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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Oct 03. 2023

(서평)이숲오 작가님의 장편소설 '꿈꾸는 낭송 공작소'

소년과 노인의 아름다운 낭송 이야기


브런치 이웃인 이숲오 작가님의 두 번째 장편 소설이다. 8월 초에 출간하셨는데 이제야 서평을 쓴다. 작가님은 시낭송이라는 독특한 주제로 글을 쓰셨다. 책을 읽다 보면 이숲오 작가님이 아니면 시 낭송을 주제로 글을 쓰실 이 없을 듯했다. 실제로 시낭송 유튜브를 운영하시고, 보이스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시는 분이라 딱 맞춤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이지만 에세이 같고, 시 낭송 강의 같기도 했다. 나는 시낭송에 관심이 많기에 한 편의 시 낭송 강의를 듣는 것처럼 흥미롭게 느껴졌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가슴에 새기며 읽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글 속에 자주 풍덩 빠졌다.


대학을 중퇴하고 시낭송 거리공연을 하는 소년이 노인을 만난 것은 어쩜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두 사람의 만남은 표지 그림처럼 마치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정답다. 첫 만남에서 노인은 소년에게

"자네는 왜 시 낭송인가?"

라고 묻는다.


노인은 한 때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의 시 낭송가였으니, 시낭송을 하는 소년에게 이보다 더 좋은 만남은 없다고 생각한다. 소년은 노인에게 시 낭송에 대한 궁금증을 물어보지만, 노인은 한 번도 직답을 해 주지 않는다. 다만 소년에게 질문을 하여 스스로 답을 찾도록 시간만 허락할 뿐이었다.



소년과 노인의 대화를 통해 시낭송에 관심이 있는 나도 시낭송의 세계에 빠지게 되었다. 시낭송 대회에 참여해보지 못했지만, 몇 번의 시 낭송을 하였다. 후배 교사의 시집 출판 기념회에서도 부탁을 받아 낭송을 하였다. 교회 행사 때도 자작시를 낭송하였다. 어린이날에, 졸업식에서도 시 낭송을 하였다.


그럴 때마다 녹음하여 들어보며 반복 연습을 하였었다. 하지만 낭송 후에는 늘 부족함이 느껴졌다. 그러며 시 낭송 공부를 하고 싶었다. 노인은 한 달에 두 번 시민 문화 아카데미 시 낭송반 수업을 진행하였다. 나도 노인이 강의하는 시 낭송 수업반을 수강하고 싶었다.


소년은 노인에게 늘 궁금한 것을 질문한다.

"시를 낭송할 때, 시인의 마음이나 입장이 되어야 하나요?"
"왜 그래야 하나?"
"그러면 낭송을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네."
"그럼 시를 잘못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자네가 말하는 잘 전달하는 낭송이란 게 뭔가?"
"시인이 말하려는 의도를 파악해서 알맞은 소리로 청자에게 듣기 좋게 전달하는 겁니다."

(중략)

"자네는 고급 요리를 앞에 두고 주방장의 의도를 고민하진 않잖아."


소년은 시낭송 대회에 나가려고 준비한다. 시 낭송 모임에서 시치미 모임의 리더를 만난다. 어쩌면 시치미 리더가 이숲오 작가님 본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선을 통과해서 본선대회를 준비한다. 본선 대회는 시 낭독과 시 낭송 두 부분을 심사하기에 두 가지를 준비해야 한다.


소년은 낭송과 낭독의 차이가 단지 암송 유무가 아닐까 막연하게 추측하였다. 하지만 낭독과 낭송의 차이는 시선에 있다고 한다. 낭독은 시선이 텍스트에 있는 반면 낭송은 청중을 향해 있는 거란다. 단순히 외향적 차이뿐 아니라 서로가 지향하는  방향을 가리킨다. 낭독은 독백의 언어이나 낭송은 선언의 언어, 고백의 언어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다르다고 한다.


낭송으로 누군가의 가슴을 움직이려면 검정이 아닌 감성으로 열어야 한단다. 소년은 시 낭송대회 본선을 준비하며 많은 고민을 한다. 노인을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나름대로 마음이 정리된다. 소설의 주제가 시 낭송이지만, 노인에게서 인생의 지침을 배운다. 소설을 읽는 나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인생 지침을 얻었다.

 

소년이 노인 앞에서 낭송한 시를 읊었다. 듣고 있던 노인은


"낭송은 연설도 아니고 강연도 아니지. 무엇을 설명하려고 애써도 안 되고 무엇을 가르치려고 해서도 안 된다네. 낭송자가 청자와 교감하려는 의지와 소통의 리듬을 놓치게 되면 균형이 깨지면서 위압감을 주며 그런 부적용이 드러나게 되는 걸세."

(중략)

노인은 기교와 기술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어긋난 뼈들이 제자리를 잡은 듯 찌뿌둥했던 감성과 열정이 기자개를 켜고 있었다.


소년은 시 낭송 대회에 참가하지만, 결과는 알 수 없다. 작가는 대회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준비 과정에서  낭송과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알려줄 뿐이다. 물론 좋은 결과를 얻었으리라 생각한다. 폐암에 걸린 노인은 소년과 인사도 없이 구름 채집가인 작가처럼 구름처럼 굴러 사라진다. 어쩜 공기 좋은 시골에서 또 다른 소년을 만나 시 낭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겠다.


소설은 큰 갈등도 클라이맥스도 없다. 그저 잔잔하게 흐르는 시냇물처럼 고요하다. 하지만 잔잔한 시냇물 속에서 자신과의 싸움은 늘 일어난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고요해질 뿐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주인공 소년처럼 작가는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기를 꿈꾼다. 내가 은퇴 후 시 낭송을 꿈꾸듯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면 행복하 것 같다. 소설을 덮으며 내 마음도 편안하다. 어느 날 도시의 공원에서 시낭송 버스킹을 하는 소년을 만날 것만 같다.


10월 말에 추모시 낭송이 계획되어 있어서 걱정이 많았는데, 소설은 나에게

"걱정하지 말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편안하게 감성으로 낭송하렴."

고 위안을 주는 것 같았다. 걱정이 구름 따라 사라졌다. 오랜만에 마음이 따뜻한 소설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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