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들의 시간

by 박지현


언니가 휴가를 나와 한국에 있다. 폭격이 떨어지는 중동에 있던 언니가 무사히 돌아와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한편, 막상 같이 있으니 투닥거릴 일이 많다. 그래도 먹을 때만큼은 죽이 잘 맞는 우리다.

언니가 오니 가족들이랑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제는 안동으로 가족 여행도 다녀왔다. 1박 2일을 갔으면 인구소멸지역 여행 지원금으로 숙소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을 테지만 일정상 당일치기로 하루를 꽉꽉 채워 하회마을과 월영교도 구경하고 맛있는 것도 잔뜩 먹고 왔다.


하회마을과 월영교


코로나로 언니가 비행을 못해서 한국에 와있을 때, 나는 내 일생 중에 가장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서울에 살던 시절에도 한 달에 두어 번 원주를 다녀가는 정도였으니,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늘 짧았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늘 같은 집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던 가족인데 십 년이 지나 같이 보내는 시간이 새삼 감사하고 새로운 나날이다.

각자의 삶을 찾아 흩어졌던 우리가 다시 모인 건, 단순히 언니의 휴가와 나의 귀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과의 시간을 한참 더 좋아하던 언니와 내가, 부모님의 노화라는 거스를 수 없는 시간 앞에서 자연스레 가족과의 시간을 가장 우선순위로 여기게 된 것 같다.

언니는 아빠를 닮았고 나는 엄마를 닮았다. 생김새뿐만이 아니라 말투나 생각하는 방식도 그러하다. MBTI도 엄마랑 나는 극 F 고 언니랑 아빠는 극 T다. 같이 차를 타고 가도 엄마랑 나는 신나게 노래를 부르면서 가고 싶어 하고, 언니랑 아빠는 조용히 가자하는 편이다.


그래도 아빠는 우리 집 웃음 담당이다. 요즘 애들 말투를 하나 가르쳐주면 그걸 따라 하면서 우리를 웃긴다. 아빠가 아재개그를 시전 할 때면, 언니와 나의 굳은 표정은 신경도 안 쓰이는지 아빠는 푸하하하 웃는다. 어제는 컴퓨터의 ‘성’은 PC(씨)라며 파하하 웃는 아빠가 웃겨서 엄마도 언니도 나도 결국 따라 웃고 말았다.

엄마는 요즘 들어 부쩍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얼마 전 카페에서 셋이 망고빙수를 먹고 있었다. 망고가 얼음 위에만 올려져 있는 줄 알았는데, 바닥에도 한 층 더 깔려 있었다. 그걸 보고 엄마는 “어머, 밑에도 망고를 깔아놨네. 정말 고맙다~~”라고 말했다. 엄마는 그런 것도 고맙냐며 언니와 나는 한참을 깔깔대며 웃었다.

나는 음료를 유난히 빨리 마신다. 남들이 커피 한잔을 마실 때 나는 이미 커피를 다 마시고 물을 가득 따라서 한잔을 더 마시고 있다. 그런 나를 보며 언니는 너는 목구멍이 얼마나 큰 거냐며 ‘왕목구멍’이라고 놀린다. 그러다 이제는 내가 음식을 먹는 소리가 마치 사자가 먹는 소리 같다고 장난 섞인 타박을 준다. 그 타박에 나는 또 장난 반으로 “아 언니 언제 돌아가?”라고 되묻곤 한다.

언니와 나는 어려서부터 정말 많이 싸웠다. 남은 반찬 한 개를 두고 누가 먹을 것인가부터 신고 나갈 신발 가지고도 싸웠다. 서로 키도 몸무게도 똑같아 옷 가지고도 다퉜다. 매번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매번 투닥댄 것 같다. 어려서부터 매번 서로를 놀리고 시비를 걸고 하지만 나이가 들고나니 새삼 언니의 존재가 소중하다.

외동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이가 들수록 형제자매가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말을 종종 한다. 이미 아이를 낳은 친구들 중에는, 훗날 자신들이 떠난 뒤 아이가 혼자 남겨질까 봐 둘째를 고민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 말들을 듣고 있으면, 언니가 있어 내가 느끼는 안도감이 당연한 감정인 것 같다.

폭격의 공포가 상존하던 곳에서 돌아온 언니가, 이제는 망고빙수 바닥에 깔린 과육 하나에 함께 웃고 나의 먹는 소리를 두고 투닥거린다. 어쩌면 평화란 거창한 선언이나 조약이 아니라, 이렇게 사소한 일로 웃고 다툴 수 있는 '아무 일 없는 하루'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안도감이 단순히 운 좋게 태어난 혈연의 울타리 안에서만 허락되는 특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가 개인의 고립을 방치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사회적 가족이 되어줄 때, 우리는 외로움이라는 감정 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이 개인의 운에 맡겨지지 않는 세상, 사소한 다툼조차 평화로 여겨지는 사회적 환대가 더 넓게 번져나가길 소망해 본다.


우리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유도 결국 대단한 성취를 위해서라기보다, 이런 평범한 순간들을 지켜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망고가 밑에도 깔려 있다며 기뻐하는 엄마의 마음을, 나를 놀리는 언니의 목소리를 오래도록 곁에 두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오랜만에 다시 모인 우리 가족의 식탁 위에는, 김치찌개 김보다 더 모락모락 한 안도감이 피어오르고 있다. 이 온기가 우리 집 담벼락을 넘어, 외로운 누군가의 식탁 위에도 가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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