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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Oct 22. 2023

서울교대인 추모 음악회에서 추모시를 낭송했다

추모시

토요일인 어제 모교인 서울교대에서 '교대인 추모 음악회'가 있었다. 매년 10월 셋째 토요일에 '서울교대 어울마당'이 축제처럼 개최되어 선후배 간에 화합의 자리가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3년 정도 개최하지 못했다. 올해는 서울교대 동문인 서이초 교사와 다른 교사 2명이 하늘의 별이 되어 추모 음악회로 진행되었다.


10월 동문 회보에 내 추모시가 실렸는데, 오늘 추모 음악제에서 낭송을 부탁받았다. 틈틈이 낭송 연습을 하였다. 나는 낭송을 배우지 않았다. 교장일 때 매달 학생들에게 방송으로 책 읽어주기를 하면서 낭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유튜브에서 낭송 영상을 보면서 감정을 잡아 연습하였다. 녹음하여 들어보며 1주일 동안 연습하였다. 내 목소리는 똑똑 끊어져 귀에는 쏙쏙 들어오지만, 부드러움을 추가하면 좋을 것 같았다. 내가 쓴 시를 낭송하는 거라서 그런대로 감정이 잡혔다. 올해 기간제 교사가 끝나면 낭송과 낭독을 정식으로 배워보고 싶다.


진행팀에서 리허설이 있다고 8시 30분까지 오라고 했다. 출근하는 것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준비했다. 가족도 참석할 수 있는 자리라서 남편도 함께 가기로 해서 마음이 든든했다. 함께 가서 시 낭송할 때 동영상도 찍어 달라고 했다.


비예보를 확인하지 않았는데 비가 많이 내렸다. 하늘도 함께 슬퍼해주는 것 같아 내리는 비가 야속하지 않았다. 아침 시간이라서 도로도 막히지 않았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주차하고 행사장으로 갔다. 벌써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리허설 차례를 기다리며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드디어 10시가 되어 음악회가 시작되었다. 오늘 음악회에는 교대 동문과 가족이 함께 하는 자리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과 몇 분의 내빈도 참석하였다. 기자도 오고 녹화도 하였다. 500여 명이 참석한 큰 행사에서 낭송을 하게 되어 긴장이 되었다. 한편 생각하면 영광된 자리이다.


국민의례와 묵념 다음에 추모시 낭송을 하였다  다행히 떨지 않고 감정을 잡아서 잘했다. 마지막 연에서 울컥했지만, 잘 마치고 내려왔다. 남편이 잘했다고 한다. 큰 무대에서 낭송한 것이 처음인데 실수하지 않아서 안심이 되었다.


남편에게 동영상을 찍어 달라고 했는데 잊어버리고 못 찍었다고 하였다. 서운했지만 하는 수 없다. 끝나고 알아보니, 본부에서 녹화했다고 나중에 영상을 보내준다고 한다. 다행이다. 브런치에 영상을 올려드리려고 했는데 아쉽다.


개회식 후에 추모 음악회가 진행되었다. 음악회 출연자는 초등교사가 많았고, 중등교사와 교수님도 있었다. 모두 수준 높은 프로그램이었다. 교사들 중에 재주 있는 분이 많음이 자랑스러웠다. 특히 살풀이 춤을 보며 하늘나라에 간 후배 교사들이 이생의 슬픔은 모두 잊고 새처럼 훨훨 날아 저 생에서 잘 지냈으면 좋겠다. 풀이 춤이 끝날 때까지 아름다움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추모 음악회는 1부와 2부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남편과 오랜만에 함께 음악회를 관람하였다. 추모 음악회라 먼저 떠난 후배들을 위한 자리였지만, 참석한 우리도 위로를 받았다. 떠나신 선생님과 오케스트라를 함께 하던 동료 선생님들이 악기를 연주해 주고, 퇴직 선배님들이 합창단을 만들어 노래를 불러 주었다. 국악과 악기연주, 독창, 합창, 아카펠라 등등 다양하게 행되었다.


2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오랜만에 후배도 만나고 선배도 만났다. 다행히 낭송이  감동적이었다고 여러 분이 말씀해 주셔서 걱정을 덜었다. 밖으로 나오니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하늘이 높고 푸르렀다. 음악회를 통해 세상을 떠난 후배들이 위로를 받고 편안히 잠들길 기도한다.


점심을 먹고 남편은 오후에 초등 동창 모임이 있어 여의도에서 내렸다. '집으로' 가자고 네비에게 말하고 출발하였다. 퇴직 전에 남편이 여의도에 근무해서 자주 왔었는데, 퇴직한 후에 올 일이 없어 오랜만에 왔다. 길이 낯설어졌다. 네비가 국회의사당 앞에서 지하도로 가라고 해서 어갔더니 처음 가는 길이었다. 들어서는 순간 아차했다. 신월 여의 지하차도였다.


전을 오래 했지만, 처음 가는 길은 늘 두렵다. 지하차도가 어찌나 긴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7.5킬로 미터라고 한다. 2,600원을 내고 신월 IC에서 끝났다. 올림픽도로로 왔으면 아는 길이라 편한데, 결국 경인고속도로와 외곽순환도로로 돌아서 도착했다. 네비는 꼭 요금 내는 도로로 안내한다. 네비가 밉다. 그래도 오는 길에 가을 단풍구경도 하고 좋았다.


오늘은 오래오래 기억되는 날이 될 거다. 추모 음악회에서 낭송한 일, 남편과 함께 음악회에 간 일, 처음으로 신월 여의 지하차도를 통과한 일 등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일이 많은 날이다. 나에겐 의미 있는 하루였다. 그래도 모두 행복함으로 기억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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