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할매집’은 이전 동네에서 자주 갔던 밥집이었다. 살았던 기간만큼 오랫동안 갔던 밥집은 아니었다. 한 곳에서 십 년을 살았어도 동네에 어떤 식당이 있는지 관심도 아니 가졌던 기간이 길었기 때문이다. 부자(父子)의 생활패턴은 서로 맞지 않았다. 아버지는 남들 일할 때 같이 일하고 남들 잘 때 같이 자는 정상인의 삶을 살았고 아들은 남들이 쉬는 저녁에 일하고 남들이 일하는 시간에 잠자는 비정상인의 삶을 살았다. 엄마가 살아계셨을 때 부러 외식할 일이 없었던 것도 이유일 수 있었다. 세끼 식사는 여느 가정처럼 집에서 해결하면 그만이었다. 특별한 날 외식은 아예 동네 밖으로 나섰다. 집밥 차리기가 귀찮을 땐 중국집 배달이 그 자리를 대신했고, 치킨집도 그 일을 거들었다. 그러니 동네 식당을 갈 일이 거의 없었다. 어쩌다, 정말 어쩌다 간 적도 있지만 일 년에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내 일도 전과 다르게 줄어들면서 아버지와 마주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됐다. 차려 먹는 경우보다 엄마가 차려 놓은 것을 얻어먹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인생에서 두 남자의 상차림은 은근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외식은 그때부터 시작됐고 그때부터 동네 식당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찾아낸 밥집이 충청할매집이었다.
이 층은 가정집이고 일 층이 상가로 된 단독 주택이 줄지어 있는 곳에 충청할매집이 있었다. 충청할매집은 집에서 차려 먹을 수 있는 메뉴는 다 있었다. 된장찌개도 있었고 순두부찌개, 김치찌개도 있었다. 생선구이나 제육볶음 같이 차리기에 손이 더 필요한 음식도 팔았다. 내어놓은 음식이 집밥 같아서 자주 갔다. 숨은 맛집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밖에서 대기해야 하는 그런 맛집은 아니었다. 그냥 꾸준한 밥집이었다. 손님 하나가 식사를 끝내고 나가면 다른 손님이 그 자리를 다시 메꿔주는 집이었다. 충청할매집에는 오다가다 들르는 손님보다 때가 되면 들르는 익숙한 사람이 더 많았다. 아버지와 나도 그중 하나였다.
주인집 사장님은 특별히 돈을 벌려고 하는 욕심도 없어 보였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장사했다. 충청할매집에 들르는 사람들은 그런 사장에게 불만이 없었다. 그날 먹고 싶은 메뉴의 재료가 떨어지면 다른 메뉴로 주문했다. 엄마가 ‘오늘은 이거밖에 없으니 이걸로 먹어라’하면 이거 먹는 거고 ‘저거밖에 없으니 저걸로 먹어라’하면 저거 먹는 식이었다. 이것이든 저것이든 큰 의미가 없었다. 어느 것을 먹어도 집에서 먹는 음식과 같았으므로 불편함이 없었다. 간혹 주인집 할머니가 식당 홀을 둘러본다고 나오면 인사 한번 건네는 게 전부였다. ‘밥이 맛있다’라는 말에도 큰 자랑은 없었다. 그냥 고맙다는 말만 했다.
충청할매집의 길 건너편에는 사람 키보다 높은 어두운 담장이 있었다. 담장 안에는 언제 지어졌는지 모르는 5층 높이로 보이는 아파트가 있었다. 지은 지 오래돼 보이는 그 아파트는 아파트라기보다 공장 기숙사같이 보였고 밤이 되면 불빛도 보이지 않는 음산한 곳이었다. 우연히 길을 돌아 집으로 가면서 아파트 출입구를 보았다. 인기척도 없었고 사람도 아니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분명 누군가 그곳에 거처를 마련했을 수도 있겠지만 내 돈 주고 들어가라면 과연 들어갈까 싶은 곳이었다. 아파트 전체를 둘러싼 그 담장은 아파트를 더 음산한 곳으로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담장 밖 인도로 지나가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충청할매집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만 담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아파트가 조금씩 시끌시끌했다. 사람 소음이 아니라 트럭 소음이었다. 아파트 재건축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간 음산했던 이유는 마지막 입주자의 퇴거까지 기다리고 있던 시기라 아파트는 거의 사람이 살지 아니했던 것이었다.
공사가 시작되면서 담장도 허물어지고 소음도 많아졌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제법 아기자기한 아파트가 여러 채 올라갔다. 지난 그 아파트보다 층수도 높아졌고 담장도 없앴다. 규모가 큰 단지형 아파트는 아니어도 몇 개 동이 새로 올라선 아파트로 어두웠던 동네가 한층 밝아졌다. 동네 분위기가 밝아지면서 이러저러한 음식점도 들어섰고 커피집도 들어섰다. 충청할매집과 같이 자리를 지키던 국숫집이 꼭 터주대감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때부터 충청할매집은 빛이 새어 나오지 않았다.
평상시처럼 밥 한 끼 하려고 들렀으나 문은 닫혀 있고 불도 꺼져 있었다. 일찍 문을 닫았겠거니 싶었다. 며칠이 지나 다시 가봐도 똑같았다. 그러다 다시 며칠이 지나자 식당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살짝 들여다보니 주방에 있어야 할 집기들이 홀에 내어져 있었다. 장사를 접은 것으로 보였다. 이유를 알 길이 없었다. 수지가 맞지 않아서 닫을 수도 있고, 힘에 부쳐서 그랬을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충청할매집 간판이 내려갔고 그 자리에 깔끔한 간판 하나가 올라갔다. 부동산 중개 사무소 간판이었다. 내부도 식당 분위기를 찾을 수 없게 여러 사무 집기들이 늘어서 있었다. 또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새로 들어선 아파트로 입주가 시작되면서 중개 사무소에 정장 차림의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앞치마를 두른 충청할매집 아줌마들의 빈자리를 정장 자림의 사내들이 메꾸고 있었다. 충청할매집이 문을 닫은 이유가 이거였나 싶었다.
‘길바닥 밥장사’는 요리 잘하는 배우와 몇몇 연예인들이 스페인 카다스 지역에서 푸드 바이크를 타고 한적한 곳에서 밥장사하는 프로그램이다. 말 그대로 길바닥에서 밥장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한식을 알리는 것이 주목적이라고 했다. 리얼리티 예능이 더해진 프로그램에서 출연진들은 이러저러 실수도 저지르고 그러면서 하나씩 하나씩 뭔가를 익혀갔다. 나중엔 밥 먹으러 온 현지인들 앞에서 흥을 돋우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끝까지 시청하진 않았다. 생계가 달려있는 밥집들은 과연 그런 호사를 누릴까 싶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 돈 내고 남의 경험을, 남의 흥을 사 먹는 사람은 없다.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맛없다고 말하는 것이 밥장사다. 내 입맛에 맞아도 언제 어떻게 이유도 모르는 채 사라지는 것이 밥장사다. 충청할매집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