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작가의 산문집 제목이자, 한 달에 한 번 나를 위해 비워두는 날의 이름. 바로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다. 온전히 나를 위해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단골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산책하는 날. 내가 정한 나를 위한 데이트 날이다.
지난달 나의 그날에는 서울에 살 때 2년 넘게 매주 들렀던 샌드위치 집을 찾았다. 빵보다는 밥을 좋아하는 정통 한식파인 나를 사로잡은 곳이다. 매일 아침 직접 구운 빵과 정성껏 만든 속재료. 숫기 없는 사장님은 늘 키오스크 너머 묵묵히 빵을 만드셨기에 우리가 나눈 대화라곤 거의 없었다.
오랜만에 샌드위치 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사장님이 환하게 웃으며 외치셨다. “어! 정말 오랜만에 오셨네요!” 샌드위치를 먹기도 전인데, 다정한 환대에 이미 마음부터 따뜻하게 불러왔다.
5개월 만에 마주한 메뉴판엔 신메뉴가 추가되어 있었다. 익숙한 맛을 고를까 잠시 고민했지만, 사장님의 자부심이 담긴 신메뉴가 너무 궁금했다. 올리브 치아바타의 고소함 속에 아삭한 당근 라페와 부드러운 독일식 수제햄이 입안 가득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역시 세계 최고 샌드위치 맛집…‘ 감탄사를 속으로 연발했다. 사라지는 한 입 한 입이 아쉬울 만큼 행복한 식사였다.
내가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지 샌드위치가 맛있어서만은 아니다. 자신의 일을 충실히 수행하며 타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노동의 숭고함, 그 진심 어린 에너지가 샌드위치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샌드위치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장님 열정 때문에라도 나는 이 공간을 사랑해마지 않을 수 없다.
“또 올게요!”라는 아쉽지만 기분 좋은 인사를 남기고 단골 카페로 향했다. 이사 전날 작별 인사를 건넸던 곳, 반가운 사장님은 "얼굴이 훨씬 좋아 보인다"며 다정한 덕담을 건네주셨다. 그 온기 어린 공간에 앉아 문형배 판사의 책을 펼쳤다.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세로토닌을 충전하는, 지극히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이어진 영화관에서의 두 시간 반.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외로움과 간절함, 우정과 연결, 그리고 희망이라는 다채로운 감정의 파도로 몰아넣었다. 스크린 속 주인공이 절망적인 고립 속에서도 타자와 연결되며 생의 의지를 다지는 모습은 깊은 여운을 더했다. 결국 나를 돌보고 채우는 행위는, 세상과 더 단단하게 연결되기 위한 준비 과정임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에서 저자는 묻는다. "사람의 인생을 하루로 본다면 우리는 지금 몇 시쯤을 살아가고 있을까?" 저자는 자신의 시간을 '설렘의 아침을 지나 맞이한 인생의 오후'라고 말한다.
그 질문을 나에게 가져와 본다. 이제 막 서른, 나의 인생 시계는 오전 7시를 지나고 있다. 앞길은 무궁무진하고 서둘러야 할 이유는 없다. 그저 식사를 챙기듯 나를 돌보는 일에 소홀하지 않으려 한 달에 하루를 비워둔다.
내가 스스로를 지키는 단단한 근육을 가져야만, 비로소 타인의 슬픔에 기꺼이 어깨를 내어줄 여유도 생긴다. 나를 지키는 힘은 거창한 구호에서 오지 않는다. 샌드위치 한 입의 감동, 다정한 안부 인사, 영화가 준 눈물 같은 작고 조용한 순간들이 모여 비로소 무너지지 않는 나라는 기둥을 만든다. 이런 개인들이 모여 서로가 서로의 다정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사회. 내가 꿈꾸는 세상도 바로 그런 모습이다.
나의 오전 7시가 건강하게 시작되기를, 그리고 당신의 지나고 있는 어느 시간도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단단하게 지켜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