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낳은 날
둘째 아들의 생일만 되면 어김없이 소환되는 그날의 기억. 이제는 그만 잊고 싶은데, 서운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그날의 풍경은 오래된 사진첩처럼 선명하게 가슴 한구석에 박혀 있다.
97년 11월 2일 일요일 아침 약한 산통이 시작됐다. 하필이면 곧 예배를 드리는 시간인데 예저밀보나 일주일이나 앞당겨졌다. 교회 사택에 살던 우리 부부에게 일요일 아침은 청소하느라 분주했다. 첫째 때는 일찍 병원에 갔다가 오랜 시간 고생한 기억을 있어 진통을 느끼며 청소를 했다.
11시가 되어갈 무렵, 진통이 제법 세지고 시간도 15분 가켝으로 좁혀졌다.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병원으로 향했다.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교인들의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눈물이 나도록 부러웠다. 썰렁한 병원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마치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 외롭고 무거웠다. 해산을 하는 일은 여전히 두려운 일이었다.
병원에 도착해 내 상태를 확인하던간호사는 왜 이렇게 늦게왔냐며 다급히 분만실로 안내했다. 남편은 계산을 하기 위해 원무과로 갔다.
11시59분 드디어 우렁찬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눈은 크고 코는 오똑하니, 누가 봐도 잘생긴 아들이었다. 원무과에 갔던 남편이 돌아오기도 전에 아이는 이미 세상 밖으로 나와 있었다.
진이 다 빠진 채 병실로 돌아왔을 때, 내 앞에는 따뜻한 미역국 식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보호자 밥으로 채각한 남편은 식판에 있던 미역국과 밥을 남김없이 비웠다. 조금 안정을 찾으니 허기가 느껴졌다. 남편한테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아까 준 식판이 산모님 밥이었는데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자연분만을 한 덕에 바로 식사가 가능했기에 내가 먹을 밥이었던 것이다. 남편은 미안함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금 돌아보니 우스우면서도 한편은 서러워 눈물이 핑 돌았다.
집사님들이 산모 밥을 남편이 먹어버려 굶고 있다는 소식에, 오후 예배를 마치고 급히 미역국을 끓여서 가지고왔다. 소고기 한 점 없이 미역과 간장만으로 맛을 낸 국이었지만, 그 따뜻한 국물이 빈속에 들어오니 이제야 살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내가 낳고 미역국은 남편이 먹은 평생 잊지 못할 날이었다.
둘째 생일이 되면 해마다 케케묵은 이야기를 다시 꺼내 남편을 미안하게 한다. 배고픔의 서러움은 정성 어린 미역국 한 그릇에 녹아들었다. 그날의 해프닝은 평생 잊히지 않은 하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