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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by 박지현

12월이 되면 마음이 늘 흔들린다. 거리엔 캐럴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두꺼운 외투 깃을 여미며 연말의 아쉬움과 새해의 기대를 품고 걷는다. 송년회, 뒤풀이, 연말 모임이 이어지는 때였다. 그날도 연말 행사를 마친 뒤 동료들과 강의를 듣고 있었다. 열다섯 명 남짓한 좁은 공간. 누군가 말했다.

“계엄이래요.”

처음엔 다들 피식 웃으며 가짜 뉴스쯤으로 넘겼다. 그러나 몇 초 뒤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속보는 우리의 표정을 하나같이 굳게 만들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기계음처럼 떨림 없는 목소리. 그러나 그 문장은 우리 일상의 균열을 그대로 들이쳤다. 2024년에 계엄이라니. 도무지 현실 같지 않았다. 몸이 굳어 버린 채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던 우리는 거의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엄을 해제할 권한이 있는 국회로 가야 했다. 차에 오르자마자 라디오에서 끊임없이 제2·제3의 속보가 흘러나왔다.

홍대에서 여의도까지 15분. 수없이 다녔던 거리였지만 그날의 15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길고도 짧은 시간이었다. 창밖엔 평소처럼 야경이 번져 있었지만, 그 불빛이 갑자기 낯설게 보였다. 손바닥은 땀으로 젖어 있었고, 서로 말문을 닫은 차 안엔 이상하리만큼 묵직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국회로 사람들은 이미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 경찰들은 국회의 진입을 막고 있었고,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 장면을 소셜 미디어에 생중계하며 시민들의 움직임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뚜두두두—

여러 대의 헬기가 국회 상공을 가르며 지나갔다. 프로펠러의 굉음이 가슴을 두드리듯 울렸다. 등줄기가 싸늘해졌다. 혹시 저 위에서 무언가 떨어지면 어떡하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원초적인 공포가 군더더기 없이 밀려왔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봤지만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짧은 정적 끝에 누군가가 외쳤고 우리는 곧 다 같이 소리쳤다.

“비상계엄 철퇴하라! 비상계엄 해제하라!”

목이 쉬는지도 몰랐다. 우리의 함성은 밤공기를 찢고 울렸다. 두 시간여 흐른 뒤, 재석 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었다는 속보가 나왔다. 국회 안을 지키던 280여 명의 계엄군이 하나둘 철수했고, 우리도 비로소 몸을 돌려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 밤이 끝이 아니었다. 광장의 시간은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고, 그 시간은 6개월 동안 이어졌다. 발끝이 시릴 만큼 차가운 겨울밤, 사람들은 서로의 손등 위에 언 손을 포갰고, 얇은 은박지를 나눠 덮으며 버텼다. 몸은 얼었지만, 눈빛은 결연했다. 그 겨울의 공기, 서늘함, 스피커에서 튀어나오던 찢어질 듯한 잡음과 함성들 그 모든 것이 지금도 생생하다.

광장에서 우리는 모두 동등한 시민이었다. 거기서 우리는 정치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였고, 나라와 우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어깨를 맞대었다. 계엄 선포에서 대통령 직무 정지, 그리고 파면 결정에 이르는 혼란의 시간들. 국가가 지켜야 할 시민에게 총구가 겨눠지던 그 밤의 공포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날들은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시간이었다. 트랙터 십여 대가 남태령을 넘어 한강진으로 진입하던 장면, 서로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초콜릿과 핫팩을 건네던 순간들, 뼛속까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버티던 그 밤들. 우리는 서로를 지켜냈고, 서로에게 지켜졌다.

국가는 언제든 흔들릴 수 있지만, 시민의 마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그 시간을 통해 배웠다. 앞으로 어떤 겨울이 오더라도 우리는 다시 그 불씨를 모아 어둠을 밝힐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감시하고, 지켜내고, 손을 맞잡는 일, 그 책임은 남겨진 우리의 몫이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여전히,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곁에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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