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것들은 어찌 보면 거창하다. 세상에 모든 기아가 사라지며, 모든 전쟁이 종식되고, 불평등과 차별이 사라지며, 노동자들은 안전하고, 아이들은 행복하고, 노인들은 평온한 세상. 그 누구도 고통받지 않는 유토피아. 그런 세상이 단숨에 오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잘 안다. 그래서 내가 바라는 내일은 조금 더 구체적이고 절실하다. 내가 2025년에 겪어야 했던 일들이, 적어도 다른 이들에게는 되풀이되지 않는 것. 그 하나만큼은 반드시 이루어지길 바란다.
내게 2025년의 키워드는 안타깝게도 ‘배신감’이다. 이 단어는 믿었던 사람에게 당한 일로 우울하고 괴로웠던 시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를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관계의 붕괴, 그리고 나를 온전히 품어주지 못한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실망까지 모두 포괄하는 아픈 이름이다.
내가 처음으로 성추행을 당한 기억은 초등학교 6학년이다. 이를 시작으로 거의 매년, 지속적으로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 초등학생 때는 친구가 전단지 알바를 하자는 제안에 재미있을 것 같아 응했다. 스타렉스 차를 타고 전단지를 돌리기 위해 아파트 지하상가에서 우리를 떨궈주던 아저씨가 내 허벅지를 만졌다. 나는 시간이 한참 지나 그 당시 느꼈던 불쾌함이 성추행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중학교에 들어와서는 수련회 사진을 인화하러 설레는 마음으로 사진관에 갔다. 어두컴컴한 사진관에는 아저씨와 나뿐이었다. 사진이 인화되는 25분 동안 그는 내 머리와 등, 어깨를 쓰다듬으며 계속해서 예쁘다는 말을 내뱉었다. 내 사진이 한 장씩 나올 때마다 뚫어지게 바라보며 “이 사진은 예쁘니까 아저씨 한 장 주라”고 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했다. 건물 깊숙한 곳이라 소리를 질러도 누구에게 닿을 것 같지 않았다. 다행히 사진을 들고 무사히 빠져나왔지만, 그 길로 달려간 영어학원에서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수업 중에 엉엉 울던 나를 보고 선생님은 부모님께 전화를 하셨고, 그날의 공포와 서러움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다.
고등학생 때는 동급생들끼리의 장난인 줄 알았던 게 그들에게는 조롱 섞인 성희롱이었다는 걸 깨달았고, 스무 살 성인이 된 해에는 길거리에서 취객에게 강제로 끌어안기는 일을 당했다. 그를 뒤쫓았지만, 그는 정장을 빼입은 수십 명의 남성 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그 앞에서 나는 압도적인 위압감을 느꼈다. 당시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못했다는 분함에 6개월 넘게 밤마다 이를 갈았다.
성추행을 당한 피해를 읊으라면, 많은 여성들이 나처럼 줄줄 읊을 것이다. 이런 불쾌하고 열받는 경험이 우리에겐 살아오면서 겪어야만 했던 그런 일들이었으니. 그래도 내가 대학생 때부터 성폭력 근절을 위한 활동도 해오고, 여성 인권에 목소리를 내오면서 이런 일은 앞으로 내게 안 일어날 줄 알았다.
이전의 피해들이 ‘운이 나빠 마주친 재난’ 같은 것이었다면, 이번에 겪은 일은 결이 달랐다. 여성 5명 중 1명이 경험한다는 ‘친밀한 관계에서의 성폭력‘. 나 또한 그 통계에서 1명이 되었다. 꽤나 믿고 의지했던 사람, 그 신뢰를 자양분 삼아 자행된 폭력은 나를 송두리째 흔들었다. 모르는 타인에게 당한 폭력이 세상을 향한 날 선 경계심을 만들었다면, 믿었던 이에게 당한 폭력은 내가 발 딛고 선 땅 자체를 흔들어버렸다. 그것은 단순한 피해를 넘어 인간 존엄에 대한 근본적인 배신이었다.
경찰 신고까지 가지 않은 이유는 일단 사과를 받았기 때문이고, 법적 공방이 너무나 지지부진하고 힘든 싸움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2차 가해도 잘 알고 있었고 말이다. 그러나 조용히 처리하려 했던 과정에서도 2차 가해는 발생했고 거기서 나는 믿던 사람들과 관계의 단절을 겪기도 했다. 그렇게 그들에게도 배신감을 느끼며, 내 2025년의 키워드가 배신감이라는 단어로 남게 되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 것과 상관없이 여성들에게 성희롱과 성추행과의 싸움은 계속된다. 근데 나는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내가 겪은 일들이 그냥 운이 나빠서 생기는 그런 일인 줄만 알았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이 여성 인권을 이야기할 때도 나는 차별받는다고 느끼지 않고, 나는 내 일상을 잘 살아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당했던 피해들을 기억 깊은 곳 저편에 없는 일로 있어야만 내가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사회적 구조가 바뀌지 않은 채 외면하기만 했던 고통은, 결국 어른이 된 내게 배신감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왜 여성들은 일상을 살아내면서 일상에서 안전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나. 그러나 여성들이 안전하지 않다는 걸 이야기하면, 특히나 정치권에서도 그것은 오로지 ‘여성들만의 일’로 치부되거나 예민한 일로 여겨진다. 심지어 정치권 내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사건에서는 선거를 위해서 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입어도 감당하라는 2차 가해도 쏟아진다. 묻고 싶다. 정말 우리가 예민한 것인가, 아니면 성적 침해를 일상으로 여기는 종자들이 문제인 것인가. 문제의 책임은 피해자의 예민함이 아닌 가해자의 저열함이다.
평생 입원 한 번 해본 적 없던 내가 입원도 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몸이 아파왔다. 그렇게 나의 일상은 덜컹거렸지만, 역설적이게도 2025년의 사회적 풍경이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3년을 끌어온 권력형 성범죄 피고인 박완주의 최종 대법원 판결 유죄 확정과 61년 만에 명예를 회복한 최말자 선생님의 무죄 판결은 나의 개인적인 고통 너머를 바라보게 했다. 여가부 폐지라는 퇴행적 논의 대신 성평등부가 출범하고, 시민의 힘으로 계엄의 위기를 막아낸 경험은 우리가 여전히 나아가고 있음을 증명했다.
개인적으로는 무너진 신뢰 앞에서 눈물 흘린 날이 많았으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바라본 세상은 더디더라도 분명 정의로운 방향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이 ‘신뢰’라는 이름의 무기로 짓밟히는 일은 이제 나의 삶에서도, 타인의 삶에서도 결코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이 고통스러운 감정에 너무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이런 비극이 더는 보편적인 경험이 아닌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가 바라는 2026년은 명확하다. 성별과 지위가 방패나 무기가 되지 않는 세상, 누구라도 자신이 선 공간에서 온전한 안전을 보장받으며 일할 수 있는 일상을 꿈꾼다. 성폭력이라는 폭력 앞에 타인의 삶을 무너뜨린 가해자들은 진심으로 반성하고, 피해자에게 무릎 꿇어 사죄하며, 저지른 죄에 합당한 책임을 지는 당연한 상식이 통용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피해자들이 숨어 지내는 대신 일상을 당당히 회복하고, 나 또한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모든 곳에서 더는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어디서나 안전한 2026년을 간절히 기도하며 나의 2025년을 비로소 보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