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이맘때에만 먹을 수 있는 채소가 있다. 두릅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봄나물이기도 하다. 우리 집에는 엄나무순(개두릅) 나무와 두릅나무가 하나씩 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아빠가 순을 따고, 엄마가 이걸 데쳐 식탁에 올린다. 나는 그저 앉아서 맛있게 먹는 사람이었다.
올해는 처음으로 내가 직접 엄나무순을 땄다. 단순히 농활 체험학습처럼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나무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가지마다 촘촘하게 돋아난 가시들이 손을 막아섰다.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몇 번이나 찔렸다. 따끔하고 마는 정도가 아니라 살을 깊게 긁는 통증이었다. 순간적으로 손을 빼며 “아!” 소리를 질렀고, 손등에는 금세 붉은 선이 올라왔다. 얇은 장갑은 소용이 없었다.
그동안 나는 이걸 너무 쉽게, 마구마구 먹고 있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높은 가지에 달린 순을 따기 위해 팔을 최대한 뻗고, 가시를 피해 각도를 바꿔가며 조심스럽게 비틀어 따낸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몇 개를 따고 나니 손등은 벌써 여기저기 긁힌 자국투성이었다.
그렇게 따온 엄나무순은 엄마가 데쳐주었다. 김이 오르는 그릇 가까이에 가면 특유의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풀 향 같으면서도 어딘가 쌉싸름한 냄새. 입에 침이 고인다. 물기를 꼭 짜 하나를 집어 입에 넣는다. 씹을수록 은은한 향이 퍼지고, 삼킨 뒤에는 잔향이 맴돈다. 깔끔한 뒷맛이 좋아서 하나 더, 또 하나 더 손이 간다.
사람들은 두릅이 면역력에 좋다거나 피로 해소에 좋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냥 개두릅에서 느껴지는 이 봄맛이 좋다. 이 짧은 계절에만 허락되는 맛. 생각해 보면 서울에 살던 시절에도 이 맛만큼은 잊히지 않았다. 가끔 원주에 왔다가 서울로 돌아갈 때면 엄마가 반찬을 이것저것 챙겨주곤 했다. 짐이 늘어나는 게 번거로워서 사양할 때도 많았지만, 개두릅만큼은 단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
서울에서의 계절은 늘 어딘가 간접적이었다. 마트에 놓인 과일들, 거리의 옷차림, 집을 나서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는 바깥의 온도. 원하면 언제든 원하는 걸 살 수 있는 곳에서 ‘제철’이라는 말은 그저 마트 기획전의 문구처럼 느껴졌다. 계절은 있었지만, 몸으로 겪는 시간이라기보다는 정보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의 봄은 다르다. 어제까지만 해도 단단하던 봉오리가 하룻밤 사이에 부드러운 순을 틔운다. 그리고 그 순은 또 금세 억세 진다. 먹기 좋은 시간은 아주 짧다. 그래서 그 ‘때’를 놓치지 않으려 나무를 올려다보고, 손을 뻗는다. 여기서는 계절의 시간을 잘 맞춰서 따라가야 한다.
이렇듯 자연이 정해놓은 박자에 내 하루를 맞추게 된다. 예전에는 엄마가 정갈하게 손질해 봉투에 넣어준 두릅을 받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가시 돋친 나무 앞에 서서 직접 따고, 그 수고를 몸으로 겪는다. 같은 두릅인데도, 그 무게와 맛도 다르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손등에 남은 상처가 그리 밉지 않다. 따끔하게 아팠던 순간이 있었는데도, 이상하게도 그 흔적이 조금은 자랑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은 엄나무순을 땄지만 아마 이틀쯤 지나면 두릅나무의 순도 가장 먹기 좋은 때가 올 것이다. 이번에는 조금 더 요령 있게, 덜 찔리면서 딸 수 있지 않을까? 향과 맛이 매력적인 봄나물, '제때'를 살아가는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스럽고도 정직한 봄의 성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