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언니가 카타르에 갇혀있다. 공항은 폐쇄됐고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하고 있다. 언니 말에 따르면 자기 전에도, 아침을 깨우는 것도 폭격 소리라고 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폭격 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린다고 한다. 평소에는 사이가 그리 살갑지 않은 언닌데, 폭격이 떨어지는 곳에 있는 언니가 걱정돼 꿈에서까지 언니가 나왔다.
폭격의 파편으로도 몇몇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가족들은 모두 언니를 걱정하고 있지만, 집에만 있겠다면서 너무 걱정 말라는 말을 전했다. 언니는 해외 항공사 승무원 일을 하고 있다. 다행히 언니는 숙소가 있는 상태지만, 여러 중동 국가에 발이 묶인 교민들의 안전 걱정도 크다. 승무원이라는 직업 특성상 누구보다 자유롭게 세계를 누비던 언니가, 지금은 단 몇 평의 방 안에 갇혀 폭격의 공포에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이 현실 같지 않다.
비단 우리 언니뿐이겠는가. 생계를 위해, 혹은 삶의 터전을 일구기 위해 그곳에 머물던 수많은 교민과 무고한 시민들은 ‘생존’이라는 가장 원초적이고도 처절한 과제 앞에 놓여 있다. 파편 하나에도 스러져가는 생명들 앞에서 국가 간의 전략적 이해관계나 정치적 수사는 얼마나 무력하고 잔인한가.
인명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이란 내 사망자는 555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란 남부의 한 여자초등학교에서는 최소 165명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어떠한 변명으로도 학교를 대상으로 한 폭격은 정당화할 수 없다. 주거지역과 교육시설까지 피해가 확산되면서 인명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민간인을 합쳐 사망자가 1천500명을 넘었다는 민간단체 추정치도 나왔다.
미국이 명명한 ‘장대한 분노 작전’(Operation Epic Fury)의 실상은 이란에 더 깊은 증오의 불씨를 지피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미국조차 이 작전의 목적이 무엇인지, 계속 말이 바뀐다. 앞에서는 정의의 집행인 양 포장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무조건적인 자국 우선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우려해 이란, 이스라엘, 이라크, 사우디, 카타르, UAE, 이집트를 포함한 중동 14개국에 체류 중인 미국인들에게 ”민간 항공편을 이용해 지금 당장 출국하라 “며 최고 수위의 대피령을 내렸다.
미국인의 생명만 존귀한가.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안방이 무너지고 아이들의 배움터가 잿더미가 되는 참혹한 현실은, 그들에게는 단지 전략적 수치에 불과한 것인가. 타국의 하늘을 폐쇄하고 민간인의 발을 묶어두면서까지 관철해야 할 ‘분노’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전쟁은 결코 평화를 가져올 수 없으며, 이는 명백히 인류 보편의 가치를 짓밟는 폭력일 뿐이다.
트럼프는 전쟁의 지속 기간에 대해 4주에서 6주를 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럴 순 없다. 전쟁은 오늘 당장이라도, 한 시라도 빨리 끝나야 한다. 전쟁의 시계가 4주든 6주든, 그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새겨지는 영겁의 시간이다. 미국이 말하는 ‘장대한 분노’가 그들에게 승리의 훈장이 될지 아닐지는 모르겠으나, 그 이면에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가족들의 눈물과 파괴된 일상이 담겨 있다.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낳을 뿐, 결코 진정한 평화의 씨앗이 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낯선 땅에서 폭음 속에 밤을 지새우고있는 언니에게 간절한 마음을 보낸다. 부디 닫힌 문을 열고 나와 다시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카타르를 비롯한 중동 전역에서 발이 묶인 우리 국민 모두가 다친 곳 없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도한다. 증오의 포성이 멈추고 일상의 평온이 찾아오는 그날까지, 우리는 결코 이 희생들을 무던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언니가 다시 유니폼을 입고 비행기에 오르는 날, 그리고 중동의 아이들이 포성 대신 책장 넘기는 소리를 듣는 날, 그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우리에게 돌아올 때까지 나는 매일 밤 기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전쟁의 끝은 승리가 아니라,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