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 않았지만 계속 떠오르는 곳

내 마음속 산티아고 길

by 김인순

​8년 전 이맘때였다. 회사 강사로 오셨던 송진구 교수님께서 직접 쓴 책 한 권을 건네주셨다. '떠나라, 그래야 보인다' 30일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순례길인 산티아고를 걷고 온 교수님의 생생한 기록이 담겨 있었다. 그날 이후로 이 책은 내 삶의 친구가 되었다. 일상이 무겁고 마음이 지칠 때면, 나는 이 책을 꺼내 들고 마음으로나마 산티아고 길을 걷는다.


​교수님의 여정은 무모하리만큼 갑작스러웠다. 방송국의 제안으로 아픔을 간직한 세 명의 참가자와 함께 떠난 길. 준비 운동조차 없이 시작된 그 길에서 교수님은 발에 상처가 가득 남는 고통을 겪으셨다.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 '인생길 완주의 법칙'을 배우셨다고 한다. 짐을 하나둘 버려야만 끝까지 갈 수 있다는 평범하지만 준엄한 진리, 그리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떠나기를 참 잘했다는 그 홀가분한 고백은 내 가슴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언제든 떠나라는 교수님의 말씀은 내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어린 시절, 몸이 약했던 나에게 부모님은 "밖에 나가지 마라"는 말을 인사하듯 하셨다. 사랑이 담긴 걱정이었겠지만, 그 말은 나에게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닫는 빗장처럼 느껴졌나 보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금도 '떠남'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


​​산티아고를 걷는 수많은 순례자는 각자의 이유를 품고 길 위에 선다. 누군가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누군가는 뼈아픈 기억을 잊기 위해, 또 누군가는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걷는다. 그 모든 발걸음의 끝에는 결국 '변화'라는 갈망이 닿아 있다. 교수님은 그 길의 끝에서 '감사'를 회복하셨다고 했다. 스스로를 낮추고 또 낮추었더니 비로소 보이는 것은 온통 감사뿐이었다는 그 말씀이 오늘따라 깊이 와닿는다.


​​나는 산티아고를 그리워하며 섬 한 달 살기와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며 걸었다. 올레길을 굽이굽이 걸으며 그때는 참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산티아고의 고난을 떠올려 보니 그마저도 참으로 감사한 여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직접 가보지는 못했어도, 내 마음속에는 이미 나만의 산티아고 길이 시원하게 뚫려 있다.


​​오늘도 내 마음속 산티아고가 나에게 손짓한다. 무거운 마음의 짐은 길 위에 내려놓으라고,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곁에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하라고.


​"범사에 감사하라."











작가의 이전글다시 돌아가고 싶은 장면 하나