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처럼 2
언제 처음으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 내 인생의 뒤안길을 천천히 뒤돌아보았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은 바다가 없는 산골 이었다. 섬진강 줄기의 강이 흐르는 곳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중학교때 나는 옥정호 저수지가 세상에서 가장 큰 바다인 줄만 알았다. 어린 내 눈에 비친 옥정호는 어찌나 넓고 깊었는지, 그 너머에 진짜 바다가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나의 방황이 조금씩 시작되었다. 시골을 떠나 전주라는 낯선 도시로 학교를 가게 된 것이다. 인문계가 아닌 여상에 입학하며 마주한 세상은 모든 것이 생소했다. 생전 처음 만져보는 주판, 낯선 용어로 가득한 부기 수업, 그리고 마음대로 쳐지지 않는 타자기까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기만 했다.
기초를 따라가느라 1학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이 없었다. 부모님께 학교 생활이 힘들다는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한 채 학교를 다녔다. 나랑 같이 입학 했던 친구는 적응 하지 못하고 중퇴를 하기도 했다. 3학년 1학기가 될 때까지 자격증 취득과 성적 관리 사이에서 숨 가쁜 나날을 보냈다. 하나둘 좋은 곳으로 취업해 나가는 친구들의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마음속 스트레스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우리 바다에 가자"
취업 걱정에 가슴이 답답하던 어느 날, 반 친구 한 명이 나에게 말했다. 친구 따라 가보니 주간반 4명, 야간반 2명, 이렇게 총 6명의 친구가 모여서 갔다. 목적지는 부안 구시포 해수욕장 이였다. 사실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어디든 떠나고 싶은 마음 하나 뿐이었다.
제대로 된 준비물도 없이, 지금 생각하면 무모할 만큼 가벼운 차림으로 친구들을 따라나섰다. 그렇게 마주한 생애 첫 진짜 바다. 눈 앞에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본 순간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한다.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우리는 바위 틈에 돗자리를 깔고 몇 번이고 물속을 드나들며 바다와 한 몸이 되어 놀았다.
여름밤이라 춥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이불 한 채 없이 낡은 텐트 하나만 달랑 챙겨왔으니 말이다. 해가 지고 노을이 바다를 물들일 때쯤, 걱정이 현실이 되었다. 주변의 피서객들이 모두 떠나고 어둠이 깔리자 텅 빈 해변엔 우리와 낯선 남자 무리 몇 팀만이 남았다.
그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이들이 있었다. 인근 부대의 군인들이었다. 여자애들끼리 텐트에서 자는 게 걱정되었는지, 그들은 두툼한 군용 모포와 커다란 후레쉬를 챙겨와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군인들의 따뜻한 배려와 보호 덕분에, 우리는 바닷가에서 안심하고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비좁은 텐트 안에서 여섯 명이 서로 몸을 포개고 누워 속닥거리던 그 밤. 취업에 대한 압박감과 답답했던 마음이 파도 소리에 씻겨 내려가던 그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기억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산골 소녀에게 바다는 늘 동경의 대상이었고, 그날의 바다는 내게 '탈출구'였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금도 바다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날 함께했던 친구들도 나와 같은 마음 이었을까? 지금은 다들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답답했던 그시절에 바다에 와서 놀고 서로 기대어 잠들었던 그 시절의 친구들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