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 친정엄마 생각하며 만든 보름나물 세 가지

설 연휴 사고로 참석하지 못한 친정엄마 3주기, 나물과 오곡밥으로 대신

by 유미래
정월 대보름에 만든 묵은 나물 세 가지와 미나리 전


설 연휴가 지난 2월 21일(토)은 친정엄마 3주기 기일이었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매년 기일에 남동생네와 우리 가족이 친정엄마가 혼자 사시던 강릉 집에 모여서 제사를 지냈다. 친정엄마가 3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엄마가 사시던 집은 팔지 않고 비워두고 있다. 부모님 생각하며 형제들이 돌아가며 관리하고 있고, 강릉에 한 번씩 내려가서 지내고 온다.

우리 집은 2남 1녀로 올해도 남동생 두 명과 올케, 조카들 그리고 우리 부부가 친정엄마 기일에 강릉에서 모이기로 하였다. 제사 음식은 삼 남매가 나누어서 만들어 가는데 나는 떡과 전을 준비해 가기로 했었다. 작년에는 절편 반말을 떡집에 주문해서 넉넉하게 준비해 제사상에 올리고 동생들이 갈 때 싸 주었는데 올해는 인절미를 할까 고민 중이었다.


친정엄마 3주기에 동생들도 만나고 오랜만에 친정집에 갈 생각으로 날짜 가길 기다렸는데 갑자기 설날에 속초에 여행 갔다가 큰 사고를 당했다. 사고로 얼굴을 많이 다쳐서 친정엄마 3주기에 참석하지 못해 지금까지 속상하다.

정월대보름, 친정엄마가 생각났다


친정엄마는 돌아가시기 전 인지가 조금 안 좋아서(장기요양등급 4등급) 맏딸인 우리 집에서 2년 정도 함께 살았다. 2년 동안 주야간보호센터를 복지관이라 부르며 즐겁게 다니셨다. 매주 수요일에는 노래 교실이 있어서 트롯을 좋아하는 엄마는 늘 수요일을 기다리셨다. 노래 교실이 있는 날에는 센터에서 앞에 나가서 마이크를 잡고 '청춘을 돌려다오' 등 현철 가수 노래를 즐겨 부르셨다.


인지는 조금 안 좋으셨지만 건강하다고 믿었었는데 2023년 2월 중순에 갑자기 호흡 곤란이 와서 병원에 입원하셨다. 입원 중에도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고 밤에도 주무시지 못해 기관지 내시경을 받다가 심정지가 와서 갑자기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늘 건강하셨기에 백 살까지도 우리 곁에 계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작별 인사도 못하고 갑자기 돌아가셨다. 부모는 자식이 효도할 때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내가 퇴직했기에 엄마를 잘 모시려고 했는데 그것마저 기회를 주지 않으셨다.


친정엄마는 우리 집에 올라오시기 전 건강할 때는 강릉에 혼자 사셨다. 주택이라 겨울에는 집이 추워서 매년 김장할 때쯤엔 맏딸인 우리 집에 올라오셔서 지내다 내려가셨다. 우리 집에서 약 4개월 정도 지내시다가 4월 초 벚꽃이 필 때쯤 내려가셨다. 엄마가 오시면 신용카드 하나와 비상금을 드리면 그때부터 나는 음식 만들기에서 해방되었다.


엄마는 음식 솜씨가 정말 좋았다. 김치도 뚝딱 쉽게 만드셨고, 손질이 많이 가는 나물도 귀찮다고 하지 않고 늘 밥상에 올려주셨다. 친정엄마가 오시면 우리 집 식탁은 한정식집 못지않게 다양한 음식으로 차려졌다. 그땐 퇴직 전이라 인천에서 서울로 출근하던 시기라 퇴근 시간이 되면 서둘러 퇴근하였다. 남편도 약속이 없는 날엔 일찍 들어왔다. 시장하겠다며 차려주신 저녁 밥은 정말 맛있어서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3월 3일이 정월대보름이다. 요즘 세시 풍속도 많이 퇴색되어 정월대보름을 챙기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나도 언제부터인지 챙기지 않고 그냥 지나치곤 하였다. 우리가 정월대보름에 먹는 음식에는 모두 이유가 있는데, 오곡밥은 한 해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고, 묵은 나물은 겨울철 부족한 영양을 채우기 위한 지혜였다. 부럼은 부스럼을 막고 이를 튼튼하게 하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정말 하나하나 조상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친정엄마는 정월대보름에는 나물과 오곡밥을 꼭 만들어주셔서 나물 만들기가 어려운 줄을 몰랐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정월대보름에 나물과 오곡밥을 만들어 먹지 않았다. 준비하는데 시간도 걸리고 번거롭기 때문이었다. 올해도 그냥 지나칠 뻔했는데 정월대보름이 다가오니 친정엄마가 생각났다. 친정엄마 3주기 제사에 가지 못한 서운함을 달래고 싶은 마음에 친정엄마 생각하며 보름나물과 오곡밥을 하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냉동실에 시래기 삶은 것과 토란대 삶은 것도 있어서 녹여서 볶기만 하면 된다.


우리 집에서 만든 정월대보름 나물과 오곡밥


지난 12월에 김장하려고 산 다발 무에 달린 무청을 남편이 베란다에 줄로 엮어서 매달아 두었다. 한 달 정도 바람맞으며 말렸더니 맛있는 무청 시래기가 되었다. 시래기를 물에 담갔다가 삶아서 겉껍질을 벗겨서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 오늘 꺼내서 볶았더니 부드럽고 맛있는 시래기나물이 되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말린 시래기

다음은 12월에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서 육개장을 만들려고 시골에서 농사지은 토란을 노점상에서 파는 어르신께 토란대 말린 것을 샀다. 토란대를 삶아서 반은 사용하고 반은 냉동실에 넣어둔 것을 꺼냈다. 토란대는 들깻가루를 넣고 볶으면 맛있다고 해서 볶아보았다.


나는 묵은 나물을 볶을 때 먼저 국간장과 마늘, 들기름으로 나물을 조물조물 주물러서 10분 정도 두었다가 프라이팬에 볶는다. 볶을 때 물이나 다시마 육수를 숟가락으로 조금씩 넣어서 볶으면 부드럽고 촉촉한 나물이 된다. 간이 조금 싱거우면 소금이나 참치 액젓으로 간을 하고 나물에 따라서 들깻가루와 썬 대파를 넣고 좀 더 볶다가 깻가루로 마무리한다. 이렇게 하면 간이 묵은 나물에 잘 스며들어 맛있다.


토란대 삶은 것

매년 봄에 햇고사리를 강원도에 사는 지인에서 주문해서 먹는다. 두 봉지를 사는데 한 봉지는 추석에 삶아서 먹고, 남은 것은 초겨울에 육개장 끓일 때 넣어서 먹었다. 남은 한 봉지는 설에 먹으려고 했는데 이번 설에는 여행 가느라 삶지 못해서 오늘 삶았다. 빼빼 마른 고사리가 삶으니 오동통하니 살이 올랐다. 양이 꽤 많아서 반은 보름나물로 만들고 반은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나중에 볶아서 삼겹살과 같이 먹으면 제주도에서 먹는 고사리 삼겹살처럼 먹을 수 있다.


마른 고사리 삶은 것

나물 세 가지가 완성되었다. 나물만 먹으면 조금 아쉬울 것 같아서 내가 잘 만드는 미나리 전도 부쳤다. 주말에 큰아들이 내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 오며 가져온 LA갈비 재워 놓은 것도 있어서 상이 더 풍성해질 것 같다.


주말에 마트에 갔더니 오곡밥 만드는 잡곡을 조금씩 비닐에 넣어 팔아서 사 왔다. 집에 찹쌀과 서리태(검정콩), 현미 등 잡곡이 있어서 추가로 넣고 소금도 조금 넣어서 압력솥에 오곡밥을 만들었다. 밥도 잘 되었다. 퇴직하고 내가 주부 9단이 된 것 같다. 요리에 취미를 붙이니 이제 나물도 잘 볶고 오곡밥도 잘한다.


오곡밥

오랜만에 정월대보름 나물과 오곡밥을 만들고 보니 남편과 둘이 먹기에는 양이 많았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시누이네를 불러서 같이 먹었다. 누이네도 친정엄마와 우리 집에서 자주 식사했기에 친정엄마 이야기하며 올해 정월대보름은 의미 있게 보냈다. 식사 중에 시누이가 사돈어른(친정엄마)이 생각난다며 말했다.


"사돈어른께서 음식을 정말 맛있게 잘하셨는데 보고 싶네요. 왜 그리 갑자기 떠나셨는지 모르겠어요."

"그러게요. 늘 이맘때 보름 나물해서 먹고 부럼도 깨물었었는데 옛날 이야기가 되었네요. "

"벌써 돌아가신 지 3년이나 되었지요?"

"네, 세월이 참 빠릅니다."


친정엄마 3주기 기일에 가지 못한 아쉬움을 정월대보름 나물과 오곡밥을 만들어 먹으며 조금 덜었다. 친정엄마는 늘 그리움이다. 친정엄마가 그곳에서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더불어 가족 모두 올 한 해 건강하고 안전하길 바란다. 다치고 보니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겠다. 이제부터 명절이나 가족 기념일 등도 잘 챙기면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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