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므라이스의 온기

by 박지현


얼마 전 일이다. 늦은 밤 잠드려던 찰나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갑자기 입원을 하셨다는 소식이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당장이라도 병원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다음 날 아침 일찍 나서야 하는 녹즙 배달 아르바이트가 현실적인 발목을 잡았다. 아빠는 “당장 심각한 건 아니니 일단 상황을 보자”며 나를 다독였다. 얼마 전 외할아버지를 보내드린 뒤라 작은 소식에도 걱정이 컸다. 전화를 끊고 불안에 휩싸여 한참을 울다 잠들었다.


다행히 다음 날, 뇌출혈로 의심했던 증상은 큰 병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열도 내렸고 일주일 정도 안정을 취하면 퇴원할 수 있다는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안도감 뒤로 질문 하나가 밀려왔다. ‘만약 할머니가 정말 내 곁을 떠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엄마는 고등학교 선생님이셨다. 야간 자율학습 감독이 있는 날이면 엄마는 밤 10시가 훌쩍 넘어서야 귀가하셨다. 어린 나에게 그 시간은 너무 길었고, 나를 챙겨주지 못하는 엄마가 야속해 서러움이 쌓이곤 했다. 유치원 행사 날, 다른 친구들의 손은 엄마가 잡고 있었지만 내 손을 잡은 건 할머니였다. 그게 괜히 창피해 할머니를 모른 척하기도 했고, 아무 잘못 없는 할머니에게 뾰로통하게 툴툴거리며 화풀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내 방 바로 옆방에 머물며 나의 유년 시절을 지켜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할머니는 학교 끝날 시간에 맞춰 종종 오므라이스를 배달시켜 주곤 하셨다. 이건 할머니와 나만의 비밀이었다. 할머니는 밥이 식을세라 뜨끈한 이불속에 소중히 넣어두었다가,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짜잔-’ 하고 온기가 남아있는 오므라이스를 꺼내 주셨다. 그 비닐을 뜯으며 신나 하던 내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온기는 할머니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사랑의 방식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한 것은 할머니의 정구지(부추) 반찬이었다. 갓 지은 하얀 쌀밥 위에 할머니가 손끝으로 얹어주는 정구지 한 움큼. 그 짭조름한 맛은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훌륭했다. 점잖게 존댓말을 쓰는 언니, 오빠들과 달리 나는 할머니에게 허물없이 반말을 썼다. 내게 할머니는 어른이기 전에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였다. 늘 그 자리에 변치 않는 모습으로 머물 줄 알았던 할머니가 요즘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세월의 무게에 총명함은 옅어지고, 단단했던 판단력이 흐릿해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말로 다 못 할 만큼 안타깝다.


또 마음이 쓰이는 것은 할머니와 한집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이다. 손녀인 나에게 할머니의 노화가 안타까운 변화라면, 함께 사는 엄마에게 할머니의 나이 듦은 일상을 송두리째 흔드는 실존적 부담이다. 나는 따로 떨어져 살고 있지만, 엄마는 매일 할머니의 곁에서 실질적인 수발을 들어야 한다.


시어머니인 할머니와 친정어머니인 외할머니, 두 분이 동시에 연로해지시면서 엄마는 몸이 하나라도 부족할 지경이다. 특히 했던 말을 수십 번 반복하는 외할머니를 보며 엄마가 느끼는 감정은 마냥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이별에 대한 두려움과 반복되는 돌봄의 고단함이 섞인 중압감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부쩍 엄마가 요즘 “우울하다”는 말을 한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그 고백에, 지친 엄마를 돕기 위해 원주로 내려갈까 고민하다가도 문득 두려운 질문이 떠오른다. ‘과연 내가 부모님을 부양해야 할 때 나는 해낼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내 앞가림조차 버거운 미완의 존재인데, 누군가의 삶을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은 거대한 벽처럼 느껴진다.


우리 부모 세대는 형제가 많아 돌봄의 책임을 나누기라도 했지만, 우리 세대는 다르다. 언니와 나, 단둘이서 감당해야 할 무게는 훨씬 가혹할 것이다. 외동인 친구들과 이야기하면 다들 암담하다고 말한다. 한 개인에게 지워진 돌봄의 무게가 이토록 무거운데, 과연 이것이 개인의 효심이나 의지만으로 해결될 문제일까?


이 막막함은 비단 개인의 유약함 때문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노인 돌봄 시스템은 여전히 가족, 특히 여성의 희생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국가 차원의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다지만, 등급 판정의 문턱이 높고 시간도 제한적이라 가족의 ‘독박 돌봄’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다.


돌봄의 책임을 오롯이 개인이 짊어져야 하는 구조는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다. 돌봄은 더 이상 사적인 효도가 아니라 국가와 공동체가 함께 짊어져야 할 공적 책임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간병비 지원을 통해 경제적 부담을 낮추고, 보호자가 긴급할 때 믿고 맡길 수 있는 돌봄 문화센터가 동네 곳곳에 생겨나야 한다.


외할머니도, 친할머니도 조금씩 기억의 조각들을 잃어가고 계신다. 이별은 예외 없이 찾아오는 일이라지만, 우리는 결코 그 순간을 완벽히 준비할 수 없을 것이다.

할머니들이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갈수록, 나는 그만큼의 책임을 짊어진 어른이 되어간다. 어린 시절 내가 받았던 과분한 사랑, 그리고 나의 끊임없던 질문들은 이제 할머니들의 것이 되었다. 오므라이스의 온기와 정구지 반찬의 맛은 내 머릿속에 선명한 기억으로 남았다.


이제는 내가 그 온기를 돌려드려야 할 때다. 할머니가 내게 그랬듯, 주름진 손을 한 번 더 꽉 잡아본다. 나중에 “더 사랑할걸” 하는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지금 내가 드릴 수 있는 마음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것. 그것은 할머니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할머니의 시간이 조금만 더 천천히 흘러가기를, 그래서 우리가 조금 더 오래 사랑하는 가족으로 머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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