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by 차효권

그해 4월의 봄은 봄이라 부를 수 있는 날씨가 아니었다. 가벼운 외투로 아침 날씨를 견디기는 힘들었다. 어쩌면 기분 탓일 수 있었다. 동기 중에 L이 첫 타자로 입대하는 날이었다. 그냥 혼자 보낼 수 없었다. 이래저래 갈등도 있었고 티격태격한 일도 있었지만 그렇게 쌓인 정이 더 무섭다고 끈끈한 관계가 됐기 때문이었다. 동기 남자들은 덤덤했고 동기 여자들은 신기해했다. 남자는 앞으로 다가올 자기 순번의 예행이었고 여자는 떠나보내는 경험의 체험이었다.


1호선 석계역 플랫폼에는 의정부 방향으로 앞쪽에 낡은 벤치가 하나 있었다. 약속 시간이 다 되어가도 나타나지 않는 L을 기다리는 일이 조금씩 지루해졌다. 플랫폼은 지상이었다. 지금처럼 플랫폼 전체에 지붕이 설치된 것도 아니었다. 하늘 위로 훤하게 트인 플랫폼이었다. 당시 지상 플랫폼에서 흡연은 관대한 편이었다. 지하가 아닌 이상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다. 어느 역이든 개방된 지상 플랫폼은 그래도 상관없다는 인식이 많았다.


서 있자니 다리도 피곤하고 마냥 기다리는 것도 지루했다. 벤치에 앉아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동기 여자애가 같이 앉았다.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가벼운 대화를 같이 나누었다. 대화가 길어지지 못했다. 조용한 인기척에 대화가 끊어졌다. 인기척이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할머니 한 분이 뭔가 부탁하고 싶은 눈치셨다.


두툼한 몸빼바지에 낡은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우리보다 따뜻해 보였지만 봄에 어울리는 복장은 아니었다. 초겨울 복장에 가까웠다. 부탁은 그녀보다 나에게 하고 싶은 눈치였다. 옆에 있던 그녀는 놀라 자리를 피했다. 그것이 할머니에게 실례가 되는 행동은 맞지만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에 뭐라 할 수도 없었다.


할머니 얼굴엔 화상자국이 있었다. 언제 겪으신 일인지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이는 나이만큼 시간이 꽤 지난 화상자국이었다. 수평으로 있어야 할 할머니 눈은 그 위치가 달랐다. 화상으로 한쪽 눈이 아래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녹아내렸다고 표현할 수도 있었다. 놀라기는 그녀만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똑같이 행동할 수 없었다. 아무 일 없듯 그냥 사소한 부탁을 받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겉으로 그런 척 그랬다.


할머니는 담배 하나를 부탁했다. 말도 아니하고 담배 하나를 꺼내 건네드렸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서 할머니는 껌 한 통을 건넸다. 담배값으로 건네신 듯했다. 그 껌은 할머니가 전동차에서 한 통에 사백 원씩 파는 껌이었다. 모습이 그러하니 어디 변변한 곳에 들어갈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구걸로 연명할 처지도 아니었을 것이다. 할 수 있는 벌이가 그것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할머니도 그것으로 생계를 꾸리고 계셨다. 담배 한 개비가 그 껌값에 비길 수 없었다. 할머니는 그저 성의 표시라도 하고 싶으셨던 것 같았다. 그러나 건네주신 껌을 받지 않았다. 껌이 기호식품도 아니었고 담배 한 개비가 뭐 대수일까 싶었다. 요즘 말로 할머니의 마음만 받으면 될 일이었다.


아무도 없는 플랫폼 끝자락 한적한 곳에서 할머니는 한 모금 깊게 빨고 나서 한숨 쉬듯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표정 없이 먼 곳을 응시하고 계셨다. 지나온 세월만큼 지치고 깊은 응시 같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그 껌을 받는 게 예의가 아니었을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뒤이어 L이 왔다. 분위기는 다시 할머니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갔다.


L은 의정부 306 보충대로 들어갔다. 자신이 썼던 모자를 벗어 다음 순번이 될 동기에게 주라고 했다. 연병장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고 강당으로 들어가는 L을 보았다. 우리도 다시 돌아왔다. 할머니는 그렇게 잊혔다. L을 보냈던 일만 한동안 생각났다.


일 년이 지나 이번엔 Y가 다음 순번으로 입대했다. 그것도 4월에 똑같이 의정부 306 보충대로 들어갔다. 이번에도 석계역에서 만났다. L은 의정부에서 머리를 깎았고 Y는 미리 머리를 깎고 왔다. Y는 L이 그때 건네준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Y를 보내던 날 모였던 동기들의 수는 L을 보냈을 때와 같았다. 한 명이 비어야 하지만 L이 그때 상병 첫 휴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답례하듯 온 것 같았다.


L은 평상복 대신 군복을 입고 나타났다. 입대 뒤에 수방사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고 했다. 얼룩무늬 군복이 아니었다. 민무늬의 짙은 녹색 군복이었다. 부대가 좀 특별해서 휴가 시 복장이 다른 부대와 달랐다. 일반 군복보다 화려했다. 처음 입대할 때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웃음기 없던 그 얼굴에 여유가 생겼다. 자대 근무복을 입고 나온 것으로 보아 입대하는 동기에게 자랑 좀 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군대도 지낼만하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했던 것 같았다. 동기들은 이제 L을 보낼 때만큼 서운해하지 않았다. 영영 떠나는 것도 아니었고 제대 전까지 두어 번은 휴가나 외박으로 만날 수 있었으므로 그저 사고 없이 잘 다녀오기를 바랐다.


Y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교통편으로 지하철을 이용했다. 휴가차 나온 L과 시내에서 밥 한 끼 하기로 했다. 전동차 안은 출근 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이라 한적했다.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어도 서서 가기에 넉넉한 공간이었다. L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한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누군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할머니였다. 그때 그 복장과 같았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껌을 팔고 있었다. L과 얘기를 나누면서도 할머니를 계속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묘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L은 상병이 됐다. L은 일 년이 지나 처음과 다른 모습이 됐고 할머니는 그대로였다. 누구의 시간은 흘러가고 누구의 시간은 정지된 것처럼 보였다.


이십 년도 더 지나 삼십 년 가까지 지난 일이다. 지금은 전동차 안에서 그런 행상하는 노인을 만나지 못한다. 자차를 이용해 출근하기도 하지만 지하철 역사에도 전동차 안에서도 그런 행상이 흔한 모습은 아니다. 이제 껌은 편의점에서 구입한다.


플랫폼에서, 1호선 지상층 플랫폼에서 할머니 모습이 간혹 생각난다. 그때 그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다. 나도 그렇고 L도 그렇고 그때 그 동기들도 모두 중년이 됐다. 할머니도 많이 변하셨을 것이다. 아직 살아 계실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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