘하다 하다 이제는 데리고 갈 맛집이 장례식장 밖에 없나?’하는 원망도 들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십 년, 아버지와 살면서 웬만한 맛집은 같이 다녔는데 더 이상 그렇게 하지 못하니 여길 마지막 맛집으로 데리고 오셨나 싶었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참 짓궂었다.


염(殮)을 마친 아버지의 모습은 생전에 어디 놀러 가시기 전날 꼭 목욕탕을 다녀오시고 이발까지 하시던 그 모습 그대로 깔끔하고 단정해 보였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까지는 아니어도, 어디로 간다는 느낌보다 좋은데 놀러 가시는 것 같아 살짝 웃음이 나려 했다.

“나는 놀러 갈 테니, 너 혼자 밥 잘 챙겨 먹어라.”


집을 나서면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들렸다는 말이 더 맞겠다.


아버지는 다시 찾아갈 수 없는 육개장 맛집 하나 알려주고 어디로 놀러 가셨다. 가게에서 점심에 간혹 육개장을 시켜 먹는다. 그 맛은 그 맛집만 못한 것 같다. 아버지가 놀러 나가신 지 일 년이 넘었지만, 그 맛집을 잊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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