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니 청소하기 좋고, 난방비 적게 나오고, 물건도 정리하고...
3월 들어서니 봄이 온 걸 느낀다. 길 가다 자세히 보면 봄까치꽃도 피어있고, 아파트 정원의 목련도 곧 꽃망울을 터트릴 것 같다. 우리 집 베란다에도 아가 손 같은 군자란 꽃대가 하루가 다르게 쑤욱 올라오고 있다. 이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봄을 기다리던 지난 6일에 귀한 초대를 받아서 다녀왔다.
요즘 이사해도 집에서 집들이 음식을 차려서 대접하는 분은 거의 없다. 이사 갔다고 초대하는 분도 많지 않지만, 가끔 이사한 분이 집 구경시켜 준다며 초대하면 식사는 밖에서(음식점) 먹고 집에서는 간단하게 차와 과일 정도를 대접받는다. 지난 주말에 이사 간 지인은 친하게 지내는 몇 명을 집으로 초대해 주었다.
이사한 은퇴 부부
지난 1월 말에 같은 아파트에 살던 지인이 다른 아파트로 이사 갔다. 집을 팔려고 내놓았는데 팔리지 않다가 2년 만에 팔렸다. 20년 동안 살았는데 이사 가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큰 평수 아파트가 부담되었기 때문이다. 나이 드니 큰 평수에 사는 것이 여러 가지 이유로 부담스럽다.
노후 재무 불안은 '목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매달 나갈 돈'을 통제하지 못할 때 시작됩니다.
-공무원연금지 3월호
남편 분은 2년 전 은퇴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노후 자금에 대한 상담을 받았단다. 큰 평수를 적절히 줄이는 게 좋겠다는 상담을 받고 집을 내놓았다고 한다. 쉬운 일이 아닌데 그 추진력에 감탄하였다. 하지만 집이 팔리지 않아 그동안 마음 앓이를 좀 했단다. 다행히 지난해 연말, 집이 팔려 1월 말에 이사를 했다.
나이 들면 대부분의 노인들은 '살던 익숙한 집'에서 살고 싶어 한다. 지인도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기 어려울 것 같다며 살던 아파트 단지 건너편에 있는 작은 아파트를 사서 이사했다. 지금 사는 곳은 지하철역이 있고, 주변에 종합병원도 있고, 가까운 곳에 근린공원도 있어서 운동하기도 좋다. 거기다 도서관도 가깝고, 노인 복지관도 10분 거리에 있기에 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주거 환경이다.
초대한 집에 도착하니 거실에 화분이 놓여있었다. 은퇴 후 반려 식물을 키우시며 행복하실 것 같았다. 식물들이 우리를 반겨주는 것 같아 자꾸 보게 되었다. 화분 앞에 놓인 늙은 호박도 참 정겨웠다. 소파도, 식탁도, 장식장도 모두 사용하시던 그대로였다. 침대 하나만 새로 샀단다. 손때가 묻은 가구도 역사가 보여서 반가웠다.
나이 들면 새것보다는 그동안 정이 들었던 물건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버리는 것보다는 다시 사용하는 것이 환경보호에도 좋고 경제적으로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사한 집도 지은 지 꽤 오래되었는데 리모델링이 다 되어 있어서 도배만 하고 이사했단다. 집이 정말 깨끗했다.
"집을 줄여서 이사하셨는데 답답하지 않으세요?"
"넓은 곳에서 살다 오니 처음에는 조금 답답했는데 지금은 정말 이사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사하시며 물건도 많이 정리하셨겠어요?"
"옷이랑 주방 기구, 책, 가구 등 정말 많이 버렸어요. 물건을 버리며 돈도 많이 들었어요. 이사하니 물건도 정리하고, 집이 작으니 청소하기도 편하고 정말 좋아요."
"집이 따뜻하네요."
"집을 줄이니 난방비가 줄었는데 따뜻하게 사는 것도 좋네요."
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도 더 나이 들기 전에 이사해야 할까 남편과 진지하게 의논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주말에 쌍둥이 손자가 오면 "할머니 집이 넓어서 우리 집과 바꾸고 싶어요."라고 말하지만, 손자들이 좀 더 크면 주말 육아도 멈출 거라서 생각해 봐야겠다.
정겨운 집들이 밥상
이날 집들이에서는 오랜만에 집에서 차린 음식을 먹었다. 함께 초대받아 가신 분들이 이렇게 집에서 식사하는 것이 오랜만이라며 입이 마르게 칭찬하였다. 평소에도 음식 잘하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다. 음식은 특별한 것은 아니고 나물과 직접 담근 각종 장아찌, 보쌈, 겉절이, 찰밥 등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다.
상에 모조지를 깔고 차리는 상이 정겹다. 오늘 초대한 지인은 작은 텃밭을 가꾸며 사는데 여름에 가끔 상추 등 쌈 채소를 나눠준다. 오늘 밥상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냉이된장국과 냉이 무침이었다. 작년 가을에 냉이 씨를 따서 비닐하우스에 뿌려놓았는데 겨우내 자라서 냉이가 많이 올라와서 집들이 전날 캐다가 다듬었단다. 다들 냉이 씨를 뿌렸다는 말에 놀란 표정이었다. 냉이 무침은 연하면서도 맛있었다.
요즘 설날 연휴에 다쳐서 치아 치료하느라 입맛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정말 잘 먹었다. 화려한 음식은 아닌데 나이 든 사람이면 모두 좋아하는 나물도 맛있었고, 알배기 배추로 만들었다는 겉절이도 입맛에 딱 맞았다. 오랜만에 배 부르게 먹었다. 거기다 밥 먹은 후에 나온 호박죽은 또 어찌나 맛있었는지 배가 부른데도 숟가락질을 멈출 수 없었다.
상을 대충 치우고 차 마시는 시간이 되었다. 늘 모임에 보이차를 끓여 오는데 오늘도 앙증맞은 찻잔에 보이차를 가득 따라 주셨다. 식사도 맛있게 했는데 마무리 차까지 완벽한 식사 코스였다.
요즘 집에 사람을 초대하는 일은 쉽지 않다. 거기다 집에서 음식을 차리는 일은 더 힘들다. 이렇게 준비하려면 몇 날 며칠을 준비하셨을 거다. 초대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어렵다. 정말 초대를 받아 간 분들 모두 그 따뜻한 마음에, 그 정성에 감동하였다. 농담으로 "배불러서 집에 못 가니 한잠 자고 저녁까지 먹고 가야겠다."라고 말해서 웃음바다가 되었다.
모진 세월 가고 아 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오늘 집들이를 다녀오며 박경리 선생님의 <옛날의 그 집> 시가 생각나는 것은 나도 이제 나이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리라. 은퇴하신 두 분이 새집에서 건강하고 안전하게 오래오래 행복하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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