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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으로 갚는 빚

by 박지현


나는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다. 그래서 늘 마음이 무거웠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손에 쥔 건 없는데 받아야 할 도움은 늘 넘쳐서, 나는 만성적인 마음의 채무자였다. 내 사진을 찍어주는 분들, 지칠 때마다 응원 메시지를 보내 힘이 되어준 분들, 정책적 고민에 여러 답을 함께 고민해 준 여러 연구자, 전문가분들, 내가 무너질까 걱정하며 손을 놓지 않던 동료들... 이 넘치는 고마움을 무엇으로 갚을 수 있을까 고민이었다.


그분들께 마음을 표현할 방식을 찾다가 나는 부엌으로 향했다. 따끈한 버섯 솥밥에는 쪽파를 듬뿍 올리고, 집된장으로 끓인 구수한 된장찌개, 잡내 없이 대파와 양파를 넣고 푹 삶은 수육이 내 대표 메뉴다. 비건 식을 하시는 분들이 오면 맞춤 비건 식으로 준비한다. 밖에서 먹으려면 십만 원이 훌쩍 넘겠지만, 재료만 값싸게 잘 구하면 여섯 명이 와도 삼만 원 남짓이면 된다. 엄마가 보내준 강원도 김치까지 더하면 정성 가득한 한 끼가 완성된다.


그래서 고마운 사람들, 혹은 근래 힘들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조용히 불러 물어본다. “뭐 좋아하세요? 뭘 해드릴까요?” 우리 집에 와본 사람들은 농담 삼아 말한다. “박지현 집 가면 배 터져서 나온다” “정치권이 요식업 인재를 데려갔다니까” 그 말을 들으면 괜히 웃음이 난다. 내 실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우리 정서가 원래 그렇지 않은가. ‘밥은 먹었나’, ‘언제 밥 한 끼 하자’ 사는 이야기를 제일 자연스럽게 나누는 방식이 다 밥상 위에서 나온다.


2년 전쯤, 정치학교 뒤풀이 자리에서 한 분이 내게 당신의 팬“이었다”며 과거형을 강조해서 말했다. 나는 1기 졸업생, 그는 2기 신입생이었다. 살짝 취한 그는 슬픈 표정으로 나에게 그 이유를 말했다. “진짜 팬이었는데… 이재명 대표한테 가서 회복식 해준다는 얘기했을 때 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그 일은 시간이 한참 흘러서도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렸다. 내가 권력 옆에서 아부하는 모습으로 보였던 듯했다. 심지어 한 전직 의원님은 그걸 두고 “그로테스크하다”고까지 말했다. 그 말이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내 마음속에 더 크게 남는 감정은 지금도 같다. 눈앞에서 사람이 쫄쫄 굶어 수척해져 있는데, 밥 한 끼라도 챙겨주겠다고 말한 것이 정말 그렇게 큰 잘못이었을까 하고.


힘든 사람에게 밥을 챙겨주는 건, 정치 이전에 인간의 본능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이 마음은 비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드라마 《일타 스캔들》의 최치열(정경호) 강사도 그러했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시절, 아버지를 잃고 고시원에서 힘겹게 지내던 그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남행선(전도연)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백반집 아주머니는 그에게 “밥 먹고 가!”라고 소리쳤다. 치열이 “식권 없는데요”라고 답하자, 아주머니는 “언제 식권 달래!”라며 그를 끌어당겼다. 그날 아주머니가 차려준 따뜻한 밥 한 그릇 덕분에 최치열은 절망의 문턱에서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 훗날 대한민국 최고의 강사가 된 그가 섭식장애를 앓으면서도 유독 남행선의 반찬과 밥에만 반응했던 이유도, 그때 받은 밥의 온기 덕분이었을 것이다.


사람 사는 일이 결국 “먹고살자고 하는 것”이고, 집은 없어도 버티지만 밥은 먹지 않으면 죽는다. 물론 모든 것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자리에 있었던 만큼, 내 말이 어떤 의미로 소비될지 고려하지 못했던 건 분명 내 부족함이다. 하지만 사람이 굶지 않았으면 하는 감정만큼은 지금도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실망했다던 그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을 바꾸게 됐다. 정치학교 2기 후배들에게 정성이 담긴 간식을 준비하고 싶어 아침 일찍부터 생크림 휘핑을 치고 과일을 잘라 과일샌드위치를 만들었다. 괜히 선배라고 무슨 말을 전하기보다는 밥 한 끼를 먹이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고, 30여 명을 밥 먹일 순 없으니 샌드위치를 싼 거다. 다섯 시간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그걸 바리바리 싸간 나를 보며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아, 박지현은 원래 이런 사람이구나. 밥 먹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이제 그와 나는 좋은 동료가 되어 있고, 그는 우리 집에 와서 벌써 밥을 세 번이나 먹었다.


정치라는 세계는 늘 셈법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중심에 지금의 정치에서는 보기 힘든, 소박한 질문 하나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서로의 삶에 위안이 될 수 있는 존재인가?”


나는 그 답을 화려한 구호가 아니라, 좁은 부엌에서 끓는 냄비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밥상에서 찾는다. 사람을 돌보는 일, 굶지 않게 하는 일, 마음이 부서지지 않도록 곁을 지키는 일.


정치는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더 많은 이들이 따뜻한 밥을 먹으며 버틸 힘을 얻고, 서로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챙겨주며, ‘우리 집에 와서 밥 먹고 가라’는 한마디로 위로를 얻는 사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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