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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난 이말이 참 좋다

(서평)《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박완서 에세이를 읽고

by 유미래
자연과 사물과 인간에 대한 애정, 사회에 대한 솔직하고 예리한 통찰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삶에 대한 겸손과 용기를 가르쳐 준다. 때로는 눈물겹고 때로는 미소를 떠올리게 하는 유익하고도 재미있는 글의 힘! 긴 시간을 거슬러 다시 펴내는 이 희망의 이야기들이 더 많이 읽힐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이해인 수녀님 '추천사' 중


박완서 작가님 에세이를 다시 읽었다. 가을에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얼마 전에 교회에서 알뜰 바자회가 있어서 책을 기부하려고 정리하던 중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책을 발견하고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에 꺼냈다. 에세이라서 가볍게 읽어도 되지만, 3일 동안 꾹꾹 눌러서 정독하였다.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가슴이 설레었고 궁금했다.


박완서 에세이 책 표지(세계사 출판)

내가 살아온 시대를 추억하며 읽은 책


이 책에는 1970년대부터 90년대에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비롯해 제목부터가 정겹고 다정한 46편의 글들이 실렸다. 지금 다시 읽어보아도 불후의 명작이 아닐 수 없다. 작가의 눈길이 닿고 생각이 머물러 있던 당시의 사건과 상황, 주제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세심한 기록을 통해 30여 년간 우리 사회가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2024년 1월 출간)는 2002년 출간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재편집하여 출간한 책이다. 세 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눈에 안 보일 뿐 있기는 있는 것,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다.


글을 읽으면 박완서 작가님이 마치 옆에서 이야기하듯 정겹다. 일상의 평범한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나게 풀어내시다니, 어떻게 글을 이렇게 다정하게 쓸 수 있는지 감동이 되어 박완서 작가님 에세이를 읽으며 그동안 내가 쓴 에세이가 어린아이 글처럼 느껴졌다. 글쓰기 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그 여러 권보다 글쓰기의 길을 알려주는 귀중한 책이 되었다. 아마 나는 이 책을 여러 번 읽으며 글쓰기 교과서로 삼을 거다.


이 책에는 1970년부터의 시대상도 잘 반영되어 그 시대를 살아온 나에겐 추억을 불러주는 글이 되었다. 1970년대에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학생이었으며, 2년 제 교대생이었다. 80년대에는 교사로 살았고, 90년대에는 두 아들의 엄마로 살았기에 시대상을 반영한 박완서 작가님 에세이가 공감되어 읽으며 그 시절을 추억하였다.


마음이 시리고 헛헛할 때 찾아갈 곳이 있다는 건


작가님은 음식을 가린다든지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못 잔다든가 하는 까다로운 성질은 아니지만, 친구나 친척 집에 묵는 일을 적극 피하고 있다. 심지어 딸네 집에서도 여간해서는 자는 일이 없으시다. 폐 끼치는 일이 싫으시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부산에 있는 베네딕도 수녀원은 고향과 같은 곳이라 해마다 며칠이라고 묵고 와야 마음이 개운해지는 버릇이 생겼다.


외동아들을 하늘나라에 먼저 보내고 가장 힘들었을 때 이해인 수녀님께서 수녀원에 편히 쉴 만한 방이 하나 있으니 언제라도 오라는 고마운 말씀을 듣고 언덕 방의 손님이 되었다. 작가님은 손님을 가장 불편하게 하는 것은 지나친 공경과 관심이라고 하셨다. 그러며 수녀원의 사랑방이 좋은 이유가 적당한 무관심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 말씀이 마음에 깊이 다가왔다.


박완서 작가님과 이해인 수녀님과의 인연이 참 귀하다. 수녀님 같은 분이 옆에 있으면 얼마나 든든할까 부럽기까지 하였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비워두고 있는 친정집이 있다. 힘들 때 작가님이 수녀원 사랑방에 가서 며칠 지내고 오셨듯이 나도 마음이 시리고 헛헛할 때 엄마집에 가서 쉬고 오리라 마음먹어본다.


박완서 작가님은 이북에서 태어났다. 아버님이 세 살 때 돌아가셔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어머님이 오빠와 작가님을 데리고 상경하여 서대문 밖에서 바느질품을 팔면서도 작가님을 서울 안에 있는 매동초등학교에 학구를 위반하며 입학시켰다. 어쩌면 박완서 작가님을 훌륭한 작가로 만드신 것이 어머님의 몇십 년을 앞지른 유별난 교육열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작가님은 자식들에게 기대기보다는 나에게 남은 자유를 누리고 싶다며 혼자 사는 것을 선택하셨다.


나는 자식들과의 이런 멀고 가까운 거리를 좋아하고, 가장 멀리, 우주 밖으로 사라진 자식을 가장 가깝게 느낄 수도 있는 신비 또한 좋아한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남겨진 자유가 소중하여 그 안에는 자식들도 들이고 싶지 않다. - '내가 걸어온 길' 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얼마 전에 손자가 나에게 물어보았다.


"할머니, 달리기 하다가 배가 아프면 어떻게 해요?"

"그럴 땐 잠시 멈추고 쉬어야지."

"학교에서 달리기 하다가 배가 아파서 멈췄어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

"다시 달렸는데 꼴찌 해서 창피했어요."


그 자리에 내가 있었으면 끝까지 달린 손자를 칭찬해 주었을 거다. 하다가 멈추는 것보다 끝까지 달린 것은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작가님도 꼴찌에게 온 힘을 다해서 갈채를 보내셨다.


나는 용감하게 인도에서 차도로 뛰어내리며 그를 향해 열렬한 박수를 보내며 환성을 질렀다. 나는 그가 주저앉는 걸 보면 안 되었다. 나는 그가 주저앉는 걸 봄으로써 내가 주저앉고 말 듯한 어떤 미신적인 연대감마저 느끼며 실로 열렬하고도 우렁찬 환영을 했다. 내 고독한 환호에 딴 사람들도 합세를 해 주었다. 푸른 마라토너 뒤에도 또 그 뒤에도 주자는 잇따랐다. 꼴찌 주자까지를 그렇게 열렬하게 성원하고 나니 손바닥이 붉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중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그 시절이 그립다



46편의 글 하나하나가 다 마음에 와닿았지만, 글 중에서 마음에 가장 들어오는 글이 「주말농장」 글이다. 나에게 시골이란 말은 거의 고향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고향의 봄' 동요처럼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이란 동요 가사가 참 좋다. 어린 시절 첩첩산중 산골 마을에서 살았기에 작가님이 그리워하는 시골살이가 나에게도 늘 그리움이 되는 추억이다.


작가님처럼 나도 내가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는 얘기를 남에게 할 때 자랑스러워 으스대며 마구 신이 난다. 작가님은 ‘나는 초등학교쯤은 시골에서 마친 사람을 좋아하고 중고등학교까지도 시골에서 나온 사람이면 더욱 좋아한다.’고 한다. 내가 시골 출신이고 고등학교까지 시골에서 자랐기에 왠지 내가 좋은 사람 같게 느껴졌다.


이 책의 표제 글인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를 읽으며 그동안 자식들에게 내가 너무 집착하지 않았나 후회가 되었다. 아들들이 싫은데 억지로 학원에 보내진 않았지만,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하는 먼 곳에 있는 학원에 영어를 배우러 보낸 것은 후회가 된다. 그렇다고 두 아들이 영어를 남보다 잘하지도 않는데 그땐 왜 그랬을까 싶다.


큰소리를 안 쳐도 억울하지 않을 만큼, 꼭 그만큼만 아이들을 위하고 사랑하리라는 게 내가 지키고자 하는 절도다.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이 결코 무게로 그들에게 느껴지지 않기를, 집이, 부모의 슬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바랄 뿐이다.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중

내가 박완서 작가님 에세이를 읽으며 마음이 따뜻해지고 옛날을 추억하며 행복한 것처럼 다른 분들도 이 글을 읽으며 행복한 마음이 들기를 기대해 본다. 책 속에서 작가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고, 그 시절의 추억도 꺼내 볼 수 있다. 또한 이 글이 작가님을 그리워하고 다시 만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나도 마음이 심란하고 마음대로 안 되고 헛헛할 때마다 이 책을 꺼내서 읽으며 위로받고 싶다.



*전자책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6818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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