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대첩

by 차효권

늦은 저녁이었다. 일이 밀려 마무리가 늦어졌기 때문이었다.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는 기왕 늦은 거 저녁은 밖에서 해결하고 들어가자 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부자(父子)의 생각은 일치했으나 밥집은 그렇지 않았다. 당일 장사 시간이 지났으므로 우리를 기다려야 할 이유는 없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예전에 자주 갔던 고깃집이 생각났다. 24시간 영업했던 삼겹살집이었다. 대로변에 있고 규모도 주변 식당에 비해 컸다. 주차장까지 따로 있어 차 몰고 오는 사람이 편하게 먹고 갈 수 있는 식당이었다.


날이 꽤 쌀쌀했고 시간도 얼추 저녁 8시가 다 되었다. 그래도 24시간이니 느긋하게 몸도 녹이면서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오래전 그 가게를 자주 다녔던 그때의 기억에 의존한 생각일 뿐이었다. 가게도 달라졌고 메뉴도 달라졌다. 삼겹살은 팔지도 않았다. 출퇴근 길이 바뀌면서 근처를 지나갈 일이 줄었고 시간도 많이 지났다. 간판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밤새 먹을 것도 아니었고 몸만 좀 녹이고 간단하게 식사만 하면 그만이었다.


입구에 있던 직원이 9시까지만 영업한다고 괜찮겠냐고 했다. 식사만 할 것이라 괜찮다고 했다. 자리를 잡고 돼지갈비를 주문했다. 처음엔 서빙을 담당하는 아줌마가 공깃밥을 내어 놓으면서 밥은 더 드실 거냐고 물어왔다. 간단하게 먹고 가는 거라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아줌마는 주방을 향해 “공깃밥 마무리요”라고 외쳤다. 기분이 이상했다. 아직 숯불도 들어오지 않았고, 수저도 뜨기 전인데 벌써 밥 더 먹겠냐고 물어보는 것이 순서에 맞는 것인가 싶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이어 숯불이 들어오고 불판이 올려졌다. 고기를 올리고 굽기 시작할 즈음 아줌마가 다시 와서 물었다. 이번에는 술은 하실 거냐고 물어왔다. 이번에도 아니라고 대답하자 다시 주방을 향해 “술 마감이요”라고 외쳤다. 가만 주방 쪽을 살펴보니 마무리 정리가 한창이었다.


고기가 어느 정도 익어갔고 이제 식사를 시작하려 했다. 이번엔 숯불을 내어왔던 직원이 다가와 불 빼도 되겠냐고 물어왔다. 아직 열기가 필요했으므로 나중에 빼달라고 했다. 아버지와 나는 계속 식사를 이어갔다. 그러고서 한 십 여분 정도 지났을까 직원이 다시 와서 불 빼도 되겠냐고 물어왔다. 내 돈 내고 내가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자꾸 빨리 먹고 나가라는 것처럼 느껴져 불쾌했다. 그렇다고 언성을 높이는 것도 갑질하는 기분이 들어 그냥 빼가라고 했다. 가게를 둘러보니 손님은 우리가 전부였다. 날도 추워지고 하루 종일 손님 응대에 피곤할 법도 하겠지만 우리도 장사하는 사람이라 손님 불편하게 만드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들에게 우리는 손님이 아니라 마지막 일을 마무리해야 하는 절차에 지나지 않았다. 그날 우리가 마지막 짐을 정리했을 때처럼 우리도 손님이 아니라 짐짝 취급당하고 있었다.


먹는 둥 마는 둔하고 일어섰다. 내 돈 내고 먹으면서도 눈치까지 봐야 했던 상황에 무슨 맛을 느낄 수 있었겠나 모르겠다. 계산을 마치고 카운터에 있던 직원에게 사장은 지금 자리에 없냐고 물었다. 직원은 무슨 일이냐 물었지만 사장도 없는 자리에서 카운터 직원이 무슨 죄겠나 싶었다. 그래도 할 말은 하고 싶었다. 잠깐 숨을 고르고 한마디만 했다. 마감이 바쁘면 손님을 받지 말아야지, 손님 앉혀놓고 그런 식으로 장사해도 되느냐고 했다. 아버지는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열심히 하겠냐며 그냥 가자고 했다.

가게를 나오다 옆 시선으로 익숙한 얼굴의 사진이 붙은 것을 알았다. ‘한식대첩’이라는 요리경연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요리사였다. 소위 셰프였다. 잘 생겼고 사진도 잘 나왔다. 간판이 바뀌면서 그 집은 소위 요리경연프로그램 우승자라는 타이틀을 지닌 그 셰프의 얼굴과 이름으로 간판을 다시 걸었던 식당이 되어 있었다. 돈만 받고 얼굴만 빌려주면 그걸로 제 할 일은 다 끝난 것인가 생각했다.

‘한식대첩’에서 그는 최선을 다했다. 자신의 얼굴에 아니 자신의 이름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른바 고군분투(孤軍奮鬪)했다. 꼭 그것이 프로그램은 아니었어도 자기 식당에서는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이름만 빌려준 곳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그 뒤로 간혹 그가 출현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다른 채널로 돌려버렸다. 홈쇼핑에서도 그의 이름을 내건 식품이 나오고 카메라 앞에서 열렬히 홍보하고 있는 모습을 봤다. 팔리기는 잘 팔리는 것 같지만 주문은 하지 아니했다. 요리사의 음식에 입을 댈 수 있어도 장사꾼의 음식에 입을 대기 싫었다. 그 상품엔 얼마나 받고 이름을 빌려줬을까 싶은 생각만 들었다.

한동안 유명인의 이름을 빌린 프랜차이즈 식당이 많았다. 요리와는 거리가 먼 유명인도 프랜차이즈 간판에 올려졌다. 그렇지만 그들의 명성만큼 그 식당이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그 셰프의 프랜차이즈도 예외는 아니었다. 늘어나는 것은 그들에게 한가닥 희망을 걸었던 점주들의 한숨뿐이었다.


최근엔 소위 셀럽이라는 유명인의 이름과 얼굴이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홈쇼핑으로 옮겨지고 있다. 먹는 것에서 입는 것까지 종류도 다양해졌다. 뜨고 나면 이름 하나만 갖고도 제 주머니를 채울 수 있게 됐다. 손 안 대고 코푸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개그맨 박준영이 오래전 예능프로그램에서 “난 돈은 노동으로 벌어야 한다는 주의(主義)야.”라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아버지와 나는 마무리 일을 끝내고 나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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