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냉장고에 매실액을 쟁여두고 살았다. 매실액은 반찬 할 때 새콤달콤한 맛을 내고 싶을 때 넣었다. 가끔 소화가 안 되거나 배탈이 날 때는 원액을 따라서 조금 마셨다. 시원한 음료수가 생각날 때는 얼음을 동동 띄워서 마셨다. 파김치 등 김치를 담글 때도 넣었고, 삼겹살 먹을 때 파채에도 넣어서 만들었다.
그날도 요리하다가 매실액을 넣으려고 냉장고를 열었는데 매실액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연말에 김장할 때 남은 것을 다 넣었던 것이 생각났다. 갑자기 매실액을 어디서 사야 할지 캄캄해졌다.
그동안 매실액은 늘 친정엄마가 담가 주셨다. 6월쯤에 매실을 사서 항아리에 설탕과 함께 넣어 비닐로 입구를 꽁꽁 싸매고 뚜껑을 덮어 부엌 그늘진 곳에 놓아두었다. 매실액은 100일이 지난 후에 꺼내서 매실은 장아찌로 만들고 매실액은 페트병에 넣어서 보관하셨다.
자식들이 집에 가면 몇 병씩 주셨다. 잘 익은 매실액이 정말 맛있었다. 가져온 매실액은 사용하기 좋게 작은 페트병에 나누어 담아 두었다가 사용했다. 먹다가 떨어지면 친정엄마가 또 주셔서 늘 매실액이 떨어진 적이 없었다.매실액이 떨어진 걸 보며 친정엄마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알겠다. 더불어 그동안 내가 얼마나 편하게 걱정 없이 살았는지 느꼈다.
매실액을 만들어 주시던 친정엄마가 작년 봄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에 인지가 나빠지셔서 큰 딸인 우리 집에 오셔서 18개월을 함께 살았다. 후회된다. 엄마가 우리 집에 계실 때 매실액 만드는 법을 배웠으면 좋았을 걸 그땐 그 생각을 못 했다. 엄마가 오래오래 내 곁에 계실 줄 알았다. 그렇게 갑자기 떠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 그때는 엄마가 담가 주신 매실액이 남아 있어서 담글 생각을안 했을 거다.
주문한 매실액과 매실 장아찌
매실액을 어디서 사야 하나 걱정하고 있는데 내 마음을 알았는지 홈쇼핑에서 매실액을 방송했다. 함께 방송에 나오신 홍쌍리 매실 장인님이 왠지 친정엄마가 보내주신 분처럼 반가웠다. 60년 동안 매실만 연구하신 매실 장인이라고 하셨다. 믿음이 가서 방송을 보다가 매실액을 주문했다.
주문한 상품이 도착했다. 매실액 네 병과 매실장아찌, 고추장 매실장아찌, 매실 고추장, 매실 된장 등이다. 어찌나 반가운지 택배를 풀자마자 매실액 병을 따서 컵에 얼음을 넣고 매실 주스를 만들어 마셨다. 엄마가 만들어주신 맛과 다른 맛이었지만, 진한 맛이 느껴졌다.
보통 매실액은 매실과 설탕을 1:1로 버무려서 용기에 담아서 100일 정도 두었다가 거르는데, 홍쌍리 매실액은 매실 1, 설탕 0.5, 올리고당 0.5로 담근다고 한다. 색깔도 일반 매실액보다 진하다. 건강에도 좋다고 하니 자주 먹어야겠다.
친구가 준 종균으로 만든 수제 요플레
지난번 친구 모임에 갔을 때 한 친구가 요플레 만드는 종균을 작은 통에 담아 나눠 주었다. 모임 끝나고 들어오며 슈퍼에서 900ml 흰 우유를 사 왔다. 우유 팩에 친구가 준 종균을 넣고 나무 수저로 저은 후에 싱크대 위에 하루 두었더니 정말 차진 요플레가 만들어졌다. 요플레에 매실액을 넣어 보았더니 정말 맛있었다. 매일 먹으면 소화도 잘되고 변비에도 효과가 크다고 하니 하루에 한 번씩 매일 먹으려고 한다. 이제 요플레도 우유만 사면 만들 수 있으니 잊지 말고 매일 먹으며 건강도 챙겨야겠다.
매실액과 함께 배달된 매실장아찌 맛이 어떨까 궁금했다. 오늘 점심은 남은 밥으로 집에서 만든 수제 누룽지를 끓여서 매실장아찌와 먹었다. 아삭아삭한 맛이 입맛을 돋워주었다. 친정엄마가 계셨다면 맛있게 드셨을 거다. 왜 그리 갑자기 떠나셨는지 야속하다.
삼겹살과 함께 먹은 매실 장아찌
주말이라 작은아들이 쌍둥이 손자를 데리고 왔다. 늘 주말이면 우리 집에서 손자를 돌봐주기에 특별한 일은 아니다. 저녁에는 미리 사다 놓은 삼겹살을 구워서 먹었다. 매실액을 넣어서 파채를 무치고, 매실장아찌를 꺼내서 먹었다. 상큼한 맛이 고기의 기름진 맛을 덮어주어 정말 맛있었다. 거기다가 묵은지도 구워서 같이 먹으니 다른 반찬이 필요 없었다.
이번 주는 정말 추웠다. 거의 영하 20도까지 내려갔다. 꽁꽁 얼었던 마음이 녹는 것 같았다. 쌍둥이 손자도 고기가 맛있다고 한다.쌍둥이 손자가
"왕할머니 언제 오세요?"
라고 묻는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망설인다. 마음속으로만
'나도 왕할머니가 한 번이라도 다시 오셨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며 먹먹한 가슴을 달래 본다. 쌍둥이 손자가 아직 왕할머니를 기억해 주어 고맙다.
"엄마 없이도 이렇게 잘살고 있으니 내 걱정하지 마시고 그곳에서 편히 지내세요."
요리하는 걸 좋아하셨던 친정엄마
떨어진 매실액이 친정엄마를 기억하게 해 주었다. 앞으로도 친정엄마는 늘 내 곁에서 부족함을 도와주고 용기도 북돋워 주리리 믿는다. 친정엄마가 옆에 계시다고 생각하니 마음만이라도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