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들 말투는 경상도인데, 왜 살 곳은 서울뿐일까

by 박지현

대학생 시절 네팔 해외봉사와 제주도 국토대장정을 통해 전국에 사는 친구들을 만났다. 서로 살을 부대끼며 봉사를 하고 길을 걸은 친구들과는 지금도 손에 꼽을 만큼 친한 사이다. 그중 특히 경북에 사는 동갑내기 친구들과는 더 친해서 대구와 안동을 몇 번씩 놀러 가기도 했다. 내가 애정하는 친구들이 자라고, 살아온 그 도시가 궁금했고 동성로의 거리를 친구들과 걸어 다니며 즐겁게 놀았다. 그러면서 어렴풋이 지역이 가진 특성들을 깨우쳤던 것 같다. 친구들이랑 며칠 지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말투는 경상도 사투리를 어색하게 따라 하는 이도 저도 아닌 말투로 변하곤 했다.


소중한 친구들이 사는 동네 정도로 인식하던 그 동네가 정치를 시작하면서부터는 달라 보였다. 민주당에서 가장 어려운 지역, 빨간색이 가득한 지역, 소위 말하는 ‘험지’라고 불리는 그곳. 경북의 친구들과 해외봉사로 만났을 때 우리는 그저 친구였지만, 내가 민주당 정치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나서 대구에 갔을 때의 무게는 이전과 달랐다. 대구에 살고 있는 친구들은 늘 말했다. 대구에는 일자리가 없다는 것, 대구는 최저임금을 안 지킨다는 것, 친구들 중 절반이 서울로 가버려서 놀 친구가 없다는 그런 실제 이야기들을 말이다. 그 말들이 이제는 내 친구의 고민이 아니라 대구가 직면한 거대한 사회적 문제로 다가왔다.


사실 이건 대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을 보내고, 6년간 서울 생활을 하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내가 피부로 느끼는 현실이기도 하다. 원주는 비교적 덜한 편이지만, 강원도 역시 견고한 지역주의의 벽에 갇혀 있다. 정치적 무관심과 체념으로 점철된 도시에서 청년들은 기회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고, 남겨진 지역은 서서히 활기를 잃어가는 ‘지역소멸’의 공포가 눈앞에 닥친 현실인 것이다.


색으로 갈라진 경상도와 전라도, 그리고 소외된 강원도까지. 이 도시들에는 분명히 구조적인 어려움이 존재했다. 청년 인구 유출은 가속화되고, 경제 성장률은 정체되어 있으며, 오랜 시간 변화의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산업 구조의 변화나 수도권 집중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정치적 경쟁이 완전히 실종된 ‘지역주의’라는 고질병이 자리 잡고 있다.


정치가 경쟁하지 않는 곳에서 도시는 활력을 잃는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구조 속에서 정치인들은 시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치열한 고민 대신, 누가 나에게 공천을 줄 사람인지 눈치만 살피는 데 급급했다. 지역주의가 성벽처럼 굳건해질수록 그 성 안의 경제는 고인 물처럼 썩어갔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지역소멸이라는 재앙으로 돌아왔다. 기업은 떠나고 일자리는 메말랐다. 내 친구들을 포함한 청년들은 생존을 위해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고향을 떠나야 했다. 지역주의는 단순한 정치 성향의 차이를 넘어, 대구의 미래를 갉아먹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 있었다.


내 친구들이 살고 있고 너무나 매력적인 도시가 이렇게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진 않아도 일단 대구 사람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 컸다. 3년 전 책을 내고 전국 17개 시도 순회 북토크를 다니며 가장 먼저 찾아갔던 곳도 구미와 대구였다. 대구에서는 30여 명의 시민이 찾아주셨다. 사실 대구라는 지역적 특성상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30명이 와주셨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다. 그때 우리는 <나는 000한 대구에서 살고 싶다>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기억에 남는 답변은 “검은색 대구에서 살고 싶다”는 말이었다. 이런저런 색이 섞이면 검은색이 되듯, 다양한 정당 지지가 존중받는 대구에 살고 싶다는 뜻이었다.

대구에서 진행한 이상한나라의박지현 북토크 현장사진



뒤풀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한 또래 남성은 내가 이곳에 온 것을 가족에게 들키면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며, 심지어 애인에게도 비밀로 하고 왔다고 털어놨다. 그게 말이 되냐며 경악을 금치 못하는 내 주변으로 “나도 그렇다”는 이야기가 줄지어 나왔다. 대구에서 민주당 정치인의 북토크에 오는 것은 단순히 정치적 선택의 문제를 넘어, 자신의 일상과 관계를 걸어야 하는 외로운 투쟁이었다. 다수와 다른 목소리를 내면 고립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청년들의 입을 막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지역주의가 만든 거대한 침묵의 장벽이다. 이 장벽은 청년들의 정치적 상상력을 제한하고,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마저 꺾어버리고 있었다. 대구의 2030 세대가 토착화된 지역주의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고 있음이 느껴졌고, 이는 우리 정치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원주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이 거대한 흐름 속에 서 있다.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서로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다는 이유로 청년들의 꿈이 고향에서 펼쳐지지 못하고 꺾이는 현실을 그저 방관하기엔 나는 현실을 알아 버렸다. 대구와 강원의 위기는 단순히 체감하는 정서에 그치지 않는다. 통계청과 한국고용정보원의 자료에 따르면, 소멸위험지수(20~39세 여성 인구수를 65세 이상 인구수로 나눈 값)가 0.5 미만인 소멸위험지역은 이미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경북은 전국에서 소멸 위험이 가장 높은 광역 지자체 중 하나다. 안동, 상주, 문경 등은 이미 ‘소멸 위험’ 단계에 진입했으며, 특히 대구 남구와 서구는 광역시 단위임에도 불구하고 인구 감소와 노령화가 급격히 진행되며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되었다. 대구의 노인 인구 비중은 20%를 넘어 초고령사회 기준을 초과했으며, 2024년 20대 인구 순 유출 규모는 6천300여 명에 이른다. 경상북도 내 16개 시·군이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되어 전남과 함께 전국에서 가장 많은 소멸위험지역을 보유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강원도 역시 18개 시·군 중 16곳이 소멸위험지역에 해당한다. 상대적으로 젊은 도시로 꼽히는 원주와 춘천마저도 인구 증가세가 둔화하며 안심할 수 없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지표상으로 나타나는 이 숫자들은 결국 지역의 청년들이 떠나고, 남겨진 세대는 고립되어 가는 도시의 침몰을 경고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지난 지방선거 때도, 북토크에서도 가장 먼저 경북을 찾았다. 지역주의를 더 이상 끌고 나가선 안 된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경북에서 만난 당원들은 오늘도 지역주의를 깨보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제일 앞에서 길을 내고 계셨다. 그분들을 보면서 나는 대구의 희망을 얻었던 기억이 여전히 선명하다.


그리고 그 희망의 빛이 다시금 보이려 한다. 김부겸 전 총리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그는 지역주의보다 더 무서운 벽인 ‘지역소멸’이라는 절망의 벽을 함께 넘자고 호소했다. 자식은 부모 눈치를 살피고 부모는 자식 눈치를 보는 대구의 아픈 현실을 꼬집으며, 표만 받아 가고 일을 하지 않는 대구 정치를 비판했다. “당이 대구를 지켜야지, 왜 맨날 대구가 당을 지켜줘야 합니까?”라는 그의 물음에서 대구를 바꾸고 싶은 진심을 보았다.


지역주의의 끝은 결국 지역의 소멸이다. 특정 정당의 깃발만 꽂으면 된다는 안일함이 대구의 성장판을 닫아버렸다. 이제는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대구가 빛나는 미래를 그릴 수 있도록,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이 사는 도시. 빨간색만 선택하는 도시가 아니라 여러 색이 어우러져 무지갯빛을 낼 수 있는 도시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무지개 빛이 대구를 넘어 내가 사는 이곳 원주까지, 온 지역을 환하게 비추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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