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시간 2호선은 숨 쉴 틈 없이 붐빈다. 나는 역삼에서 이대까지 간다. 몇 번의 지하철을 보내고 나서야 겨우 탑승에 성공했다. 사람들은 하루의 무게를 안고 집으로, 혹은 또 다른 목적지로 떠밀리듯 움직인다. 정장을 입은 사람, 후드티에 백팩을 멘 사람, 그 사이를 지나며 문득 생각한다. 이 사람들은 어디서 왔고, 어떤 하루를 살았을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신림쯤 지나면 겨우 발 디딜 틈이 생긴다. 그제야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이 보인다. 피곤이 묻어난 얼굴. 5년 전 나는 서른 살이면 언론사 기자가 되어 있을 거라 믿었다. 대학에서 언론을 전공했고, 취재와 글쓰기가 적성에 잘 맞았다. 어렵더라도 결국 기자가 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대학 졸업을 1년 앞둔 어느 날, ‘N번방’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이 뒤흔들렸다. 함께 네팔 해외봉사를 다녀왔던, ‘그런 사람이 아닐 거라 믿었던’ 한 오빠조차 그 방에 있었다. 내가 믿고 있던 관계, 세상에 대한 얇은 낙관은 산산이 부서졌다.
온라인 공간에서 벌어진 끔찍한 성 착취를 보고 난 뒤, “이들을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자”는 다짐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3년 동안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해 활동가이자 시민기자로 살았다. 앞뒤 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사회도 조금씩 변했다. 양형 기준이 마련되고, 가해자들이 검거되고, 디지털 성범죄가 무거운 범죄라는 인식도 생겨났다. 그런데 피해자들을 향한 가해는 계속 됐다. 삭제되지 않은 영상, 2차 가해, 끝나지 않는 공포. ‘무엇을 더 해야 이 구조를 멈출 수 있을까.’ 그 질문 끝에 남은 선택지는 정치였다.
이후 나는 정치권으로 들어왔다. ‘추적단불꽃’ 활동 경력을 바탕으로 2022년 대선을 계기로 민주당에 영입되었고, 디지털성범죄근절위원장과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많은 응원 속에서 제1 정당의 비상대책위원장까지 되었지만,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 26살의 활동가가 정치의 한복판에 서게 됐다. 해결할 현안은 너무 많았고, 내가 가진 시간은 부족했고 기반은 약했다. 그럼에도 나는 옳다고 믿는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결정권은 생각보다 내 손에 많지 않았다. 책임을 안고 자리에서 물러난 뒤, 어느 순간 나에게 남은 것은 ‘어린 활동가 출신 정치인’이라는 애매한 위치였다. 그 시간을 지나며 확실히 깨달았다. 정치로 바꿔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과 지금의 정치로는 내가 바라는 세상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22대 총선에도 출마했다. 나를 대변하는 정치인이 없으니, 내가 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결과는 아쉽지 않은 차이의 낙선이었다. 선거를 치르며 시민 대상 전화 여론조사를 위해 두 가지 경력을 적어 내라는 요청을 받았다. N번방 추적 활동 이력과 비대위원장 이력을 말했으나, 당은 N번방 추적 활동은 경력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일정기간 동안 급여를 받은 공식 기관의 일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그 활동으로 나를 영입해 놓고, 이제 와서 그건 경력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이후 나는 1년 가까이, 목적지를 잃은 차처럼 멈춰 서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그 시간 속에서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잃지 않으려 조용히 스스로를 붙들고 있었다.
1년 반이 흐른 지금, 나는 여러 알바를 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녹즙 알바와 쿠팡 알바, 강연료를 합쳐 140만 원 정도, 이번 달에는 녹즙 알바와 사무직 알바로 총 210만 원 정도를 받게 된다.
나는 나에게 다시 묻는다.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정치인, 활동가, 청년, 여성, 노동자... 여러 정체성이 중첩되어 있지만, 지금의 나는 ‘여성 청년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분명 노동을 하고 있지만, 사회는 그런 나를 과연 노동자로 인식할까? 활동가로 보낸 시간은 경력으로 계산되지 않고, 지금의 일은 ‘알바’로 분류된다. 제도적 기준에서 나는 아직도 ‘정상적인’ 노동자의 범주 밖에 서 있다.
세상은 범주 밖에 선 존재를 인정하지 않거나, 때로는 지워버린다. 그래서 나는 정치를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고 믿는다. 활동가에서 정치 한가운데로 들어왔던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늘 같은 대답을 해왔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 또한 그 사이에서 길을 찾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그들을 위해서이자 나 자신을 위해서 계속 정치를 할 것이다.
지하철 안내 방송에서 “우리 모두 힘들지만, 더 힘든 사람을 위해 자리를 배려해 보자”는 문구가 흘러나온다. 내가 조금 힘들더라도, 자리를 내어주는 그 작은 선택이야말로 내가 믿는 정치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지친 하루를 버틴 몸으로도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어줄 때 느껴지는 따뜻함은, 내가 왜 다시 이 길을 걷고 싶은지 잊지 않게 한다.
이렇듯 타인이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행동 하나가 누군가의 하루를 바꾸고, 나아가 그 하루가 그 사람의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마음을 가진 순간, 우리는 모두 정치의 주체가 된다. 정치란 결국 힘 있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마음에서 출발한다고 나는 믿는다.
이름 붙여지지 않은 노동을 하더라도,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는 시간을 지나더라도, 이 자리에서 겪은 모든 경험이 다시 나아갈 길을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안다. 지금의 이 하루가, 이 순간의 자리들이 언젠가 더 넓은 변화를 향한 출발점이 되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