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빙수

by 차효권

가수 윤종신이 2001년에 발표한 ‘팥빙수’는 여름 한 철을 겨냥한 노래다. 곡도 곡이지만 그런 가사가 붙으리라 상상도 못 했다. 여름에 듣는 노래라 하면 해변을 소재로 한 노래가 많지만 먹는 음식으로 여름을 떠 올릴 수 있는 노래는 이것이 처음이지 아닐까 싶다. 처음엔 이 노래에 대해 나는 부정적이었다. 윤종신이라는 가수가 불렀다기엔 왠지 경박하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부를 노래가 없어 저런 노래까지 불렀나 싶었다. 그것도 가수가 직접 그런 가사를 쓰다니 그도 별 수 없는 딴따라였나 싶었다. 왜 그는 그런 가사를 썼을까? 늘 의식되는 의문점은 아니었어도 여름이면 그 의문점이 다시 살아나곤 했다.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같은 학원에서 근무하셨던 국어 선생님과 팥빙수를 먹다 우연히 그 노래에 관한 얘기를 나누게 됐다. 그도 처음엔 나와 같은 생각이었지만 더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가수에게 직접 들은 ‘팥빙수’ 그 노래의 비하인드 스토리로 더 이상 그 노래를 유쾌하게 듣지 않는다고 했다. 선생님은 윤종신과 같은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했다. 그리고 같은 대학 같은 과에 같은 학번으로 함께 입학한 동기라고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친구가 한 명 더 있었다고 했다. 친구 이름은 박민수라고 했다.


민수네 집은 ‘민수네’라는 간판으로 튀김집을 했다. 크지 않은 가게에서 민수네 튀김집은 여름 특수로 팥빙수를 팔았다. 옛날식 팥빙수였다. 프랜차이즈에서 제공되는 재료로 만든 빙수가 아니었다. ‘팥빙수’라는 노래 가사처럼 직접 하나부터 열까지 손수 준비해서 내어놓은 팥빙수였다. 빙수의 종류가 다양해지던 그 시절에 민수네 튀김집은 오로지 팥빙수만 팔았다. 선생님과 윤종신도 그 팥빙수를 좋아했지만 민수는 엄마가 해주는 그 팥빙수를 특히 더 좋아했다. 다른 곳에서 파는 빙수는 달기만 하다며 입에 잘 대지 않았다. 엄마가 내어놓은 빙수만 좋아했다. 먹기도 많이 먹었다. 푸짐한 민수네 팥빙수를 자기들은 한 그릇도 겨우 비울 수 있을 때 민수는 두 그릇씩이나 먹어야 직성이 풀렸다. 손쉽게 먹기는 해도 준비가 쉽지 않은 것이 팥빙수였다. 민수네 엄마는 힘에 부쳐 그만둘까도 했지만 민수가 여름이면 노래를 부르다시피 해서 어쩔 수 없이 팔았다. 민수가 왜 그렇게 팥빙수를 좋아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민수 엄마는 간혹 저놈의 이름 때문에 그리됐다고 싱거운 소리를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박민수’와 ‘팥빙수’는 같은 ‘수’ 자 돌림이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같은 라임(rhyme)이라 어감이 비슷하게 연결됐다. 그래서인지 선생님과 윤종신은 ‘박민수’하면 ‘팥빙수’를 ‘팥빙수’하면 ‘박민수’가 자동으로 떠 올랐다.


셋은 학교에서도 늘 붙어 다녔다. 타지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던 그 시절에 셋은 친구이자 의지 대상이었다. 셋 중에 민수가 가장 ‘엄친아’였다. 키도 크고 잘생겼고 항상 과 수석(首席)이라 여자 동기들에게 인기가 제일 많았다. 그러다 보니 셋이던 멤버가 하나 더 늘어 넷이 되었다. 민수에게 여자친구가 생긴 것이다. 민수의 여자친구도 같은 과 동기였다. 민수가 과 수석이었고 그녀는 차석(次席)이었다. 처음엔 민수가 경쟁 대상이었지만 그것이 인연이 되어 연인으로 발전했다. 잘 생겼고 거기에 매너까지 좋았으니 아니 넘어올 여자가 없었다. 그런 민수가 그녀에게 유독 친절했다. 자신을 경쟁상대로 여긴 그녀에 더 그랬다. 어쩌면 둘이 연인이 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둘의 인연은 연인에서 그리고 민수가 제대하고 취직하면서 결혼으로 이어지는 수순을 밟고 있었다. 다들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 둘의 수순이었고 그렇게 될 예정이었지만 신의 수순과 예정은 달랐다.


선생님은 졸업 후 학원으로 윤종신은 가수로 민수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민수의 여자친구는 민수보다 두 해 먼저 졸업해 예전 서울 예술대학이 있던 충무로 근처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근무하고 있었다. 봄이었다. 학교 축제가 한창이던 그날에 아직 신입이던 민수에게 야근은 허다했지만 그날은 운 좋게 정시에 퇴근했고 민수의 여자친구는 반대로 야근이었다. 민수의 귀가는 집이 아니라 여자친구의 회사였다. 간만의 정시 퇴근이고 그동안 야근으로 본의 아니게 서운케 했을 여자친구를 달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민수는 이제 여자친구가 일하는 회사가 눈앞에 보이고 앞에 놓인 짧은 건널목만 건너면 됐다. 건널목이 짧아도 충무로라는 곳은 항상 혼잡한 곳이므로 늘 주의해야 했다.


신호등이 녹색으로 전환되고 민수는 건널목을 건너고 있었다. 그때 어디서 인지 빠르게 달려오는 오토바이가 민수 앞을 지나갈 순간이었다. 잠깐 여자친구가 일하는 회사를 올려다본 민수는 다가오는 오토바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신호를 무시한 채 급하게 통과하려는 오토바이 운전자도 민수를 피할 수 없었다. 둘은 그렇게 부딪혔다. 부딪히는 그 순간에 민수가 튕겨 나갔다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것이다. 평소에 어깨 위로 걸치던 숄더백을 민수는 왜 그날따라 가슴팍에 가로질러 걸쳤는지 모르겠다. 가슴팍에 가로질러 있던 숄더백 끈이 오토바이와 충돌하면서 바퀴에 꼬였고 민수는 넘어진 오토바이와 함께 백여 미터를 끌려갔다. 아스팔트에 머리가 심하게 끌리면서 두개골이 파열됐고 이미 과다출혈 상태였다. 응급실로 급하게 이송됐지만 민수는 골든타임이라는 시간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민수의 엄마는 거의 실신하다시피 했지만 여자친구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았다. 뭐라 중얼대기만 했다. ‘응급실’ 그 커다란 붉은 글씨에만 바라본 채 뭐라 중얼댔다.


“맨날 수석만 하더니 가는 것도 왜 일등으로 가니....”


민수를 화장(火葬)하던 날 화로 속으로 들어가는 민수의 관을 바라보던 그녀는 그때가 돼서야 터지고 말았다. 그리고 계속 소리쳤다.


“죽지 마, 죽지 마....”


충격에 억눌려 터져 나오지 못한 그때 나올법한 그 말이 뒤늦게야 터지고 말았다.


선생님은 이후로 윤종신을 만나지 않았다고 했다. 자꾸 민수가 생각나서 그랬다고 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간 얘기라고 했다. 민수에 대한 기억도 많이 무뎌지던 때에 윤종신이 뚱딴지같은 노래를 발표했다고 했다. 자신도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이제 많이 무뎌졌으므로 윤종신을 만나도 견딜만하겠다 생각 들어 그와 저녁을 함께 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고 했다. 자기는 민수 얘기는 부러 꺼내지 않았다고 했다. 민수 얘기를 꺼낸 것은 윤종신 쪽이었다고 했다. 그는 ‘팥빙수’라는 노래 때문에 자기를 찾아왔을 거라는 걸 이미 예상했다고 했다.


아는 작곡가로부터 작사가 소개를 부탁받았지만 이상하게 그 곡에 가사를 써 줄 만한 작사가가 없었고 있다고 해도 곡에 맞는 가사를 쓰기가 어렵다는 말만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직접 가사를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처음엔 그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답답하고 날도 더웠다고 했다. 민수가 죽고 난 이후로 팥빙수는 입에도 대지 않았지만 그날따라 팥빙수가 계속 생각났다고 했다. ‘그래, 이제는 먹어도 되겠지....’ 싶은 생각에 한 수저 뜨다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고 했다. 기억에 좋은 게 더 많았으면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민수였다면 좋아할 노래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친구에 대한 마지막 이별과 민수의 여자친구가 오열했던, 민수를 화장했던 날 민수에게 했던 마지막 말은 민수에게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민수야, 박민수야

죽지 마, 죽지 마

민수야, 박민수야

사랑해, 사랑해


이렇게 전달했다고 했다.


빙수야, 팥빙수야

녹지 마, 녹지 마

빙수야, 팥빙수야

사랑해, 사랑해


윤종신은 음반 발매 후 그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오랜 기억에 미소가 더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됐다는 그 말이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다고 했다.


나는 침묵했다. ‘팥빙수’는 이제 내가 불편하게 들을 ‘팥빙수’가 아닌 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일어난 것 같은 이 비하인드 스토리는 전부 거짓말이다. 다시 반복하지만 전부 거짓말이다. 들은 적도 없거니와 내가 아는 인맥 중에 가수 윤종신과 연관된 인물은 하나도 없다. ‘팥빙수’라는 노래는 원래 이규호가 썼던 모던 록 장르의 곡이었다. 윤종신은 단지 여름 노래가 필요했고 가사를 썼으며 박용준에게 편곡을 부탁한 것이 전부다. 이것이 요즘 말로 이것이 팩트다.


조선일보 여행전문기자 박종인의 ‘기자의 글쓰기’라는 책에는 ‘악마의 디테일’에 관한 얘기가 있다. 오래전에 읽어 기억에 의존해 서술하자면 글이 정교하면 정교할수록 그것을 믿기는 더 쉬워진다. 반은 시험 삼아 반은 장난 삼아 써 봤다.


확증편향이 더해지는 요즘에 거짓은 더 정교해지고 있다. 글 외의 매체도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 아니라고 주장해도 보이는 디테일이 흐릿한 기억을 넘어서는 시대가 되었다. 사용자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는 것을 느끼는 시대가 됐다. 사고(思考)와 사색(思索)이 사족(蛇足)이 아니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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