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신경 쓰는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체하거나 위가 뒤틀리듯 아팠다. 소화불량은 종종 겪던 일이라 무심하게 넘겼던 것도 있다. 증상이 심할 땐 내과를 가보기도 했지만, 약을 먹어도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다. 그러다 나와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는 한 선배로부터 마음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신적인 고통이 육체적인 통증으로 치환되어 나타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참으로 긴 부정과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나는 신경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한 지 어느덧 1년이 넘었다.
정신과 기록이 미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세간의 편견 앞에서 나는 적잖이 주저했다. 하지만 병원 문을 열고 마주한 검사 결과는 그 망설임이 무색할 만큼 명확했다. 내 몸속 자율신경계는 이미 교감과 부교감신경이 상극으로 치닫으며 음식을 도저히 받아낼 수 없는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다. 때때로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가쁘던 감각 또한 기분 탓이 아닌, 몸이 보내는 절박한 신호였음을 알았다. 그렇게 오래 머뭇거렸던 마음을 내려놓고서야 나의 증상들을 솔직히 고백하며 첫 약을 처방받았다.
심리상담을 받은 적은 이전에도 있긴 했다. 2020년 N번방 사건이 알려진 이후, 수개월 간 지속된 잠입취재로 인해 내 정신 건강을 걱정하는 분들이 많았다. 성착취물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가해자들이 하는 여성혐오적인 발언들을 하루에 다섯 시간씩 채증을 했으니 우려할 만했다. 다행히 국민일보의 지원으로 생애 첫 심리 상담을 시작할 수 있었다. 상담과 명상 치료를 병행하며 이어진 열 번의 치료 과정은 내게 무너진 일상을 지탱할 최소한의 근육을 만들어주었다. 그때 배운 명상법은 지금도 활동가로서, 또 정치인으로서 마주하는 숱한 파도 앞에서 마음의 중심을 잡는 소중한 도구가 되어주고 있다.
당시 내가 심리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역설적이게도 N번방 사건이 사회적으로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 모든 비용을 오롯이 사비로 감당해야 했다면, 아마 나는 상담을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마음을 돌보는 일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기 때문이다. 활동가로 지내며 경찰과 기자들을 수없이 만났다. 참혹한 범죄 현장을 목격하고 수사하며, 나와 비슷한 심리적 하중을 견뎌내고 있을 경찰들에게도 분명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해 보였다. 어느 날, 한 경찰관에게 조직 차원에서 지원되는 심리 치료 프로그램이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서글펐다.
“저희야 뭐… 퇴근길에 동료들이랑 소주 한 잔 마시며 털어버리는 거죠.” 그 짧은 대답 속에 얼마나 많은 개인의 인내와 소진이 감추어져 있을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비단 경찰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타인의 고통과 맞닿아 있는 직업군일수록 마음의 병을 얻을 확률은 높을 수밖에 없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의료진, 위험한 현장에 투입되는 소방관, 참혹한 범죄를 추적하는 기자와 활동가, 그리고 늘 대중의 시선 앞에 놓이는 정치인까지. 이들이 겪는 심리적 외상은 결코 개인의 나약함 때문이 아닌 직무 수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정신과 치료를 '의지가 약한 사람들이나 받는 것'으로 치부하는 편견이 존재한다.
이처럼 사명감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의 소진을 당연시하는 문화는 위험하다. 누군가를 구하는 사람은 그에 앞서 스스로가 먼저 안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주 한 잔'으로 가볍게 털어내야 할 것은 삶을 뒤흔드는 트라우마가 아니라, 그저 고단했던 하루의 피로 정도여야 한다. 이제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는 행위는 '나약함'의 고백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제 역할을 지속하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책임감'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개인의 아픔은 사회의 통계와도 닮아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대 우울증 환자는 최근 몇 년 사이 127%나 급증했다고 한다. 취업 스트레스, 자존감 하락,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이 남긴 '고립·은둔 청년 34만 명'이라는 숫자는 우리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심각한 과제다. 그러나 정작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는 청년 비율은 5.6%에 불과하다. 대부분이 적절한 개입 없이 방치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심리적 안전망이 단순히 상담을 넘어 경제적 지원과 사회적 관계망의 회복을 포함한 통합적 접근으로 이어져야만 한다는 분명한 신호다.
내가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하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 망설였다. 사람들 마음속에는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시민을 대변하는 완벽한 버팀목 같은 리더를 기대하는 마음이 깊게 자리하고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혹여 나의 고백이 그 기대를 저버리는 일은 아닐까, 정치인으로서의 신뢰를 잃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감춰둔 약봉지를 꺼내 보인 이유는 단 하나, 우리 사회가 '정신건강'이라는 그늘을 이제는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때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완벽함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사실 완벽한 사람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아픔을 정직하게 마주해 본 사람만이 타인의 고통에 온전히 공명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 일을 더 오래, 더 잘 해내기 위해 오늘도 나를 돌보는 선택을 한다. 아픈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은 나 자신과 이 사회를 향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성실함이다. 그렇게 나는 과거의 상처를 회복하며 비로소 깊고 고요한 잠에 들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며 ‘불안정하다’는 꼬리표를 붙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의 이 작은 고백이 지금 이 순간에도 병원 문턱 앞에서 발을 떼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라는 다정한 말이 되길 바란다. 언젠가 우리가 서로의 상처를 가리지 않고도 환하게 웃으며 만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나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기꺼이 나의 아픔을 기록하고 보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