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에서 또 한 명의 여성이 스토킹으로 목숨을 잃었다. 가해자는 구속수사 대상에 올랐지만, 경찰이 영장 신청을 미루는 사이 흉기를 들고 나타났다. 피해자가 스마트워치로 간절히 구조를 요청하고 살해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2분. 그 찰나의 순간, 국가는 부재했고 피해자는 고립된 채 죽음을 맞이했다. 이 비극은 내게 단순한 뉴스가 아니다. 여러 차례 스토킹을 겪은 나에게, 그것은 언제든 내 삶을 집어삼킬 수 있는 실재하는 공포다.
나를 지지한다던 한 군인은 어느 순간부터 무리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악수를 넘어 ‘한 번만 안아주면 안 되냐’며 포옹을 요구하고, 내가 없는 사무실에 갑자기 찾아와 음료와 연락처를 두고 가기도 했다. 도가 지나친 행동에 더 이상의 연락과 만남을 정중히 거절했음에도, 그는 제주도까지 따라와 북토크 현장에 나타났고, 선거 캠프 사무실로 택배를 보내기까지 했다. 끈질긴 전화와 메시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경찰에 신고하고 처분을 받은 뒤에야 그의 스토킹은 겨우 ‘멈춰진’ 상태가 되었다.
집 주소가 노출되어 황급히 이사를 해야 했던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1회성’이라는 이유로, 가해자가 집 초인종을 누르지 않았다며 범죄로 인정조차 받지 못했다. 주거침입 시도가 ‘1회성’이라는 이유로, 초인종을 누르지 않았다는 형식적 잣대로 범죄 인정조차 받지 못했던 경험은 우리 법 체계가 피해자의 공포를 얼마나 안일하게 읽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N번방 가해자들이 나를 찾아와 해코지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정계 진출을 결심하며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까지 나를 주저하게 만든 가장 큰 벽이었다.
활동가 시절, 경찰로부터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기기는 일반 손목시계보다 무거웠고 배터리는 금방 닳았다. 어느 날, 집 근처 골목에서부터 지하철역까지 나를 집요하게 뒤쫓던 행인을 발견했을 때, 내 손목에 스마트워치는 이미 방전된 상태였다.
다행히 휴대폰 신고가 접수되어 빠른 시간 안에 경찰이 도착했지만, 뒤쫓기는 내내 나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경찰을 보자마자 길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던 그날, 내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단 하나였다. “이 사람이 당장 나를 해치려 든다면, 이 스마트 워치가 무슨 소용인가?”
우리는 언제까지 피해자가 가해자를 피해 다니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가. 스토킹 가해자의 접근을 실시간으로 차단하기 위해 도입된 ‘위치추적 전자장치‘ 제도가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관련 위험 경보와 경찰의 부착 요청은 1년 사이 165%나 급증했다. 현장에서는 이 제도가 범죄를 막을 최소한의 방어막임을 절감하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법원의 문턱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2025년 기준, 법원이 가해자에게 전자장치 부착을 결정한 비율은 고작 36.9%에 머물러 있다. 열 명 중 일곱 명의 잠재적 살인자가 아무런 장치 없이 피해자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셈이다. 남양주 사건의 가해자처럼 이미 전자발찌를 차고 있어도, 그것이 다른 범죄 재범 방지용이라면 스토킹 피해자에게는 아무런 정보도, 보호도 제공되지 않는다.
10년 전만 해도 스토킹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식의 낭만으로 포장되곤 했다.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고 나서야 겨우 스토킹 방지법이 만들어졌지만, 법은 여전히 현실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가해자에게 위치추적 장치를 부착하는 것은 가해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아니라, 피해자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일이다. 접근금지 명령을 종이 한 장의 선언으로 끝내지 않고, 가해자의 발을 실제로 묶어두는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을 잃었다. 경찰의 제때 이뤄진 조치, 법원의 단호한 격리 결정이 있었다면 피해 여성은 지금도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더 이상 '미루어진 영장'과 '기각된 부착 결정'이 누군가의 마지막 숨통을 끊는 방조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피해자가 숨지 않아도 되는 세상, 가해자의 발을 실질적으로 묶어두는 공권력의 결단이야말로 국가가 이행해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도 시급한 책무다.
스토킹 범죄로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