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웃게 한 사소한 일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아파트 앞 베란다에서 손빨래를 하려다 하수구 구멍 사이에 낀 작은 풀 한 포기를 발견했다. 흙 한 줌 없는 그 좁고 척박한 구멍에서 어떻게 싹을 틔운 것일까. 차마 뽑아버릴 수가 없어 조심스레 흙을 채운 작은 화분으로 옮겨 심어주었다. 물길을 따라 흘러가 버릴 수도 있었던 그 연약한 생명은 내 손길을 닿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기운차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잎이 조금 커졌을 때 문득 낯익은 향기가 났다. 코를 가까이 대니 싱그러운 토마토 향이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그날부터 이 작은 생명은 나의 소중한 '반려 식물'이 되었다. 다행히 우리 집은 하루 종일 햇살이 가득한 남향집이라 토마토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키를 키웠다.
제법 자리를 잡았을 무렵부터는 기특한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위로만 쭉쭉 뻗어 나가 몸을 가누지 못해 튼튼한 지지대도 세워주었다. 날씨가 쌀쌀해지니 '과연 열매를 맺을까' 걱정이 되었다. 어느 날 기적처럼 다섯 송이의 노란 꽃이 피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어느새 꽃이 지고 난 자리에는 쌀알만 한 초록 열매들이 맺혔다. 어느새 키가 1미터를 훌쩍 넘겨 몸을 가누지 못했다.
12월이 되지 날씨가 점점 추워졌다. 나는 다시 한번 조금 더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하고 토마토를 거실 안쪽으로 들였다. 남편은 위로만 자라서 익지 않을 것이라며 반신반의했다. 생명은 쉽게 시들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물을 조금씩 주었다. 거실 유리창 너머로 들어오는 겨울 햇살을 머금은 알맹이는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어느 날, 초록빛이던 열매 하나가 발그레하게 수줍은 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아이처럼 히죽히죽 웃음이 난다.
이제는 완숙 방울토마토 되어 있다. 오늘 아침, 남편은 너무 익으면 안 된다며 따서 먹어야지 않냐고 했다. 나는 그냥 두고 보자고 했다.
위쪽에는 새로 다섯 송이가 피었지만 열매가 되면 가누지를 못할 것 같아 보였다. 할 수 없이 세 송이는 꺾어내었다. 지금 남은 두 송이는 열매가 되어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척박한 하수구 입구에서 시작해 거실까지 찾아온 이 작은 방울토마토는, 겨울이라는 날씨지만 초록과 빨강으로 나와 마주친다. 사소하지만 매일 아침 나에게 비타민 같은 미소를 선물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