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참았던 감정 하나

꽃신을 주고 떠난 동생

by 김인순

​꽃신을 주고 떠난 동생

보고 싶은 동생아 너의 웃는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늘의 별이 된 지도 벌써 4년이 흘렀다.


​동생은 내게 꽃신 한 켤레를 선물했었다. 사이즈가 커서 다시 가져가라고 했더니,


"언니, 나중에 신발 사이즈가 맞는 고객님 만나면 주어요"


​라며 내 손에 쥐여주었다. 처음 나와 몸이 아픈 고객으로 만났다. 몇 달이 지나 우리는 매일 통화를 나누는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동생은 언젠가 남편의 품을 떠나 홀로서기를 하겠다며, 아픈 몸을 이끌고 간호조무사 공부를 했다. 자격증을 땄지만, 끝내 취직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서둘러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동생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가슴 깊이 눌러두었던 감정이 울컥 되살아난다.


​어느 이른 아침, 다짜고짜 내게 전화를 걸어 없는 제품을 당장 가져오라며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오죽 아프면 저럴까' 싶은 마음에 살살 달래며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동생은 조금씩 마음의 빗장을 풀었다.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니 원래 퉁명스러운 사람이 아니었다. 남편의 무정함은 동생을 병들게 했다. 아픈 몸은 정신까지 갉아먹었다. 하지만 나와 가까워지면서 유머가 넘쳤다. 웃기 잘하는 나는 호탕하게 웃었다. 우린 서로에게 비타민 같은 존재였다. 그랬던 동생을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보내고, 한동안 깊은 우울감이 내게 있었다.


​"사랑하는 언니, 나 많이 좋아지고 있어. 내년 봄에는 우리 같이 꽃구경 가자."


​​처음 이자 마지막 소식을 내게 전했다. 나는 동생과 함께할 꽃구경을 기대하며 '봄아, 어서 와라' 하고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2월이 막 시작되던 날, 동생은 부고장으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동생은 ​어쩌면 미리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늘로 가기 6개월 전쯤, 청국장을 끓였다며 점심을 먹으러 오라고 나를 불렀다. 집에 들어선 순간 깜짝 놀라울 만큼 휑하고 말끔했다. 왜 이렇게 집에 물건이 없냐고 물으니


​"언니, 나는 내일이라도 당장 집을 나갈 수 있게 다 정리했어. 옷도, 살림도 다 버렸거든. 작은 가방 하나면 내 짐은 다 들어가."


​​찻잔을 앞에 두고 웃으며 건네던 그 말이 예고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캠핑장의 밤하늘 아래 서서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본다. 수많은 별들 속에서 너를 찾아본다.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