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자다. 나의 선택에 끝없는 지지를 보내주는 동시에, 내가 잘못된 판단을 내릴 때면 그 누구보다 냉철한 비판자가 되어주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 내가 힘들 때 가장 가까이서 나를 위로하고 내가 기쁠 때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는 이들이 주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나의 가장 큰 자랑이자 꺾이지 않는 자부심이다. 그렇다. 나는 동료 부자다.
동료들이 곁에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다. 혼자 감내하기엔 불가능했을 고립의 시간들을 무사히 지나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들 덕분이다. 내가 비난의 화살을 맞으며 잠 못 이루던 밤에 아무 말 없이 곁을 지켜주던 시간들, 지친 기색이 역력할 때 건네주던 사소한 간식 하나와 따뜻한 눈빛. 그 작지만 위대한 순간들이 나를 지탱하는 실질적인 힘이 되었다.
아직도 영문을 모르지만, 내가 살던 집에 당시 당원이자 유튜버였던 한 남성이 어떻게 알고 찾아온 적이 있다. 당시 내 집 주소는 실시간으로 5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공개되었고, 나는 급하게 이사를 알아보았다. 단기간 월세를 알아볼까도 생각했지만, 당장의 안전이 걱정되었다. 그렇게 이사를 가기 전까지 두 달 정도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흔쾌히 자기 집을 내어준 동료 A가 있다. 동료 A는 지금까지도 나를 가장 가까이서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다. 동료 A는 혼자 있는 시간을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두 달 가까이 자신의 곁을 내준다는 건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동료 A에 대한 감사함을 말하라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그가 나에게 해준 말로 그를 조금이나마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A는 내가 가끔 나약해지는 소리를 할 때면 무심한 듯 단단하게 말했다. “스스로를 못 믿겠다면, 너를 믿고 있는 우리를 믿어.”
동료 B는 누구보다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면서도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며 알고보면 누구보다 사실은 사랑이 많은 사람이고, 동료 C는 모든 일이든 거뜬히 해내면서 주위 사람까지 잘 챙기는 일당백의 인물이다. 동료 D는 사람이 어쩜 저렇게 착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자신의 것을 다 내어주면서도 자신이 베푼 것보다 자신이 받은 것을 생각하며 또 베푸는 그런 사람이다. 동료 E는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늘 앞서서 더 넓은 숲을 보고 10년 후, 20년 후의 우리의 미래를 같이 그리는 사람인 동시에, 나와 같이 먹을 것을 좋아해 먹는 것에 특히나 합이 잘 맞는 사람이다. 이들은 제각기 다른 빛깔로 나의 빈틈을 메워주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하나하나 적지 못해도 이미 내 삶에 깊이 연관되어 있는 동료들이 이보다 더 많다. ‘동료’라는 두 글자로 이들을 표현하기엔 그 그릇이 너무 작다는 생각도 든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일컫는 ‘동지’라는 말은 어딘가 거리의 투사 느낌이 들고, 사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단어인 ‘동무’는 우리 사회가 지닌 특수한 이미지 탓에 입 밖으로 내기가 조심스럽다. 나는 그 사이 어디쯤에 있을 가장 따뜻한 의미를 모두 담아 이들을 ‘동료’라고 부르기로 했다.
비대위원장 시절, 내게 동료는 무엇보다 귀중했다. 하지만 그 소중함이 커질수록 나는 스스로를 경계하곤 했다. 정치권 내의 온정주의를 비판하면서 만약에라도 이후에 내 곁의 사람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나 또한 국민의 시선만큼 엄격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묻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끼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약속한다. 누구 하나라도 정치적 초심을 잃고 변절한다면, 그때는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호된 비판자가 되어주자고 말이다.
동시에 미안함은 늘 마음 한구석에 무거운 부채로 남아 있다. 단지 내 옆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겪지 않아도 될 비난을 사고, 신상이 공개되며, 누군가의 카메라 피사체가 되어 고통받아야 했던 동료들. 그 죄스러운 마음을 전할 때마다 그들은 오히려 굳건하게 말했다. “이건 내가 선택한 길이고,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내가 세상의 더 나은 변화를 만드는 일을 쉬이 포기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나를 위해 기꺼이 상처 입기를 자처한 동료들의 희생을 헛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창 ‘깐부’라는 단어가 유행할 때 내게 깐부라고 다가왔던 한 인물이 있었다. 내가 대중의 지지를 받을 땐 세상에 둘도 없는 짝꿍처럼 대하더니, 내가 비바람을 맞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등을 돌려 나를 비난했다. 정치판의 ‘비즈니스 깐부’들을 겪으며 나는 오히려 확신했다. 내 곁의 이 투박하고 진심 어린 사람들이 얼마나 기적 같은 존재인지를.
하지만 진짜 깐부는 화려한 조명 아래서가 아니라, 모두가 떠난 텅 빈 객석에 홀로 남아 내게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며칠 전 한 동료가 보내준 메시지가 마음을 울린다. “네가 걸어온 진정성을 스스로 믿었으면 좋겠어. 네가 어떤 선거에서 졌을 때가 패배한 게 아니라, 네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가 진짜 패배한 거야.”
나는 패배하고 싶지 않다. 나를 믿어주는 동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기에 나는 세상을 바꾸는 일에 더 진심을 다하고 싶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이 험난한 길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걸어갈 것이다. 동료들과 함께라면 가능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훗날 우리가 이 길의 끝에 섰을 때, 서로의 눈을 보며 “우리 참 잘 버텼다, 부끄럽지 않게 정치를 했다”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