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저녁에 강릉 친정집에 도착하였다. 비어 있는 집이지만, 큰 동생네가 깨끗하게 정리하고 올라가서 크게 손댈 곳은 없었다. 마당에 주인대신 집을 지켜준 풀들이 무성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풀을 뽑았다.
키가 큰 풀은 어찌나 깊이 자리 잡았는지 손으로 뽑히지 않아서 결국 잘라 주었다. 풀을 뽑는데 개미가 정말 많아서 이 개미들이 다 어디로 갈까 걱정이 되었다. 작은 보도블록 틈에서도 살겠다고 나온 풀들을 뽑으며 미안하게 생각해야 할 것도 같았다. 뽑은 풀과 나뭇가지 등을 정리해서 종량제 봉투에 넣으니 세 봉지나 되었다.
풀을 뽑고 마당을 쓸고 정리하니, 마치 이발하고 온 것처럼 깔끔해졌다. 쓰레기 버리는 곳에 올려다 놓고 오니 머리가 다 젖었다. 마당의 풀 뽑는 일도 이렇게 힘든데 텃밭 가꾸시고 전원주택 관리하시는 분은 매일 이런 일을 하실 텐데 수고가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깨끗하게 정리하고 나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
강릉에 왔으니 어디에 갈까 생각하다가 경포 바다도 좋겠지만, 신록의 계절이니 '강릉솔향수목원'에 가면 좋을 것 같았다. 강릉은 좋은 곳이 많지만, 언제부터인지 강릉에 오면 솔향수목원에 가보고 싶었다.
강릉솔향수목원은 구정면에 위치하고 있다. 천년의 기다림이 있는 천년숨결치유의 길, 금강소나무를 품고 있는 솔숲광장, 다양한 야생화를 주제로 한 비비추원, 원추리원, 약용식물원, 염료식물원 등 계절별로 변화하는 다양한 풍경을 관람할 수 있는 전시원을 갖추고 있다. 그중 자생 수종인 금강송이 쭉쭉 뻗은 ‘천년숨결 치유의 길’이 수목원을 대표하는 산책 코스다.
자연의 숲을 그대로 살린 점도 좋았다. 계곡을 따라 산책로를 걸으며 주변의 다양한 식물도 관찰할 수 있고 이름 그대로 소나무 숲 길을 걸으면 저절로 건강해지는 것 같다. 초여름이라 수국도 피어있고, 노란 솔잎금계곡 자그레브가 예쁘게 피어있었다.
무장애 순환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어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도 단체로 왔는지 많았다. 휠체어를 타고 산책로를 따라다니다 보면 예쁜 꽃구경도 하고 좋을 것 같다. 얕은 계곡에서는 아이들이 즐겁게 물장난을 치고 있었다. 노는 아이들을 보니 쌍둥이 손자가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가 참 더웠다. 선글라스와 양산을 쓰고 걷다가 솔숲 광장에서 물을 마시고 쉬면서 여유를 즐겨보았다.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비비추원에서 다양한 비비추를 보며 비비추 종류가 엄청 많음을 알았다.
수목원은 계절별로 다양한 식물을 볼 수 있다고 하니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 들러도 좋겠다. 넓은 수목원을 가꾸려면 예산도 많이 들 텐데 입장료도 무료이다. 강릉시에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수목원 입구에는 밤나무가 참 많았다. 밤나무꽃은 늘 멀리서 보았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다. 국수처럼 늘어진 밤나무꽃이 참 멋있었다. 솔밭 쉼터에서 소풍 나온 가족들이 도시락을 먹으며 앉아있는 모습도 참 행복해 보였다.다음에 강릉에 오면 솔향수목원에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강릉솔향수목원
강릉에 가면 늘 방문하는 수릿골 추어탕에서 섭추어탕을 먹고 가까이에 있는 선교장으로 갔다. 선교장은 효령대군의 11대 손 이내번이 처음 이거 하여 살던 집으로 대궐밖 조선 제일 큰 집으로 일컬어진 곳이다.
선교장은 나와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지금처럼 리모델링하여 일반인에게 입장료를 받기 전에 선교장 옆에서 살았다. 기억에 지금 박물관 자리부터 그 옆으로 초가집이 세 채가 있었는데 가운데 집이 외갓집이었다. 우물이 있어서 늘 우물에서 음식거리도 씻고 빨래도 빨았었다.
그곳에서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살았다. 그 당시 선교장에는 할머니 한 분이 살고 계셔서 옆 집에 사는 친구와 가끔 말동무도 해드렸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아들과 며느리가 오면서 선교장을 리모델링하여 지금처럼 개관하게 되었다.
활래정에서는 가끔 영화도 촬영하여 구경도 하였었는데 세월이 흘러 다시 가보니 감회가 새롭다. 이번 주는 현충일과 징검다리 연휴로 금요일에 연차를 쓰고 여행 오신 분이 많은지 금요일인데도 관람객이 많았다. 선교장 잔디 마당에서는 굴렁쇠도 굴리고 투호를 하는 외국인과 아이들이 즐거워 보였다.
선교장을 한 바퀴 돌고 박물관을 구경하고 의자에 앉아서 쉬다가 나왔다. 이곳에서는 한옥 스테이도 가능하다고 한다. 한옥에서 숙박하며 지내도 좋겠다. 시간을 넉넉히 잡아서 선교장 둘레길인 청룡길과 백호길 산책로를 한 바퀴 걸어도 좋을 듯하다.
너무나 익숙한 선교장이었는데 오랜만에 오니 새로운 곳처럼 느껴졌다. 활래정 연못에 있는 배롱나무에 올라 달빛 받으며 놀았던 곳, 안채에서 나오려면 댓돌 위에 커다란 뱀이 누워 있기도 했던 고택이 지금은 참 어색했다.
선교장 주변 초가집에 사시던 어르신들은 모두 어디로 가셨을까. 친구 부모님도, 이모도 모두 이 세상을 떠나셨다. 10대의 우리가 60대가 되었으니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선교장이 오래오래 많은 사람들이 찾는 문화재로 잘 보존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