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센터 알바에 번호를 등록해 두면, 이틀에 한 번꼴로 홍보 문자가 온다. 평소에는 기본급에 붙는 추가 수당이 보통 3만 원, 많아야 5만 원인데, ‘추가수당 7만 원’이라는 문자가 도착했다. 오랜만에 보는 높은 금액이었다.
요즘 나는 아침마다 작은 카트를 몰고 사무실에 녹즙을 배달한다. 흔히 ‘요구르트 아줌마’라 불리는 일과 비슷하다. 새로 알바를 구해 신나 있던 참이었다. 새벽 6시부터 네 시간 동안 고객이 지정한 장소에 음료를 두면 된다. 월급제로 비교적 안정적이지만, 물류센터 알바처럼 빠르게 입금되는 구조는 아니다. 오전에는 녹즙 배달, 오후에는 물류센터. 당장은 고되더라도 이번 주만 버티면 꽤 쏠쏠한 주급이 될 터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사고가 모든 계획을 무너뜨렸다. 학교 수업이 있어 송파에서 서대문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던 중이었다. 대중교통으로 가나 자전거로 가나 시간은 비슷했지만, 붐비는 2호선 대신 가을바람이 솔솔 부는 길을 선택했다. 한 시간 넘게 페달을 밟다 보니 엉덩이가 아려왔고, 학교까지는 15분 남짓 남아 있었다. 마포구의 자전거 도로는 불친절했다. 마지막 차선에 ‘자전거 우선주행도로’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 그곳을 달리는 건 거의 모험이었다.
도로와 인도를 번갈아 타던 중, 옆을 지나가던 학생 무리가 무언가를 떨어뜨리는 소리에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순간 중심을 잃고 그대로 넘어졌다. 전신이 욱신거렸고, 발목은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누군가 다가와 “괜찮아요?”라고 물었지만, 대답할 정신조차 없었다. 겨우 자전거에 끼워져 있는 핸드폰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해 수업 동료에게 “사고가 났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일단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았다. 그 와중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바로 뒤 10미터 거리에 응급실이 있었다. 지나가던 커플에게 “정말 죄송하지만,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부탁했고, 감사하게도 그분들은 재빠르게 휠체어를 가져와 나를 부축해 주었다.
검사 결과, 인대가 끊어졌다고 했다. 깁스를 해야 했다. 수업은 이미 끝났고, 발목은 시간이 갈수록 부풀어 올랐다. 병원비는 15만 310원. 만약 알바를 갔다면 받을 수 있었던 돈은 17만 2,100원이었다. 17만 원을 버는 대신 15만 원이 나간 셈이었다. 괜히 32만 원을 잃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누워만 있었다. 녹즙 배달은 쉬어야 했고, 물류센터 알바는 당연히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몸은 쉬는데, 마음은 점점 가라앉았다. ‘아프면 돈이 나가고, 일을 못하면 돈이 안 들어온다.’ 단순한 사실이었지만, 그 안에는 벽 같은 현실이 있었다. 누워 있는 내내 우울함이 나를 짓눌렀다.
사람은 해를 안 보면 병이 든다고 한다. 우리 집은 해가 들지 않는다. 그래서 일정이 없어도 하루에 꼭 한 번은 해를 보러 집 앞에 나간다. 그런데 발목을 다치고 나니, 집 밖을 나서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엘리베이터 없는 3층에 사는 내게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부터가 도전이었다.
그제야 어렴풋이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다치는 일은 생각보다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병원비는 사치가 되고, 통증은 참고 버티는 일이 된다. 아픈 몸보다 더 무서운 건, 일을 못하는 몸이었다. 집 밖을 나가는 것조차 버거운 몸이었다. 나는 그저 누워서 발목이 하루라도 빨리 낫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백 번의 추억>에는 그런 장면이 나온다. 시장에서 리어카를 끌던 만옥(이정은)은 내리막길에서 굴러 크게 다친다. 딸은 병원에 가자고 애원하지만, 만옥은 괜찮다며 또 일을 나갔다가 통증에 못 이겨 결국 바닥에 쓰러진다. 다치고 나서 그 장면을 봐서 그런지, 다른 장면들처럼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다행히 나는 드라마 속 만옥처럼 책임질 가족도, 병원비조차 낼 수 없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병원비를 턱턱 낼만큼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서른이 되도록 나 한 몸 제대로 책임지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친구 자식들은 결혼도 하고 손주도 낳고, 부모님께 용돈도 드린다는데…
어린 시절, “크면 아빠 용돈 한 달에 백만 원씩 줄게!”라며 떵떵거리던 내가 떠올랐다. 그럼에도 결국 아빠에게 병원비를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싫었다. 놀란 아빠를 진정시키며 “병원비나 보내줘~” 하고 애써 장난스럽게 말했다.
병원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창밖으로 스치는 불빛이 지나갈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친다는 건, 멈춘다는 것.’ 하루가 멈추고, 수입이 멈추고, 계획이 멈춘다. 그리고 멈춘 사람 앞에서 세상은 여전히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러간다. 그렇게 세상은 멈춘 사람의 속도를 모른 채, 그대로 흘러간다.
우리 사회엔 여전히 그런 사람들이 있다. 다른 선택지가 없어 몸을 갈아 넣으며 하루를 버티는 사람들. 허리를 다치고, 손이 베이고, 피멍이 들어도 병원에 가는 게 부담이 되는 사람들. 병원비는 비싸고, 일을 쉬면 그날의 식비조차 벌 수 없는 상황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몸으로 버는 노동’은 얼마나 쉽게 부서지는가. 다친 몸 앞에서는 하루의 계획이, 생계가, 그리고 ‘추가수당 7만 원의 유혹’마저 허무하게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