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유쾌한 착각 여왕>(유혜연 지음)을 읽고
살다 보니 알았다.
반짝이던 젊음의 시간뿐 아니라
중년에서 노년으로 건너가는 지금의 시간도
더없이 빛나고 소중하다는 것을
퇴직 후에 하고 싶은 일 하며 사는 요즘, 어쩜 내 마음과 딱 맞는 이야기를 할까? 나도 노년으로 건너가고 있는 요즘 시간이 더없이 빛나고 소중하단 생각을 한다. 이런 시기에 내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만났다. 표지만 봐도 신나고, 제목에서도 유쾌함이 뚝뚝 떨어지는 책이다. 보고만 있어도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유쾌한 착각 여왕>(2026년 2월 출간)은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유혜연 작가(브런치 연글연글 작가님)의 첫 번째 책이다. 문장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어서 책장을 자꾸 넘기게 된다. '낭만 없는 밴댕이, 아끼다 똥 된다, 팔랑귀 남편의 건강 소동, 할머니에게 '롤렉스' 사 준 손녀, 글 쓰는 배꼽' 등 목차의 제목만 보아도 얼마나 유쾌한 책인지 짐작할 수 있다.
'폭삭 속았수다' 관식이 같은 남편일 거란 착각
'낭만 없는 밴댕이라니 이거 우리 남편 이야기 아니야?'라며 읽다 보니 은퇴 부부 이야기는 꼭 우리 부부 이야기 같았다. 퇴직하고 은퇴 부부로 사는 저자는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남편과 같은 공간에서 온종일 붙어 지내다 보니 사사건건 부딪히게 되었다. 그래서 '떨어지는 시간', 즉 남편과 '평화의 간격'을 만들었다.
운동은 남편 혼자 다니고, 장 보러만 함께 간다. 리모컨 전쟁을 막기 위해 TV를 하나 더 구입하고, 다른 잠버릇으로 오랫동안 이어진 이불 전쟁 끝에 침대를 트윈으로 바꾸었다. 식성이 달라 점심 한 끼만 마주 앉아 먹는 등 평화를 위해 현명한 타협을 하였다.
이제 내게 '만 원'은 젊은 날의 만 원보다 훨씬 무겁다. 작은 금전의 씨앗이 모여 커피가 되고, 새 옷이 되고, 손녀의 선물이 된다. 그래서 중년 이후의 경제 활동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다.
책을 읽으며 저자와 생각이 같아서 공감되었다. 퇴직하고 아무 일도 안 하겠다는 남편과 달리 저자는 할 수 있는 한 경제 활동을 하고 싶다고 한다. 우리 집도 연금으로 살기에 '새는 돈'을 막으려고 노력하지만, 쓸 돈은 써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려면 퇴직 후에도 완전하게 은퇴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은 할머니로 살아가고 싶어 한다. 나 역시 그렇다. 퇴직하고 시민 기자로 활동하고 있고, 노인 일자리에도 도전하는 나처럼 저자는 '경제 활동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라고 한다. 저자는 이처럼 달라도 너무 다른 남편이지만, 나이 들면 남편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잘 맞추어 살기로 했단다.
손주 육아는 잘할 자신 있다는 착각
결혼하지 않고 살 거라는 큰딸이 어느 날 좋아하는 직장 선배가 생겼다며 데려와 인사를 시켰다. 20대에 결혼한 큰딸은 결혼 17개월 만에 자기와 똑 닮은 '판박이'를 품에 안았다. 우리 집도 독신주의라던 작은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닌 지 1년 만인 스물일곱 살에 결혼하여 쌍둥이 손자를 낳았다.
저자는 50대 후반에 할머니가 된 나보다 더 젊은 나이인 오십 대 초반에 할머니가 되었다. 손자 돌보는 일쯤은 '누워서 떡 먹기'라며 선뜻 손녀 육아를 자청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사랑은 사랑이고, 기쁨은 기쁨일 뿐, 감동과 현실은 별개였기에 나와 작은딸은 "에엥" 소리에 늘 대기 상태로 있어야 하고, 낮잠조차 안고 재워야 하며, 새벽 여섯 시면 눈을 번쩍 뜨는 손녀의 24시간에 맞춰 돌아가는 맞춤 인간이 되어갔다.
나도 쌍둥이 손자 5개월부터 주말육아 했기에 손주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안다. 저자는 주중에 손녀를 돌보았으니 유치원에 가기 전에는 24시간을 함께 보냈기에 그 수고가 느껴졌다. 그것도 9년이나 손녀 육아를 했다니 정말 최고의 할머니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손녀를 키우며 '넘치는 사랑이 때로는 잘못된 사랑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손주 훈육은 어렵다. 대부분의 할머니는 훈육보다는 넘치는 사랑으로 키운다. 나 역시 손자들이 위험한 행동을 할 때를 제외하곤 다 받아주는 편이다.
엄마 아빠 앞에서는 스스로 밥도 먹고 옷도 입는데 할머니 앞에만 오면 아기가 되는 쌍둥이 손자를 보며 저자의 마음이 이해되고 공감되었다. 조부모 육아는 쉽지 않지만, 손주가 주는 행복은 힘듦을 이긴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공감한다.
저자와 나는 닮은 점이 참 많다. 저자는 손녀가 만들어준 은박지 트로피를 보며 손녀에게 멋진 할머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며 작가의 꿈을 꾸고 출간까지 하게 되었다. 나도 쌍둥이 손자가 자기들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 달라고 해서 작년에 <주말마다 손주 육아하는 할머니>를 출간했다.
인생이 내 뜻대로 될 거란 착각
남편의 명석한 두뇌와 꾸준한 엉덩이의 힘, 그리고 나의 '간헐적 영재성'을 적절히 배합하면 그야말로 완벽한 조합이 될 거라 굳게 믿었다.(중략)
인생은 계산기만 두드리면 원하는 결과가 나올 거라는 착각의 연속이었다. 현실은 냉혹한 '유전자의 믹스매치 실패'. 아이에게는 하필이면 나의 가장 큰 단점인 부족한 지구력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완벽을 꿈꿨지만, 인생이란 게 원래 뜻대로 계획한 대로 호락호락 흘러가지 않는다. 저자는 완벽을 꿈꿨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은 울퉁불퉁한 지금의 현실이 더 재미있다고 한다. 나 역시 그렇다. 가족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살았던 시간이 소중하고 행복하다.
저자는 '힘들었던 손녀 육아였지만, 그 순간들은 내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라고 말한다. 태어나면서 9년 동안 돌보던 손녀가 미국으로 이민 가며 헤어졌으니 그 상실감을 어떻게 이겼을까? 손녀와의 이별로 저자는 '현모양처'의 꿈 대신 '글 쓰는 할머니'가 되었다. 이제 유쾌한 할머니를 꿈꾼다.
독자 여러분,
너무 힘들게, 너무 완벽하게 살려고 애쓰지 마세요. 조금은 우습고, 조금은 가볍고, 조금은 뻔뻔한 착각 하나쯤 품어도 괜찮습니다.
살면서 누구나 '착각' 몇 개는 품고 산다. 나 역시 그렇다. 가끔은 그 '착각' 덕분에 '힘듦'도 이길 수 있다. 이 책을 읽으시는 분들도 '작은 착각' 하나 가슴에 슬쩍 얹고 '유쾌한 착각 여왕'으로 사시길 응원한다.
이 책은 은퇴 부부 이야기, 손녀 육아, 가족 이야기, 유쾌한 할머니를 꿈꾸는 저자 이야기지만, 읽으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거다. 책을 읽으며 나를 돌아보게 되고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귀한 시간이 될 거다.
*오마이뉴스 책동네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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